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아방가르드에서는.

A Day In The Life – The Beatles

by 박신호

귀가 아닌 눈으로 음악을 즐겼던 첫 세대. 사회적 담론에 자주 등장하는 86세대이다. 들은 대학가요제와 팝송으로 시대의 불안을 견뎠으며, 캠퍼스에 최루탄 발사가 난무하고 휴강이 잦아질 때면 시위 현장이거나 어두운 음악감상실로 흩어지곤 했다. 때는 쟁가 <산 자여 따르라!>와 록 발라드 <Still loving you>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던 80년 중반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분명한데,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다.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었으니, 일요일였을 것이다. 그날 지금은 얼굴마저 희미한 고향 친구를 금남로에서 마주쳤다. 우연히 만난 우리들은 스낵코너에서 돈가스를 폼 잡고 먹었다. 가격은 이천 원이었을 것이다. 정말이냐고? , 그때는 그랬다.

친구와 오후의 거리를 헤매던 중느 빌딩에 걸린 “MBC 예쁜 엽서 전시회”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무료했을뿐더러, 공짜 입장이라니 뭘 주저하겠는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단발머리, 긴 생머리, 옆머리에 핀을 꽂은 누이들 때문이었지만. 아무튼 나와 친구는 저마다의 사연이 새겨진 예쁜 엽서를 감탄하면서 1층에서 2층으로… 3층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에 도착해 보니, 어떤 원형의 금속 물체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처음 본 그 물체는 무지갯빛을 방광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 일꼬?.’ 안내문에는 CD라는 새로운 음반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럴 리가 있을까. 음반이라면 당연히 3.5인치의 검은 L.P가 아니던가. CD를 몰래 만져보니 금속은 아니었다. CD 앞면에는 몇 해 전 사망한 존 레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4층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였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마이클 잭슨과 폴 메카트니가 커다란 스크린에서 그들의 히트곡 <Say, Say, Say>를 노래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슈퍼스타의 공연에 나를 포함한 더벅머리, 상고머리, 긴 머리, 단발머리 등 모든 머리들이 넋을 잃고 있었다. 화면 아래는 일본어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눈으로 음악을 보여주는 영상물. 레이저 디스크와의 조우였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것은 순전히 마이클 잭슨 때문이었다. 우리 세대는 다들 마이클의 포로들이었다. 그의 춤은 연체동물이 아니고선 나올 수 없는 몸짓이었다. 심지어 전두환 타도!! 를 외치던 선배도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 나오면 열변을 잠시 멈춘 채, 화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가히 “Black Is Beautiful!”이었다.

캠퍼스에는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장에 선거가 시작되었다. 후보들은 학과별로 학생들을 근처 다방에 불러놓고 자신에게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다. 나 또한 어느 선배의 부탁으로 지하 다방에 갔는데, 그곳에는 학생회장 후보가 학내민주화를 역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귀에는 그의 열변은 들리지 않았고, 다만 그곳 천장의 한구석에 매달린 텔레비전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TV 화면에는 한 녀석이 화장한 얼굴로 치마를 입은 채,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그는 1961년생 컬처클럽의 보이 조지 형님이었다.


레이저 디스크로 종일 팝 음악을 들려준다는 음악감상실을 알게 되었다. 금남로 어느 빌딩 11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도착하면 고출력의 노랫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다. 그곳은 그 무렵 광주 영상 음악의 메카 ‘아방가르드’였다. 입장료는 이천 원쯤(?) 좌석은 극장식이었는데, 전면에는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유리 박스에 DJ가 있었고, 그 안에서 DJ들은 신청곡과 자신이 선곡한 팝음악을 레이저 디스크로 틀어주었다.

아방가르드는 커피나 주스를 마시면서 마음껏 팝송을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성소(聖所)였다. 물론 어느 정도 청각의 혹사쯤은 각오했어야 했다. 그렇게 아방가르드를 들락날락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데모하다가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첫사랑의 설렘과 기세 다툼도, 괜한 미래의 불안을 다스린 곳도 그곳이었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기존의 형식을 거부하는 전위예술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귀가 아닌 눈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자체가 아방가르드였던 셈이다. 아무튼 아방가르드 음악감상실의 단골이 되면서 나의 팝 음악 지식은 일취월장했다. 아바의 달달한 노래를 지나서, 딥퍼플의 활화산에 이르렀으며, 존&반젤리스의 오묘한 프로그레시브 세계도 섭렵했다.

하루는 아방가르드 인기 디제이 김영남 씨(고인)가 프로그레시브 뮤직의 아버지 격이라면서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일명 ‘페퍼 상사’ 앨범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담긴 <A Day In The Life>는 지극히 아방가르드적인 곡이라고 소개해주었다. <A Day In The Life>는 몽환과 괴기스러움이 들어있었는데, 이 곡이 담긴 ‘페퍼 상사’ 앨범은 비틀스 실험 정신의 화룡점정이었다. 지금도 비틀마니아들은 ‘페퍼 상사’ 앨범과 <A Day In The Life>는 최고의 앨범, 명곡으로 꼽는다.


그 시절로부터 시간은 흘러, 강산은 세 번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이제 아방가르드 감상실은 물론이요 추억의 음악다방들 또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내가 좋아했던 디제이 아저씨도 저세상으로 가셨으니... 나만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사라진 셈이다. 지금도 가끔 80년대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게 되면 아방가르드 음악감상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비틀스의 <A Day In The Life>가 듣고 싶어 진다.

커피만 마셔도 미제국주의라며 눈을 흘기던 그때의 86세대 벗들도 <Long Long time>과 같은 팝송을 듣게되면 추억에 잠길 것이다. 이제는 이순(耳順)을 넘나드는 86세대에게 한 마디 건네고 싶다. 우린 낀 세대였다고 푸념말고 힘을 내시라.


‘동지는 사라져도 깃발은 남는다’ 던 그날의 투쟁가는 흐려지고, 지금은 마이클 잭슨이 아닌 송가인과 임영웅을 사랑하는 벗들이여. 삶은 난해한 ‘아방가르드’와 같으니, 부디 쫄지말고 다가오는 노년의 뜨락에서 인생의 깃발을 흔들어보시길~


A Day In The Life – The Beatles

I read the news today, oh boy

오늘 신문을 읽었는데, 세상에

About a lucky man who made the grade

성공한 어떤 운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어

And though the news was rather sad

그리고 그 기사는 꽤 슬펐지만

Well, I just had to laugh

난 그저 웃어야 했어

I saw the photograph

난 사진을 바라봤지


중략


I read the news today, oh boy

오늘 신문을 읽었는데, 세상에

Four thousand holes in Blackburn, Lancashire

랭커셔 주 블랙번에 사천 개의 구멍이 있대

And though the holes were rather small

그리고 그 구멍들은 꽤 작았지만

They had to count them all

그들은 그걸 다 세봐야 했어

Now they know how many holes it takes to fill the Albert Hall

이제 그들은 알버트 홀을 채우려면 구멍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I'd love to turn you on

널 흥분시키고 싶어

이전 14화링고는 ES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