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께서 돌아가셨다. 향년 96세. 엘리자베스 2세의 임종을 전하는 뉴스에는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가 흐르고 있었다. 여왕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그녀는‘하느님 은총의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과 그 밖의 국가와 영국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라는 공식 호칭으로 살았다.
영국은 먼 나라다. 의회민주주의와 산업혁명. 그리고 해가 지지 않은 영광의 제국이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고, 축구의 종주국이며 비틀스의 나라다. 지난 20세기 영국의 상징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었다. 여왕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폐하’였다.20대 젊은 나이에 즉위한 여왕의 미소는 아름다웠고, 영연방의 버팀목다운 기품이 넘쳤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 여왕은 자신의 73세 생일상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받았다. 이날의 추억이 인상 깊었던 여왕은 한국인을 만날 때면 그때의 생일상을 말하곤 했단다. 하회마을 유성룡 종택 충효당에 오를 때는 신발을 벗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좀처럼 맨발을 보이지 않는 여왕이건만, 우리의 예법을 존중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비틀스를 만난 것은 1963년 늦가을이었다. 런던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 극장에서 펼쳐진 비틀스의 공연 때였다. 이날의 공연은 텔레비전 생중계되었으며, 여왕과 모후, 마가렛 공주 등 왕실 가족들이 초대된 자선공연이었다. 이날만큼은 천방지축 네 명의 젊은이들도 정장 차림이었다.
이날의 공연이 지금까지 회자되는이유는 존 레넌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곡을 소개할 때 왕실 가족이 있는 객석을 향해 “싸구려 객석의 관객들은 박수를 쳐주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보석을 딸랑딸랑 흔들어주시면 돼요.”라고 다소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존 레넌의 애교 있는 표정과 관객들의 폭소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이때 존 레넌이 소개한 곡이 <Twist and shout>다.
곡명인 ‘트위스트’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춤이다. 존 레넌이 머리를 흔들며 “자, 흔들어봐 지금, 트위스트 추며 소리 질러~”라며 소리 높여 노래하자, 객석이 들썩거렸다. 링고 스타의 드럼도 신났고, 폴 메카트니와 조지 해리슨도 목청을 돋우며 화음을 넣고 있다. 이날의 영상을 보게 되면 그 흥겨움에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감당할 수 없는 분위기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삼십 대의 젊은 여왕도 흥이 났을 것이다. 기품이 넘치는 그녀도 트위스트에 맞춰서 춤을 추는 젊은 백성들을 따라서 몸을 흔들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신발 속 발가락으로 춤을 추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날 비틀스는 여왕의 마음을 춤추게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그 후로 이 년 뒤 비틀스는 영국 최고 훈장인 ‘MBE’를 수여받았다. 명목은 국위선양과 외화획득이었다. 문제는 귀족들의 반발이었다. 최고의 훈장을 저 요란스러운 더벅머리들에게 준다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훈장을 반납한 귀족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여왕은 네 명의 젊은이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몇 년 뒤, 존 레넌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훈장을 반납했다. 여왕님께서 속상했을 것 같다.
여왕의 부친 조지 6세는 말더듬이 심했다. 그의 말더듬이는 유명해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킹스 오브 스피치>란 영화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 영국 황제는 미혼의 젊은 에드워드였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미국 심프슨 부인과 열애를 하면서 스스로 퇴위해 버렸다. 결국 남동생이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그가 바로 말더듬이 조지 6세다. 그렇게 운명은 공주 엘리자베스를 차기 황제 승계자로 점지해 버렸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2차 대전 때 중위 계급을 달고 운전병으로 참전했다. 지금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공주가 무릎을 땅에 꿇은 채, 바퀴를 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훗날 찰스 왕세자도 포틀랜드 전쟁에 공군으로 참전했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왕실을 국민은 사랑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다이애나의 비극은 찰스 왕세자 때문이었다. 여왕은 며느리의 죽음에 침묵했다. 게다가 앤 공주까지 숱한 스캔들 끝에 이혼했다. 차츰 백성들 사이에 불경스러운 루머가 퍼져갔고, 왕실을 폐지하자는 공화제 여론까지 등장했다. 얼룩진 왕실이 되어 버렸다.
여왕은 입헌군주였지만 국민의 삶에 민감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인 대처리즘을 내심 못마땅했다고 한다. 언제가 여왕은 “오늘은 그녀(대처 수상)가 얼마나 내 백성들을 힘들게 했을까?”라고 측근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이처럼 여왕은 왕실의 권위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무려 70년 하고도 214일 동안 말이다.
드디어 삶의 여정을 마친 여왕이 별세계로 갔다. 어쩌면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존 레넌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그가 <Twist and shout>를 노래하면서 “여왕님, 몸을 흔드세요”라고 한다면 마음의 무거운 것 다 내려놓으시고, 마음껏 춤을 추시길... 'God save the Queen’ 신께서 당신을 구원하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