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경험하지 못했던 폭설이 내렸다. 출근길 운전을 단념하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발이 쌓인 눈에 푹푹 빠져서 인도로 걸어가기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별수 없이 눈길 위에 패어있는 바퀴 자국을 따라 걸어야했다. 퍼붓는 눈 폭탄을 뚫고 버스 승강장에 겨우 도착했다. 눈 덥힌 도로를 바라보니 차들이 달팽이처럼 설설 기어가고 있었다.
오후가 되었지만 눈은 멈출 줄 몰랐다. 퇴근 시간 정체을 염려하면서 서둘러 퇴근을 했다. 어렵게 버스에 올랐지만, 도로 사정으로 우회한다는 기사의 안내가 있었다. 이럴 바에냐 걷는 편이 낫겠다 싶어 버스에서 내렸다. 우산을 쓰고 골목길을 종종걸음으로 걷다보니 계림동 성당이 보였다. 아비규환인 거리와 달리 성당은 하얀 이불처럼 덮 것처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삼십 년 전 그날도 눈 내렸다. 성당 선배의 강권으로 청년회장을 맡게 되었다. 요즘과 달리 그 시절에는 성당 활동에 열성적인 청년들이 꽤나 많았다. 신앙생활이 짧았던 나로서는 청년회 일을 잘 해낼 자신이 도통 생기지 않았다. 기댈 구석이라곤 그분의 이끄심 뿐이었다. 눈 내리는 그해 마지막 날, 철야기도라는 비장한 카드를 들고 늦은 저녁 시간 계림동 성당 안에 있는 성체조배실을 찾았다.
저녁 열 시부터 다음 날 여섯 시까지 기도와 졸음 사이를 오가며 나의 소망을 그분에 아뢰었다. 아마도 불자였다면 삼천 배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의 밤샘 기도 덕분이었을까? 아무튼 맡았던 청년회를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후로 계림동 성당은 풋풋했던 내 신앙의 첫 마음을 떠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첫 마음의 중요함을 두고 《화엄경》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했다. 첫 마음이 곧 깨달음이란 뜻인데, 첫 발심의 순수함은 하늘과 통하는 법인 까닭이다. 그래서 첫사랑, 첫 직장, 첫 작품과 같은 첫 마음은 귀하다.
비틀스의 < Get back >에는 그들 밴드의 첫 마음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십 대 중반 어머니 부재라는 공통분모 덕에 가까워진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는 쿼리맨 밴드 활동을 통하여 사춘기의 방황과 열정을 분출했다. 폴의 소개로 조지 해리슨까지 합류한 그들에게 음악은 구원자였다. 비틀스의 첫 마음 시절, 무명의 리버풀의 청년들은 음침한 지하 케빈 클럽과 독일 함부르크 등에서 무수한 공연으로 청춘을 달랬다.
이들의 첫 마음은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케빈 클럽에서 열정적으로 공연하던 이들을 눈여겨본 앱스타인의 전략으로 비틀스는 드디어 레코딩 기회를 잡았고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다. 물론 조지 마틴이라는 탁월한 프로듀서의 음악적 감각도 이들의 성공에 큰 몫을 하였다.
하지만 다섯 번째 비틀스 멤버라 불렸던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1967년에 돌연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의 원인으로는 거대해진 비틀스와 언젠가 결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한 몫했다고 하니 인생무상일 뿐이다.
비틀스 해체의 조짐은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비틀스는 애플사를 설립 운영했지만 방만한 경영으로 불화만 깊어졌다. 게다가 존 레논의 뮤즈 오노 요코의 등장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이 되었다. 결국 성격 좋은 링고 스타와 조용했던 조지 해리슨마저 탈퇴와 복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밴드의 해체를 막고 싶었던 폴 메카트니는 케빈 클럽 때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 Get back >에서 호소한다. 제목부터가 ‘돌아가자’, ‘복귀하자’란 의미가 아닌가. 또한 < Get back>은 이들의 음악 다큐물의 제목이기도 하다. 비틀스는 마지막 앨범 < Let it be >의 제작 과정을 약 3주간의 영상으로 담았다. 훗날 이 영상은 피터 잭슨이 감독을 맡았으며 2019년 겨울에 개봉되었다. 영화 제목은 < Get back >이었다.
< Get back >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애플 본사 옥상에서 벌어진 공연이다. 흔히 루프탑 공연으로 불리는 이 장면은 비틀스의 마지막 공연이자 해체의 전주곡이었다. 이날의 옥상 공연은 정월 찬 바람 속에서 게릴라 콘서트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느닷없는 비틀스의 공연에 행인들은 어리둥절했고 신기하듯 옥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허가된 것이 아닌 탓에 신고를 받은 경찰이 공연 전원을 뽑음으로써 마치게 된다.
무명 시절 비틀스의 첫 마음을 재현하는 듯한 < Get back > 루프탑의 공연은 지금도 SNS에서 검색할 수가 있다. 수염을 기른 폴 메카트니와 털 코트를 걸친 존 레논, 녹색 바지를 입은 조지 해리슨, 붉은 코트의 링고 스타. 객원 키보드 빌리 프리스턴까지 이들은 입김이 나고 코가 빨개지는 추위 속에서 < Get back >과 < Don,t let me down> 등 여러 곡을 사십여 분에 걸쳐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아직 < Get back> 영화 전편은 보지 못했지만, 짧게 편집된 영상은 여러 번 보았다. 영상 속에서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다른 멤버들 사이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밴드 분위기는 선을 넘어버린 상태였다. 다만 해체라는 최악을 피해 보려는 폴 메카트니의 노고는 역력했다. 이런 냉냉한 분위기에서도 < Abby road >와 < 렛잇비 Let it be > 같은 명반을 녹음한 이들의 천재성이 놀랍다.
< Get back >은 비틀스 해체 후 < 렛잇비 > 앨범에 수록되었고 빌보드 차트 1위를 무려 5주 동안 차지했다. 밴드의 첫 마음을 회복해보려던 마지막 시도에도 불굴하고 얼마 후 이들은 개별 활동을 시작한다. 결국 이 곡은 비틀마니아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비틀스 노래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바로 < Get back >이다.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 시작이 있다면 언젠가 끝도 있기 마련이다. 집착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폴 메카트니의 꿈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매리가 나타나서 집착 말고 “Let it be” 하라고 속삭였을까? 언제나 첫 마음의 소중함을 품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세상에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뿐이라고 배웠다. 나의 풋내기 신앙 시절, 밤새워 기도했던 그때의 첫 마음이 지금껏 나를 지켜 준 등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해가 저무는 오늘, 비틀스의 < Get back >을 들어본다. 내 심장이 쿵쿵대면서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