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보낸 주파수

『신과 나눈 이야기』, 닐 도널드 윌시

by 박신호

이건 뭐지? 분명하게 자각되는 이 느낌말이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느낌의 주파수로 들어온다.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감지되는 영혼의 전파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인후염과 후두염은 고질병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가수만큼이나 목소리가 소통과 생계의 중요한 수단이다. 삼십 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면서 성대가 혹독하게 마모되었다. 결국 성대에 잦은 이상을 느꼈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콧 속에 카메라가 달린 와이어를 밀어 넣고 화면을 통하여 불쌍한 내 성대를 볼 수 있었다.

“보세요. 발음할 때 성대가 불규칙하게 열리고 닫히지요. 뭐 성대결절까지는 아니고요.”라며 의사는 직업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물을 자주 마실 것과 갑작스럽게 소리 내지 말 것, 특히 카페인 섭취 자제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를 멀리하라니? 가당치 않은 처방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면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달달한 믹스커피와 깔끔한 아메리카는 소확행이었다. 카페인 자제라는 진단 따위는 무시한 채, 변함없이 커피의 진수 카페인을 즐겼다. 커피의 탐닉에 비례해서 성대는 나날이 망가져갔다. 종국엔 몇 해 전부터 마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내 탓이요, 내 탓일 뿐이다.


그날 카페인과 이별하라는 내면의 메시지를 수신한 후부터 신통하게 카페인을 의절하는 데 성공했다. 신기하게도 더 이상 믹스커피와 아메리카노가 그립지 않았다. 물론 디카페인 커피가 아쉬움을 대신하고는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때의 명징했던 느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닐 도널드 윌시의『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 송신의 위치가 짐작된다.


“나는 모두에게 말한다. 언제나 말한다. 문제는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내 말을 귀담아듣는가이다.” 신은 계속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내게 얘기하려 할 때 우리는 곧바로 말의 한계에 갇히고 만다. 이 때문에 나는 말만으로 교류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말로 교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가장 자주 쓰는 형식은 느낌이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이다.”

놀랍지 않은가? 저자의 손을 통하여 신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받았던 그 느낌은 분명 신이 보낸 전파였음이 분명하다. 아전인수식 해석이 아니냐며 비웃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 느낌을 설명하기란 애당초 불가하기 때문이다.


『신과 나눈 이야기』는 오래전 우연히 ‘불일서점’을 찾았다가 만났던 책이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던가? 이 책을 만난 것도 신의 원격조종일 수도 있다. 아무튼 <신과 나눈 이야기>를 구입했고, 곧바로 전율하면서 읽어갔다. 숱하게 밑줄을 그어댔고,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그렇게 일명 『신. 나. 이』라 불리는 이 책은 나의 또 다른 외경(外經)이 되었다.


『신. 나. 이』는 시리즈별로 총 아홉 권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필독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책의 정보를 나누는 독자 모임도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기말 뉴에이지 물결 속에 등장했던 영적 도서였다.『신. 나. 이』의 국내 출간은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설과 Y2K 종말이 흉흉하게 거론되던 무렵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IMF라는 고난의 행군 중이었다. 이런 말세에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건네다니 신통한 책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저자의 의식으로 기술된 것이 아니겠냐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외계 존재의 채널링과 유사 현상이라는 눈빛도 보낸다. 저자는 성경 집필자처럼 영적인 힘에 이끌려 자동으로 기술했다고 적고 있지만 뒤에 나온 시리즈를 볼 때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긴 하다.


『신. 나. 이』에는 마음에 새길만한 구절들이 두루두루 많다. 가령 기도에 대한 신은 말씀은 이렇다. “너희가 간청하는 것은 갖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다. 너희의 요구 자체가 결핍에 대한 진술이며, 이런 진술은 모자람을 현실에서 만드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는 간청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이다. 감사는 신에게 보내는 강력한 진술 하나의 확약이다.” 기도란 감사하는 것임을 신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한편『신. 나. 이』 가운데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가령 지옥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든지, 악마란 없다는 부분이 그렇다. 물론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그런 지옥까지는 아닐지라도, 삶이 그냥 무(無)로 끝난다면 왠지 허무할 것만 같다.

악마란 뿔 달린 괴물이 아닌 일종의 부정적인 '에너지 덩어리'는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무튼 지옥이나 악마가 없다는 섣부른 단정은 조심스럽다. 바로 이런 논란 때문에 『신. 나. 이』는 기독교 세계에서 금서(禁書) 1호라고 한다.


『신. 나. 이』읽으면서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장소마다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인생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 손오공처럼 신의 현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의 손바닥에 노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 손바닥 주인께 나를 맡기면 어련히 잘 처리해주지 않겠는가? 걱정할 것이 없겠다.


마침 춘삼월 호시절이니 유채꽃이라도 보려 가야겠다. 만사가 신의 손바닥 안이라니, 복음이 따로없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