신시아는 참 외로워겠다. 남편을 남편이라 부를 때도 남의 눈치를 살펴야 했으니 말이다. 비틀스의 영혼 존 레넌을 남편으로 둔 댓가였다. 이들은 대학 시절부터 연인이었다. 작고 음침한 케빈 클럽에서 죽어라 연주하는 존을 신시아는 사랑했다. 무명 밴드 비틀스가 함부르크에서 머무를 때도 그녀는 애틋하게 존만을 기다렸다.
친엄마 대신 이모 미미의 손에서 자랐던 존은 거칠었고 늘 모성애를 그리워했다. 신시아는 그러한 존을 다독여줬고 존도 현모양처 스타일인 그녀를 사랑했다. 마침내 이들의 사랑은 1962년 결혼을 했다. 존 레넌이 이끌던 비틀스가 세상을 뒤흔들기 일 년 전이었다. 그리고 1963년에 비틀스는 <플리스 플리스 미> 앨범을 미국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전 세계의 대중음악을 평정했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비틀스의 성공은 신시아에게 불행이었다. 청춘의 우상인 비틀스의 리더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감추고 싶어 했다. 새 신부 신시아는 비틀스의 존 레넌이 내 남편이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지만 오히려 모습을 숨겨야만 했다. 게다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남편 존은 치솟는 밴드의 인기만큼이나 천방지축이었다.
비틀스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존과 신시아는 자주 다투었다. 비틀스의 히트곡인 <A Hard Day's Night>나 <Across the Universe>는 당시 이들의 갈등에서 탄생한 명곡들이다. 결국 1968년 존 레넌과 신시아는 이혼을 하고 만다. 당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줄리안은 다섯 살이 있었다. 이들의 결별은 일본 여성 오노요코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존의 정제되지 않은 성격 탓이 컸다.
지금도 많은 비틀스 팬들은 신시아에게 연민을 보낸다. 반면 오노요코는 비틀스 해체의 원흉인 마녀로 취급한다. 물론 오노요코에 대한 비난에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냄새가 풍기고 있다. 아무튼 전위예술가 오노 오코가 존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심지어 그녀가 비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될 야심 있다는 말까지 돌았으니 세상의 평이 그녀에게 좋을 수 없었다.
존 레넌과 오노요코가 가까워질수록 신시아는 물론이요,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존에게서 멀어졌다. 이 무렵 폴 메카트니는 존의 가정이 염려되었고 어느 날 존의 집을 찾아갔다. 폴이 도착한 존의 집은 어수선했고 고작 다섯 살의 어린 줄리안 레논이 홀로 있었다. 텅 빈 집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줄리안을 본 폴의 심정은 착잡했다.
이때 폴 메카트니는 줄리안의 슬픈 눈에 영감을 얻어서<Hey jude>를 만들었다. 이 곡은 비틀스 숱한 인기곡 가운데서도 단연 백미(白眉)다. 연주 시간이 무려 7분에 달하며, 전 세계 850만 장이란 판매고를 올린 명곡이다. 영미 차트에 무려 24곡을 정상에 올렸던 비틀스에게도 <Hey jude>의 빌보드 차트 9주 동안 1위라는 영광은 처음이었다. 오늘날 <Hey jude>는 비틀스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Hey jude>는 영국 프로축구 여러 팀들에서 응원가로 불릴 만큼 영국 팝음악의 상징이다. 주 보컬을 담당한 폴은 발라드적 미성과 거친 샤우팅 창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노래를 하고 있다. 무려 4분에 걸친 후렴구 ‘나~나~나~’로 유명한 <Hey jude>는 떼창 곡의 전형이다. 떼창 최강을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어울리는 곡이다.
폴 메카트니가 내한 공연 당시 관객들의 <Hey jude> 후렴구 떼창을 유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폴이 서툰 우리말로 “남~좌(남자)”, “여~좌(여자)”, “다~가취(다 같이)”라고 지시를 하면 공연장을 가득 채운 대한의 청춘들은 떼창과 열창으로 화답했다. 이 엄청난 떼창에 폴 메카트니는 입을 쩍 벌렸다고 한다.
궁금한 것은 <Hey jude>를 연주 당시 존 레넌의 기분은 어땠을까 싶다. 노랫말이 파탄 난 자신의 가정과 아들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유쾌할 리가 없다. 하지만 엄청난 인기곡이니 존 레넌은 난감했으리라. 그래서일까. 비틀스 해산 후 존 레넌은 어느 공연에서도 <Hey jude>를 연주하지 않았다.
한편 홍길동처럼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 처지였던 줄리안은 대신 폴 아저씨를 따랐다고 한다. 이 또한 존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니었을까. 훗날 줄리안은 음악을 하면서 아버지 존과 화해했다고 한다.
오늘날 비틀스 팬들은 오노요코에게서 태어난 션 레논보다는 줄리안 레논을 존의 적장자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줄리안은 1980년대 중반 <Too late for goodbye>란 노래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아버지 존 레넌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 존은 오노요코에 빠져있고 엄마 신시아도 다른 배우자와 가정을 차렸다. 어린줄리안은 외가 집에서 살아야 했다. 아빠를 방송에서나 볼 수 있었던 줄리안의 마음은 어땠을까. 흔히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는 식구, 각자 다른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단지 같은 혈연을 지닐 경우에는 가족이라고 한다. 줄리안에게 식구는 없었고 가족만 있는 셈이었다.
주변에 이혼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청춘 남녀가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살다 보면 애정은 식어가고 그 자리에 미움이 들어올 수도 있다. 명리학에서 원진살이라고 부르는 최악의 인연이 있다. 미워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그런 딱한 팔자를 말한다. 어쩌면 착한 신시아에게 존과의 결별은 불행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사실 존 레넌도 어린 시절에 부모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그로 인한 방황이 음악으로 이끌었고 그 삐딱함은 록 음악 기질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자신의 아픔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존 레넌은 나쁜 아빠인 셈이다. 그렇게 존과 신시아, 줄리안은 가족일망정 식구는 될 수 없었다.
훗날 줄리안은 오노요코가 경매에 내놓은 아버지 존의 유품을 부지런히 구매했다고 한다. 존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줄리안은 왜 유품을 갖고 싶었을까? 복잡했을 줄리안의 심정을 이해하기란 이차방정식만큼이나 어렵다. 이런 것이 혈연인가 싶다. 오늘은 <Hey jude>의 ‘나~나~나~’ 후렴구가 종일 귓전에 맴도는 날이다.
< Hey Jude > - The Beatles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이봐 주드, 나쁜 쪽으로 생각하진 마
슬픈 노래를 더 좋게 만들어 봐
그녀를 너의 마음에 들여야 함을 기억해
그러면 더 좋게 만드는 걸 시작할 수 있어
Hey Jude, don't be afraid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이봐 주드, 무서워하지 마
넌 나가서 그녀를 잡아야만 해
그녀를 너의 안쪽으로 들이는 순간
그러면 더 좋게 만드는 걸 시작할 수 있어
And any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