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here Man, 어린 왕자

<Nowhere Man>, The Beatles

by 박신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파우스트』에서 나오는 유명한 대사이다. 어긋난 말 같지만 역설의 날카로움이 묻어있다. 봄비가 내렸던 날. 『어린왕자』를 다시 읽게 되었다. 기분 탓일까? 어린 왕자가 방황하는 구도자로 내게 다가왔다.

『어린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국민(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학교 도서실을 자주 찾았다. 그곳에 놓여있는 사탕을 먹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풍기는 책 냄새와 고요함에 더 끌렸다. 도서실 벽면에는 삽화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유독 바오밥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어린 왕자 그림에 눈길이 갔다.

한 손에 칼을 쥐고 파란색 긴 코트를 입은 어린 왕자는 멋있었다. 그렇게 만났던 『어린왕자』는 다른 동화책과 달리 읽기가 어려웠다.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랄까? 지루했고 버거웠다. 결국 중반부터는 종이만 넘기면서 건성으로 읽고 말았다. 『어린왕자』는 동화란 가면을 쓴 요상한 책이었다.


난해했던 『어린왕자』를 불혹에 들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법정 스님의 수필 가운데서 어린 왕자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였다. 퇴근길 서점에서 『어린왕자』를 구입했다. 시내버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는데 어린 날의 도서실이 떠올랐다. 실로 삼십 년 만의 조우였다.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내 영혼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 후로 정월이 되면 새해를 여는 첫 책으로 <어린 왕자>를 읽곤 했다. 그때마다 내 눈은 맑아졌고 마음은 평화로웠다. 만약에 신께서 인생 책 한 권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어린왕자』을 택할 것이다.

언제가 성당 교우가 내 카카오톡 배경 이미지가 멋있다고 했다. 어린 왕자와 장미, 여우가 그려진 화면이었다.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를 실시할 때도 를 글감으로 『어린왕자』제시하곤 했다. 법정 스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린왕자』를 열 번가량은 읽었으리라.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번에 읽은 『어린왕자』는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던 파우스트의 대사처럼 방황하는 영혼으로 다가왔다. 어린 왕자는 떠돌이 노마드 (Nomad)였고, 비틀스가 노래했던 갈 곳 없는 존재 <Nowhere man>였다.


“Nowhere man don't worry, Take your time, don't hurry, Leave it all 'til somebody else, Lends you a hand (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은 많아요, 서두르지 마세요, 기다려도 돼요,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때까지)”


어린 왕자가 B615 행성을 떠나 별들 사이로 방황할 때, 이런 노래를 들었다면 덜 외로웠을 것이다. <Nowhere man>은 친부모 대신 이모 손에 자랐던 사춘기 시절 존 레넌의 방황이 담긴 자전적 음악이다. 이 노래는 존 레넌 자신뿐만 아니라, 번뇌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곡이다.

노력하는 자는 방황한다는 말을 조금 비틀어본다. 방황은 뜻밖의 신선한 생의 기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요즘 그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올해는 낯선 곳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일면식 없는 타자들 속에서 내 감각은 민감해진다. 첫 출근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나른했던 삶의 세포가 열기에 싸여 새로워지고 있다.


방황하는 자의 마음은 열려있기 마련이다. 여행 배낭 걸치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는 방황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수피 시인 루미는 우리의 삶을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나그네 신세라고 했다. 어린 왕자도 영원한 행복을 찾아 헤매던 신세였다. 이런 이들을 구도자라고 부르던가.


혹시 선재동자를 들어보았는가? 그는 입계품에 등장하는 어린 구도자다. 내게 선재동자는 어린 왕자와 겹치는 캐릭터다. 선재동자는 바라문, 거사, 여인, 부자, 왕, 이단자, 비구니와 같은 숱한 선지식에게 진리를 구하기 위해 방황하는 수행자다.

마치 B615 행성을 떠나 하늘의 별을 떠돌던 어린 왕자와 닮지 않았는가. 어린 왕자도 권위적인 왕, 허영꾼, 술주정뱅이, 사업가, 가로등지기, 지리학자, 여우를 만나면서 세상을 배우던 구도자였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화두였다. 어린 왕자는 꽃에게 ‘모순된 존재’라는 말을 던지고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B615 행성 떠나서 끝에 도착한 곳은 사하라 사막이었다. 그곳에서 현자인 사막여우에게서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깨달은 어린 왕자는 단 하나뿐인 자신의 꽃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방황이 끝난 것이다.

어린 왕자처럼 선재동자도 방황 끝에 보현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보현보살은 구도자들에게 법계(法界)를 열어주는 행원(行願)의 불보살이다. <화엄경>은 최상승의 대승경전이라 불린다. 선재동자는 <화엄경>의 어린 왕자인 셈이다.


방황은 구도자들의 운명이다. 어린 왕자도 선재동자도 방황을 방편으로 삶의 신비를 깨달은 것이다. 방황하며 흔들리는 모두가 어린 왕자요, 선재동자이다. 떠돎은 외로운 길이다. 그 길 위에서 <Nowhere man>을 들으며 걷다 보면 덜 외로울 것이다.

창밖에는 서서히 어두움이 밀려온다. 이제 나의 행성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내게도 장미 한 송이가 있는데,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하다던 감정은 사라졌다. 대신 서로 길들이며 살다 보니 그 무섭다는 정(情)이 생겨버렸다.


부디, B615 행성으로 돌아간 어린 왕자여~ 그대는 어깨를 펴시고, 장미는 좀 적당히 하시게. 고운 정(情) 쌓기에도 시간은 짧을 테니 말이다.


<Nowhere man> - The Beatles


He's a real nowhere man

Sitting in his nowhere land

Making all his nowhere plans for nobody

그는 정말로 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의 아무 데도 아닌 곳에 앉아있죠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아무것도 아닌 계획을 세우면서요.

Doesn't have a point of view

Knows not where he's going to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아무런 관점이 없어요

어디를 가는 건지도 모르고요

저와 당신과 조금 닮지 않았나요?

Nowhere man please listen

You don't know what you're missing

Nowhere man, the world is at your command

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 제 말을 들으세요

당신은 당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고 있어요

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 세상이 당신의 손아귀에 있답니다

- 이하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