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병 환자들이 늘고 있다. 영국은 폭염에 철로마저 휘었다고 한다. 지구촌 이상기후도 걱정이지만 이보다 당장 급한 것은 내 몸이다. 뱃살이 허리춤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여름이면 얇은 옷을 걸치기 마련인데, 이때 드러나는 내 D 라인에 처연한 심정이 된다. 나잇살이니 어쩌겠냐며 애써 담담해봐도, 뱃살 공격에 못 이겨 늘어나는 허리띠 구멍을 볼 때면 심각해진다.
올봄, 하완 작가의 '뱃살'에 대한 글을 읽었다. 작가의 글을 큭큭거리며 읽다가, 뱃살은‘천벌’이라는 내용에 뜨끔해졌다. 뱃살이 천벌이라니? 과한 표현 같지만 부풀어 오르는 뱃살이 재앙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며칠 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게 되었다. 중, 장년 남성이라면 공감할 에피소드였는데 주인공은 배우 차승원이었다. 같이 시청하던 아내가 “어휴, 차승원은 우리 또래인데, 뱃살 하나 없네.”라고 내게 들으라는 듯 말을 했다. 동시에 도톰한 내 뱃살을 쳐다본다. 차승원과 나의 피지컬을 견주다니. 이건 일종의 심리적 폭력이다.
나와 달리 아내에게는 뱃살 천벌이 내리지 않는다. 아내는 자신의 배를 보라는 듯 한두 번 배를 두드리더니, 공원에 가서 운동을 하라고 재촉했다. 아니면 욕실 청소을 하란다. 이런~ 운동이 싫어하다니요? 갑자기 운동이 좋아졌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지만, 낮의 열기 탓인지 밤공기가 후끈했다.
공원에는 민속박물관이 들어있다. 그 앞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다. 그곳을 향해서 땀을 흘리며 걸고 있는데, 쿵쿵♬하는 음악이 들려왔다. 고성과 괴성도 섞여 있다. 버스킹인가 싶어서, 잰걸음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서 목격한 풍경은 희한했다.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흥겨운 음악에 따라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율동을 하는 그들의 뱃살도 물결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곳 공터에서는 평일 여름밤마다 에어로빅의 향연이 열린다고 했다.
공터 앞 계단에는붉은 모자와 하얀 옷이 강렬한 어느 여성이 힘차게 선창 하면서 율동을 하고 있었다. 에어로빅 강사로 보이는 그녀는 헤드 마이크로 군중들에게 율동과 함성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에어로빅 동작은 어찌나 힘차던지 저절로 따라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에어로빅 교주와 같았다. 뱃살 나온 신자들에게 외친다. “자! 손 올리시고, 이렇게, 이렇게, 하나, 둘...” 하더니 음악을 바꾼다. 김건모의'빗속의 연인'이 울려 퍼진다. 노래에 맞춰 흥이 높아지자 뱃살 신자들의 몸짓도 커져 갔다. 마치 수영을 하듯이, 때로는 몸에 때를 밀 듯이, 교주의 동작이 현란해졌다. 운동하던 주민들이 공터로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하나가 된 주민들은 붉은 모자를 쓴 그녀의 동작을 따라 하기 바빴다.
이상한 짓도 여럿이 함께하면 정상으로 보이는 법이다. 어둠 속 에어로빅 향연을 심사위원처럼 보고 있던, 나도 어느새 팔을 올리고 발을 뻗고 있었다. 내 옆에 계신 백발의 할아버지는 뱃살 신자가 아님에도 열심이시다. 흥겹던 ‘빗속의 연인’이 끝났다. 다들 땀을 닦으며 다음 곡을 기다렸다. 응? 이번에는 팝 음악이다. 이건? <아 I saw her standing there>라는 비틀스 곡이다. 이 곡을 추억의 틴에이저 가수 티파니(소녀시대 티파니 아님)가 비트 강한 댄스 버전으로 열창하고 있다.
에어로빅을 하면서 비틀스 노래를 듣다니 별일이었다. 비틀스 음악으로 에어로빅이 가능하다니,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가 놀랄 일이다. 아무튼 타피니(Tiffany)가긴 머리를 찰랑이면서 열창하고 있다. 티파니는 80년대 내한 공연을 했는데, 그녀의 ‘흔들어 주세요, 써니 텐’이라는 광고로 유명하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비틀스의 <I saw her standing there>을 불렀던 당시 그녀는 낭랑 18세였다.
리버풀에서 비틀스의 주 무대는 음침한 지하 케빈 클럽이었다. 장차 스타를 꿈꾸던 네 명의 청년은 싸구려 가죽 재킷을 입고서, 작고 습한 케빈 클럽의 술꾼들 앞에서 목 터져라 노래했다. 그래서일까? <I saw her standing there>에는 비틀스의 전신, 쿼리 맨 밴드의 풋풋한 분위기가 묻어있다. 훗날 이 곡은 1963년도에 발매된 <Please please me> 앨범에 실렸고, 곧이어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오늘날 <I saw her standing there>는 로큰롤의 표준과도 같은 곡으로서, 불멸의 팝 500곡 가운데 139위라고 한다.(음악잡지 롤링스톤의 선정) 이러한 로큰롤의 명곡이 18세의 티파니에 의해서 댄스곡으로 바꿨고, 이제 에어로빅 음악까지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곡의 내력을 뱃살과의 전쟁에 바쁜 에어로빅 신자들이 알 필요는 없겠다.
공터에서는 에어로빅 노래의 흥이 다시 높아진다. “looked at me,♪ yeah oh yeah~”라는 부분에 이르자, 붉은 모자 강사와 뱃살 신자들의 동작과 함성이 절정으로 달려갔다. 이 분위기를 어찌하나? 어떡하기는. 함께 이 순간을 즐겨야지. 그래야, 뱃살 천벌을 면할 것이 아닌가. 흥, 차승원?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looked at me♪ yeah oh yeah~”
<I saw her standing there> - The Beatles
1, 2, 3, 4
Well she was just seventeen 음, 그녀는 겨우 17살이었어
You know what I mean 무슨 의미인지 알지?
And the way she looked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Was way beyond compare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어
So how could I dance with another
그래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춤을 출 수 있었을까
Oh, when I saw her standing there
오, 그녀가 거기 서 있는 걸 보았을 때 말이야
Well she looked at me 음, 그녀는 나를 보았고
And I could see 나는 알 수 있었어
That before too long 오래전에
I'd fall in love with her 그녀와 사랑에 빠진 거야
She wouldn't dance with another 그녀는 다른 사람과 춤추려 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