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현존의 성자

『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 달라이라마

by 박신호

류시화가 번역한 『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는 현존이 느껴지는 책이다. 현존이란 모든 만물에 신의 기운이 스며있다는 말이다. 이를 두고 선가(禪家)에서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이라 부르기도 한다. 새 천 년으로 넘어가던 그해 겨울, 그 책은 내게로 다가왔다.


그 무렵 명상가들에게 아바타 수행법은 화제였다. 깨달음을 단기 완성 시켜 준다는 홍보가 이목을 끌었던 탓이다. 호기심 많은 내가 그냥 지나치겠는가. 운림동에 있는 아바타 센터를 찾아갔고 신청 방법도 안내받았다. 문제는 적잖은 수련비였다.


결국 고심하다가 신청을 미뤄야 했다. 마음공부도 자본화되었다고 구시렁대면서 ‘베토벤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그곳에는 스승님으로 모셨던 법사님이 와 계셨다. 그렇게 법사님과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커피숍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그분은 법정 스님과 인연이 깊은 분이다.

동석한 사장님이 뜬금없이 아바타 수행을 화제로 꺼냈다. “아바타 수행 좀 이상해요. 마스터, 위저드 코스까지 수백만 원이 든다는 데. 거기 괴짜들이 많아요.” 나는 속이 뜨끔해졌다. 마치 내 고민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뭐? 깨달음을 속성으로 끝낸다고? 그거 사기꾼들이다. 만약 그런 길이 있다면 예수, 부처는 뭐가 되냐. 성자들이 바보야!” 법사님 언성을 높였다. 이 말에 맞장구치던 사장님은 좋은 책을 읽고 있다며, 주방에서『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를 들고 왔다.


해 질 무렵이 되어 커피숍에서 나왔을 때는 아바타 수행에 대한 고민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내가 괴짜가 되는 걸 원치 않으신 신께서 두 분을 통하여 해결해 준 셈이었다.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사장님이 말했던『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를 구입하고자 서점에 들어갔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생전에 꼭 뵙고 싶은 어른이다. 몇 해 전, 순천 사랑어린배움터 학생들이 다람살라에서 존자님을 만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부럽던지... 인솔 책임자였던 목사님은 “다들 눈물이 나는데, 희한했어요. 이유도 없이 눈물부터 나와. 예수님이 현존하신다면 달라이라마 같겠구나 싶었지.” 라면서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나도 티베트와 달라이라마 존자님이라면 꼬박 죽는다. 영화 <쿤둔>, <티베트에서 보낸 7년> 물론이요, 난해한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도 읽어보았다. 심지어 학급 게시판에 티베트의 독립을 뜻하는 프리티베트(free tibet) 포스터까지 부착했으니, 이만하면 진정 티베트 덕후인 셈이다.


<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를 처음 펼쳤을 때, 눈을 끌어당기는 글귀가 있었다. “모든 종교의 목적은 바깥에 사원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선함과 친절의 사원을 짓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든 종교는 그 내면의 사원을 지을 능력이 있다.”

1994년 달라이라마는 로렌스 프리먼 신부 초대로 영국에서 열리는 존 메인 세미나에 참석했다. 존자님은 이곳에서 사흘 동안 성경을 강론했다. 『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는 이날에 대한 기록이다. 존 메인 세미나는 침묵 명상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달라이라마의 성경 낭독과 강론을 마치면 토론이 이루어졌다. 마무리는 역시 침묵 명상이었다.

“매일 아침 식사 전에, 다시 말해 세미나가 예정된 순서로 시작되기 전, 달라이라마는 동행한 티베트 승려들과 그곳에 모인 모든 그리스도 교인들과 함께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 부동자세로 30분간 명상에 잠겼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헛기침만이 정적을 깨는 고요함 속에서 우리가 가졌던 염려는 달아났다.”- (15쪽) 마치 금강경의 ‘법인인유분’과 흡사한 분위기다. 현존이란 이러한 고요함을 바탕으로 한다.

달라이라마는 강론 중에 ‘양의 머리에 야크 몸을 올리지 말라’며 어설픈 종교 혼합을 반대했다. 그러면서 루르드 성모 발현지에서 받았던 강한 영적 체험을 고백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플락티케’ 즉 개념에 의한 지식이 아닌, 경험을 통한 지식이라면서 명상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었다.

달라이라마는 주최 측에서 간추린 복음서의 아홉 장면을 가지고 강론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넘나드면서 ‘선한 마음(Good heart)’이라는 주제를 해박함과 유머로 풀어냈다.

『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를 읽는 동안, 마치 존 메인 세미나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책의 뒷부분에는 “이 책은 명상과 사랑의 표현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있었다. 그제야 이 책이 살아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구나, 결국 현존의 힘은 사랑이구나.’ 저절로 호흡이 깊어졌다.


달라이라마를 뵙고 싶은 내 소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고령이신 존자님 연세를 생각하면 어려울 것 같다. 대신 수 차례 불발되었던 달라이라마의 방한(訪韓)이 가까운 날에 이루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해 본다.

예수님께서도 달라이라마를 사랑하시리라. 어차피 존자님도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던가?. 혹시 누군가 내게 이단이냐며 시비를 걸어오더라도 대꾸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랴. 그 무지를 치유하는 방법을 나는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