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신비

『천상의 예언』, 제임스 레드필드

by 박신호

인연이 끝난 책들을 정리하고 있.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일뿐더러, 장차 아파트 평수를 줄여서 이사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달에만 서른 권 정도 책을 처리했다. 어제 아침에도 책장 안쪽에서 오랫동안 숨어있던 책들을 꺼냈다. 빛바랜 종이 빛깔만큼이나 세월이 스며든 책들이다. 그 가운데는 제임스 레드필드의『천상의 예언』이 있었다. 순간, 왈칵하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컴퓨터가 마비되면서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예언이 떠돌던 Y2K 세기말 무렵. 당시 나는 제법 규모가 큰 입시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출근은 오후 두 시, 퇴근은 새벽 한 시였다. 학원은 학교와 달리 수업만 끝나면 업무가 없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직장이다.


눈이 살짝 내리던 어느 저녁이었다. 학원 근처 어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어머! 박 선생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때 같은 학원에서 근무했던 이문경 선생이 웃으며 서 있었다. 이 선생과는 초보 강사 시절 뜻이 맞아 자주 어울렸는데, 내가 결혼한 후 찻집에서 한 차례 만나고는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 찻집에서 만난 이 선생은 내게 청첩장을 받고는 마치 친구를 잃은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이 선생과의 우연한 만남은 반가움과 어색함이 뒤섞인 가운데 십여 분만에 끝나고 말았다. 그녀는 얼마 전에 공무원이 되었다면서 언제 또 보자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고는 돌아섰다. 그렇게 비디오 가게를 나갔던 이 선생이 다시 들어오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천상의 예언』읽어 보셨어요? 안 읽었다고요? 박 선생님이 딱 좋아할 책인데, 인연 있는 자들만 읽게 된다네요. 읽어 보세요. 아무튼 우연히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반가웠어요.”


그렇게 이 선생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어두운 거리로 사라졌다. 제임스 레드필드의 <천상의 예언>은 친구 아닌 친구, 동료 아닌 동료 같던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훗날 이 선생과는 이십 년이 흐른 뒤 자녀 입시 문제로 조우하였다.


『천상의 예언은 뉴에이지 문학의 꽃봉오리다. 뉴에이지는 종교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화였다. 그것은 영성, 비전, 통찰, 단식, 힐링, 채널링, 신과학, 프라초프 카프라, 기(氣), 도(道), 고요, 기쁨, 점성학, 타로, 영적 진화, 공동체, 아봐타, 엔냐, 시크릿 가든 등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다. 보수 기독교는 뉴에이지를 향하여 영적 가면을 쓴 사탄이라 경계했지만, 뉴에이지 음악가 조지 윈스턴이나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을 듣어보시라. 천상의 음악이 따로 없다.

그때의 뉴에이지는 이념의 과잉에 지쳤던 청춘들에게 위로제였다. 독재 투쟁과 위장 취업으로 시대와 젊음을 맞바꾸던 이들에게 베를린과 소련의 붕괴는 허탈 자체였다. 길을 잃었고 허무주의가 캠퍼스에 가득했다. 그 무렵 잔뜩 등을 웅크리고 걷던 청춘들이 길거리 음악상에서 흘러나오던,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의 ‘녹턴’을 들으면서 따스한 위로를 받곤 했다. 그렇게 뉴에이지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는 법을 세상에 일러주었다.


독특한 영적 소설 『천상의 예언』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청소년 상담사(주인공)가 페루에서 발견된 고문서 발견 소식에 흥미를 느끼고 페루를 향한다. 곳에서 주인공은 고문서를 추적하던 중 정부군의 추격을 받게 된다. 주인공은 예기치 못한 일에 휘말리지만 여러 현자들에게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에 대한 아홉 가지 예언과 통찰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천상의 예언』은 우연 뒤에 숨겨진 필연, 직관의 중요성, 꿈의 신비, 동시성, 통찰, 에너지 등 현실 너머의 지평을 보여준다.

특히 통제 드라마에 대한 설명은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해 주었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힘든 세상살이는 거의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 『천상의 예언』은 이러한 갈등의 원인으로 에너지 쟁탈을 지목한다. 인간의 갈등은 상대방의 에너지를 훔치거나 빼앗으려는 일종의 무의식 게임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에너지 쟁탈의 유형으로 가련한 희생자,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심문자, 두려움으로 상대의 에너지 빼앗는 협박자로 구분한다. 이러한 에너지 쟁탈을 통제 드라마라고 한다.

에너지 쟁탈과 통제 드라마는 인간이 아닌 식물이나 다른 사물에게도 적용된다. 가령, 식사 전 기도만 해도 음식에 들어있는 에너지를 잘 받아들이기 위한 행위라고 설명한다. 『천상의 예언』에서는 신은 순수한 에너지이자 사랑과 관심이며, 상대에 대한 이해야말로 에너지를 고양시키는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작은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곧 신에 대한 경배하는 것이다.

『천상의 예언』의 중심축 아홉 가지 통찰을 살펴보자. 첫 번째 통찰은 우연을 알아채는 동시성 이해. 두 번째 통찰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확대와 알아차림의 필요성, 세 번째 통찰은 우주의 순수에너지 인식과 만물에 서린 에너지에 대한 해석. 네 번째 통찰은 인간관계에서의 에너지의 쟁탈전. 다섯 번째 통찰은 진정한 근원과의 연결. 여섯 번째 통찰은 인간관계의 통제 드라마를 파악과 영적 주체성 발견. 일곱 번째 통찰은 내면의 직관력을 이용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일과 안내자를 발견하는 것. 여덟 번째 통찰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 방식 이해. 아홉 번째 통찰은 인류는 진화하고 있으며, 새로운 문명으로 넘어간다는 예언이다.


『천상의 예언』의 설명처럼 그날 이 선생과의 만남도 우연이 아닌 필연일 것이다. 지금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것이 필연의 산물이라니.... 신비로운 우주의 섭리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렇게 『천상의 예언』은 내게 들어왔고, 세상을 신비가 가득한 곳으로 보게 해 주었다.


이러니 어찌 『천상의 예언』을 밖으로 처리할 수 있겠는가. 다시 책장에 꽂아둘 수밖에. 그리고 그 시절의 뉴에이지 음악이 듣고 싶어서 CD를 꺼내본다. 그렇게 엔냐의 Orinoco Flow (오리노코강은 흐르고) 거실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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