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노래를 모른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뭐 이까짓 외국 노래 모를 수도 있지, 참 별스럽네’라는 반감도 갖겠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비틀스의 <Here, There & Everywhere>은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Yesterday>나 <Let,s it be>, <Hey jude>가 비틀스 음악의 전부인 듯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 노래보다 멋진 곡들이 한둘이 아니다. <Here, There & Everywhere>은 폴 메카트니의 음악적 역량과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의 하모니가 일품인 곡이다.
‘여기(Here), 저기(There), 모든 곳(Everywhere)’ 라는 제목부터가 인문학적이다. 사랑의 열병을 고백하는 이 노래는 비틀스의 중기 대표 명반 <리볼버>에 수록되어 있다.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인 <리볼버> 앨범을 기점으로 비틀스는 아이돌 밴드에서 벗어나 아티스티로 발돋움한다. 그 중심에 <Here, There & Everywhere>이 있다.
<Here, There & Everywhere>을 들을 때면 억세게 불운했던 사내 ‘피터 베스트’가 떠오른다. 그는 링고스타가 밴드에 합류하기 전 비틀스의 드러머였다. 피터가 비틀스에 합류한 것은 함부르크 공연 무렵이었다. 무명의 밴드 비틀스가 싸구려 클럽에서 죽어라 연주할 때 피터 역시 열심히 드럼을 쳐댔다.
1962년 비틀스가 드디어 메이저 세계에 발을 디딜 무렵 피터는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으로부터 해고를 당하게 된다. 마치 손에 쥔 일등 당첨 로또를 하루아침에 빼앗긴 상황이랄까. 피터는 그렇게 비틀스에서 쫓겨났다. 그가 추방되던 날 조지 해리슨은 분노한 팬에게 얼굴을 얻어맞았다.
피터가 그룹에서 왕따를 당했던 이유가 잘생긴 외모 탓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미확인 정보지만. 다른 설로는 드럼 연주하는 피터의 자세를 멤버들이 싫어했다는 말도 있다. 소리를 질러대는 존, 폴, 조지와 달리 피터는 얼굴에는 표정 없었다고 한다. 물과 기름처럼 피터는 다른 멤버들과 멀어져 갔다.
아무튼 피터가 쫓겨난 이듬해부터 비틀스 인기는 하늘을 찌르다 못해 뚫을 기세였다. 리버풀 거리를 쓸쓸하게 배회했을 피터의 측은한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얼마 전까지 함께했던 밴드 동료들이 TV 화면에 나올 때면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위로도 받았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 질투로 피터의 영혼은 타버리지 않았을까.
비틀스와 헤어진 피터는 호구지책으로 제빵 기술을 배우기도 했고 또 다른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종국엔 자살까지 시도하기에 이르렀는데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자살 실패 이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지금껏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피터는 자존감을 지켜낸 사나이다. 생계가 막막했을 그에게 달콤한 위로와 제안이 들어왔다. 너무나도 성공해 버린 비틀스 멤버들이 그에게 물질적 도움을 제안했던 모양이다. 멤버들도 하루아침에 밴드에서 쫓겨난 피터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피터는 멤버들의 물질적 도움을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물론 그 거절의 발로가 자존심인지 자존감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약 물질적 도움을 덜컥 받았다면 피터는 더 남루했을 것이다.그렇게 그는 비틀스 역사에서 지워져 갔다.
인터넷으로 ‘피터 베스트’란 단어를 검색하면 현재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피터는 노년의 흰머리를 날리면서 유유자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비틀스에 대한 애증도 다 증발했는지 비틀스와 관련된 작은 이벤트 사업을 하고 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라든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과 같은 극단적인 말을 하는 이들은 내가 기피라는 대상 1호다. 이들의 자가당착과 폭력성을 익히 보았던 터라 그렇다. 피터는 비틀스 멤버에게 당했던 충격을 지혜롭게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시절을 즐기고 있다. 그는 용서와 망각이란 지렛대로 소확행을 만끽하고 있다. ‘목에 칼’과 ‘눈에 흙’을 찾는 이라면 피터에게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1995년에 하늘은 피터에게 뜻밖의 선물을 선사했다. 비틀스 음반<앤솔로지 1>에 피터의 드럼 연주가 담긴 초기 몇 곡이 수록되었다. 덕분에 그는 수익금 일부를 배당받았는데 그 액수가 그간에 모았던 재산보다 많았다고 한다. 분명 그날 피터는 드럼을 신나게 두드렸을 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이럴 경우일 것이다.
지금도 피터 베스트는 흰머리를 날리며 드럼을 연주하는 경쾌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지금은 세상에 없는 존 레넌이나, 조지 해리슨,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도 피터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힘찬 박수를 보낼 것이다.
봄꽃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날, <Here, There & Everywhere>를 들으면서 피터를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인생이란‘여기(Here), 저기(There), 모든 곳(Everywhere)’ 에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여정인 아닐까 하는. 땡큐 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