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는 ESFP

< A hard days night >, The Beatles

by 박신호

계묘년 벽두,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관광지로 유명한 한옥마을을 들릴 때마다 고풍스러운 전동성당은 순례 일번지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은 백 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도 우아한 아우라를 빛내고 있다.

비록 길손이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갔다. 십여 분정도 지났을까? 파이프오르간의 음향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살 속에서 웅장하게 울렸다. 미사가 된 것이다. 강론 때 사제는 ‘사는 것이 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것이 죄라니요?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라고. 종종일 사제의 강론이 내면을 울려렸다.

또 한 해가 시작되었으니, 삶의 나이테에 한 줄 더 생긴 셈이다. 어느새 지천명의 끝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인생은 알 수 없는 미로일 뿐이다. 우린 불안을 등에 지고 그 미로 속을 헤매는 나그네 신세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인생이란 용을 쓴다고 해서 풀리는 실타래가 아님을 눈치챘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운명 앞에서 우리의 영혼은 무기력하다. 그러다보니 흔들리는 우리 자신을 다독거릴 필요가 있다. 가령, 사주나 타로카드, 심리학에 기반한 에니어그램과 MBTI 등은 불안한 영혼에게 들려주는 자장가다. 한때 나는 이런 술법과 기법으로 학생들과 상담했었다. 그럴때면 눈이 휘둥그레진 몇몇 녀석들이 나를 도사로 인정했는지 제법 진지한 개인사를 꺼낸 경우도 있었다.


나는 요즘 잘 나간다는 MBTI의 16가지 유형 중 INFJ에 해당한다. ‘헌신, 충실, 자비로움, 창의, 열정, 깊이, 개념적, 이상적, 신비로움’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유형인데, 얼핏 맞는 것 같다. 과거에는 계획적이고 논리와 사색을 갖춘 INTP 유형을 선호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선호하는 유형도 바꿔갔다.


만약 조물주가 내게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만들어 주랴? 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ESFP’라고 답할 것이다. 열성적인, 융통성, 쾌활, 우호적, 명랑한, 협동적, 느긋한, 관용, 개방, 낙천 . 이상은 ESFP 유형의 특징을 나타내는 키워드이다. 이 유형의 인물로는 비틀스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링고스타’가 떠오른다(개인적인 추측임). 링고 스타라는 예명부터가 일단 ESFP 답다. 손가락 반지를 의미하는 ‘링고’와 별의 뜻하는 ‘스타’의 조합은 재미가 있다. 그의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라는 교수 분위기가 풍기는 이름이다.

언젠가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비틀스 멤버를 두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존은 비틀스의 영혼이고, 조지는 비틀스의 정신이었으며, 폴은 비틀스의 심장이었고, 링고는 비틀스의 드러머다.” 세상에! 링고 스타에 대한 평은 너무나 밋밋해서 서운할 지경이다. 물론 유쾌한 링고 스타는 이런 야박한 평에도 상관하지 않고 춤을 출 ESTP 유형이지만 말이다. 혹자는 그를 두고 ‘괴팍한 천재들과의 경합을 포기하고 그저 즐겁게 인생이란 드럼을 연주할 줄 알았던 도인’라고 평가했다.


1964년 < A hard days night > 라는 동명의 비틀스 세 번째 정규 앨범과 영화가 공개되었다. 이 무렵 비틀스는 비틀마니아의 추격과 괴성을 견디면서 살인적인 공연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다. < A hard days night >가사에는 당시 그들의 상태가 적혀있다. “정말 힘든 하루였어, 하루종일 개처럼 일 만했지”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때의 비틀스 모습을 담은 영화 < A hard days night >은 영상 미학의 가치를 따질만한 작품은 아니다. 대신 유쾌하고 시끌법적하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둘러싼 팬들을 피해서 도망가는 존, 폴, 조지, 링고의 모습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중심에 링고 스타가 있다는 점이다.

비틀스가 미국에 진출하던 무렵, 팬들에게 밴드 최고의 귀요미는 링고 스타였다. 그의 재미있는 이름과 작은 키, 오뚝한 코는 애교스러웠다. 사실 링고 스타는 엄청난 행운아였다. 비틀스 원 드러머 피터 베스트가 실력 부족이란 이유로 해임당한 그 후임으로 밴드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링고 스타는 존이나 폴처럼 음악적 재능도 부족하고 조지처럼 신비감도 떨어졌다. 이 사실을 일찍이 간파는 그는 소위 오버하지 않고 자족과 달관의 자세로 비틀스의 영광을 함께 했다. 링고는 비틀스 숱한 인기곡 중 《노란 잠수함》, 《옥토퍼스 가든》 두 곡만을 노래했다. 그는 언제나 서글서글한 미소를 띠며 기본 비트와 절제된 필로 드럼을 유쾌하게 두드릴 따름이었다. 하지만 밴드 해체 후에도 링고가 개인 앨범을 제작할 때면 다른 세 명이 달려왔다고 하니 그는 진정한 인자무적(仁者無敵) 스타였다.


링고 스타는 동양 오행에 있어서 전형적인 土(토)와 水(수) 형의 소유자로 보인다. 불(火)과 나무(木), 그리고 쇠(金) 기운으로 들끓은 비틀스 멤버 속에서 링고 스타는 흙과 물로 무장한 평화유지군이었다. 《페퍼상사》 이후 《화이트, 《애비로드, 《레잇비》 앨범에서 보여준 존과 폴의 음악 주도권 다툼과 간헐적인 조지의 항거는 가히 스타워즈였다. 이 난리 속에서도 비틀스가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유쾌한 링고 스타의 덕분이었다.

링고 스타는 2018년 영국 황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아서 그 이름 앞에 Sir를 부치게 되었다. 비록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기사 작위는 물론이요, 록&롤 명예의 전당 가입도 가장 늦었지만, 열등의식의 포로가 되어 세상에 울분을 토할 링고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멤버들이 Sir라 불리는 귀족 반열에 오를 때마다 그는 축하연에서 코믹스럽게 춤을 추었으리라.

계묘년에는 링고 스타처럼 살고 싶다. 인생의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유쾌하면서도 에고에 덜 시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같은 INFJ 유형은 링고와 같은 ESFP의 삶이 부럽다. 이미 이런 유형의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글렀다면 대신 ESFP인 벗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 사는 것이 은총이라 했으니 이런 벗을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은혜가 될 것이다. 기대를 버리고 그냥 살아보는 것. 올해 나의 소망이다. 유쾌한 링고처럼.


< A hard days night >, The beatles

It's been a hard day's night

And I've been working like a dog

It's been a hard day's night

I should be sleeping like a log

But when I get home to you

I'll find the things that you do

will make me feel alright

힘든 야간 근무였어요.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죠.

힘든 야간 근무였어요.

나는 곤히 자야 해요.

그러나 내가 집으로 당신에게 도착하면..

난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이 (음식, 세탁...) 하는 것들이

날 기분 좋게 해 줄 거라는 것을.


You know I work all day

to get you money to buy you things

And it's worth it just to hear you say

you're going to give me everything

So why on earth should I moan,

'cause when I get you alone

You know I feel ok

당신도 알 듯.. 난 하루 종일 일하죠. 당신에게 돈을 가져다주기 위해..

당신에게 물건을 사주기 위해

그리고 하루종일 일하는 것은 그럴 가치가 있어요.

당신이 나에게 "모든 것을 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가치가.

그런데 왜 나는 투덜거릴까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하고 둘이만 있을 때

당신도 알듯 내 기분이 좋거든요.


(이하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