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 때면 B형이 생각난다. 캠퍼스 앞 음악다방과 낡은 식당 사이로 보이던 좁은 골목길. 하수도에서 풍기던 불결한 냄새. 찬 바람에 뒹굴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낙엽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던 최루탄 발사 소리. 친구들은 매운 최루 연기에 힘들어했고,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무렵 나는 시위 현장도 도서관도 아닌 곳을 자주 찾았다. 학교 앞 골목길에 있던 그 자취방으로. 그곳은 내 청춘의 뜨락이었다. 그 방은 언제나 백열전구의 주황색 불빛으로 너울거렸다. 내가 낡은 이불에 다리를 넣은 채 졸고 있으면 그는 소주를 가지고 왔다. 안주는 라면과 김치뿐 소박한 찬이었다. 싸구려 잡지에 뜨거운 라면 그릇을 올려놓고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듣는 젊음의 만찬이었다.
그의 소주와 나의 라면이 비어갈 때면 그 방에는 담배 연기가 기다란 띠를 두른 채 떠다녔다. 그곳의 아랫목은 따끈했지만 웃풍 탓에 콧날은 시큰했었다. 그 방에는 언제나 FM 라디오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겨울 방학이 점점 가까워지던 늦가을. 라디오에서는 폴 메카트니의 신곡 <No more lonely night> 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노래를 들었다. 만추의 정취에 어울리는 팝 음악이었다.
B형! 그는 나의 데미안이었다. 지금은 생사마저 모르는 형이 생각날 때면, 그해 가을에 들었던 폴 메카트니의 <No more lonely night>가 떠오른다. 잔잔한 첫 소절의 가사와 멜로디를 흥얼거려본다. 폴의 부드러운 음색이 상실감을 더해준다. 앞으로도 이 노래와 B형은 마치 자웅동체처럼 분리되지 않을 것만 같다.
B형은 학과 동기였다. 입학식 날, 새내기들이 모여있는 강의실을 찾아 헤매었다. 강의실을 겨우 찾았고, 빈 의자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잠시 후 지팡이를 짚은 노교수님이 들어오시더니 앞으로 잘 지내자고 했다. 지도교수님이었다. 그날 내 옆에 그가 앉아 있었다. 입학식이 끝나자 그와 함께 긴 계단을 말없이 내려왔다.
다음날 첫 수업은 교양과목이었다.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에 분식집을 갔는데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식사 후 잰걸음으로 강의실로 가면서 통성명을 했고 출신 고등학교를 물었다. 뜻밖에 내 고등학교 일 년 선배였다. 이후로 나는 그를 B형이라 불렸다. 동문이라는 일체감이 서로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한 달쯤 지났을까? 소주와 새우깡을 들고서 B형의 자취방을 처음 가보았다. 그의 책상에 있던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를 펼쳐보자, 그는 첫장 알무스타파의 사랑에 대하여를 읽어보라고 했다. B형은 음악다방 DJ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저녁 8시에 우리는 산수오거리에 있는 어느 지하 음악다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유리 상자에서 두 시간가량 사연과 음악을 소개했고, 나는 그곳에서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를 완독했다.
며칠 뒤, B형을 따라서 생애 처음으로 생맥주집을 가보았다. 생맥주로 500cc를 마셨고 내가 그렇게 술에 약한 줄 그때 알았다. 나는 불타오르는 얼굴이 되어 내 몸에서 벌어진 화학적 현상에 어쩔 줄 몰랐다. 결국 마셨던 맥주를 도로 지상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그는 축하한다며 킬킬거렸고 내게 담배를 권했다. 그렇게 B형의 전도로 음주와 흡연을 영접했다. 생맥주와 담배 그리고 팝 음악, 아무튼 나의 세계가 달라지고 있었다.
한 번은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서 B형을 찾았다. 그가 내게 권했던 책이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 속의 카뮈는 멋있었지만, 『이방인』주인공의 의식 세계는 종잡을 수 없었다. B형은 어둑어둑한 캠퍼스 잔디에서 주인공 뫼르소의 심리와 부조리 문학을 설명해 주었다. 카뮈의 사진과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의 삽화 그리고 B형은 하나의 뿌리가 되어 지금도 내게 기억되어 있다.
그의 자취방에서 팝송 책을 보았고, 닐 영과 존 앤 반젤리스, 피더 폴 앤 메리의 음악을 들었다. 나는 휴학 후, B의 소개로 입대 전까지 전남대 후문에 있던 음악다방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또한 나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B형의 강의 출석은 드물었는데 그의 대리출석과 시험 일정 및 학습 정리는 내 몫이었다. 그은 점점 학과에서 안개같은 인물로 소문이 났다. 교수님과 학우들은 나와 B형 사이에서 자주 헤매었다.
B형은 자신의 고향인 고흥에서 방위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한 번은 그곳까지 위로한답시고 찾아갔었다. 그의 가족에게 인사를 드렸고 그들로부터 꽤나 환대를 받았다. 그날 저녁 나와 B형은 늦은 밤까지 김영동의 퓨전 국악을 심각하게 들었다. 왜 심각했는지 이유는 모르겠만. 아무튼 그는 김영동을 국악계의 ‘체게바라’라며 극찬했다.
대학 졸업을 했고, 나는 보험회사로 B형은 자동차 회사로 입사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을 무렵, 그의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B형이 차 사고로 병원에 한 달째 누워있다고 했다. 놀라서 찾아간 곳은 기독병원이었다. 그가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었다.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인식은 가능한데, 반응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형, 나예요.”라고 말을 하자, B형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립고 미안한 나의 데미안 B형! 매년 단풍이 질 때면 폴 메카트니의 <No more lonely night>를 듣게 되는 까닭은 B형과 희미해지는 대학 시절의 그리움 탓일 것이다. 곡의 후반부에 나오는 데이빗 길모어의 기타 솔로를 들으면서 길 떠난 그의 뒷모습에 빛을 던져본다.
< No more lonely night >, Paul McCartney
I Can Wait Another Day Until I Call You
You've Only Got My Heart On A String And Everything A Flutter
But Another Lonley Night (And Another, And Another)
Might Take Forever(And Another, And Another)
We've Only Got Each Other To Blame
It's All The Same To Me Love
'Cause I Know What I Feel To Be Right
No More Lonely Nights
No More Lonely Nights
당신을 부를 때까지 하루만 더 참을 수 있어요
당신은 제 마음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죠
하지만 또 외로운 밤이라면 (또 하룻밤, 또 하룻밤)
영원히 지속될지도 몰라요 (또 하룻밤, 또 하룻밤)
잘못이라면 우리 둘에게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다 똑같아요
이 기분을 제대로 돌리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외로운 밤은 더이상 안 돼
외로운 밤은 더이상 안 돼
(중략)
You're My Guiding Light
Day Or Night I'm Always There
And I Won't Go Away Until You Tell Me So
No I'll Never Go Away
I Won't Go Away Until You Tell Me So
No I'll Never Go Away
No More Lonely Nights, No No ...
그대는 날 이끌어주는 불빛
낮이나 밤이나 그곳에 있을게요
그렇게 말해줄 때까진 떠나지 않을 거에요.
네 절대 가지 않을 거에요
그렇게 말해줄 때까진 떠나지 않을 거에요
네 절대 가지 않을 거에요.
더이상 외로운 밤은 안 돼요, 더 이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