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 지혜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저 보고 들어라. 그 이상은 필요 없다.” (본문 중에서)
영혼을 건드리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강력하다. 읽는 이는 물론이요, 공간까지도 정화시킨다. 그 아우라는 시대를 초월하여 고전이라는 월계관을 수여받는다.
종이 냄새 때문에 새 책을 못 본다는 희한한 분을 알고 있다. 종이의 휘발성분 때문이라는데 일종의 알레르기다. 새 책을 펼칠 수 없다는 그 딱한 사정에 웃을 수도, 위로할 수도 없었다. 종이도 이런 사실을 안다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얼마 전, 그가 신기한 말을 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관옥 선생님이 내신 책을 볼 때면 눈과 코가 가렵지 않아요. 희한하죠?”라며, 관옥 선생이 번역한 틱낫한 스님의 신간을 펼쳐 보였다. 관옥 선생은 그와 내가 마음으로 모시고 있는 영성가이다. 처음 그의 말을 듣고서 ‘그럴 수 있나?’ 싶었는데, 모든 책에는 글쓴이의 상념이 담겨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그런 책이 있다. 그 책에 손을 올려놓으면, 일렁이던 번뇌가 잔잔해짐을 느끼곤 했다. 독일의 현자 ‘에크하르트 톨레’가 쓴 『고요함의 지혜』란 책이다. 그의 다른 저서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고요함이 말한다』,『이 순간의 나』,『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등에도 평화로운 에너지가 책에 스며있다.
‘에크하르트 톨레’를 알게 된 것은 수능이 가까워지던 어느 가을이었다. 이때쯤이면 고3 교실의 분위기가 팽팽해진다. 책상마다 EBS 교재들이 넘쳐난다. 감히 교양도서 따위가 자리할 틈은 없다. 이런 팍팍한 수능 교재들 사이로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은 책이 눈에 띄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책이었다. 무채색으로 조용하던 학생이 읽고 있었다. ‘이 녀석 뭐지?’와 ‘이 책은 뭐야?’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겉표지에는 ‘Power of now’라는 영어 부제와 함께 ‘에크하르트 톨레’라는 저자 이름이 있었다. 그렇게 톨레를 알게 되었다. 수능 직전임에도 톨레에 빠져있던 조용한 그 녀석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God bless you” 그에게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날 그 무채색 녀석에게 빌려서 몇 쪽을 읽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며칠 후 도착했는데 영성의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그 후로 톨레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거의 놓치지 않고 읽었으니, 현자 톨레로부터영적 초대를 받은 셈이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고요함의 지혜』는 얇지만 강력한 책이다. 마치 『법구경』과 같은 짧은 경구 형식으로 자신의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소설처럼 읽어서는 안 될 책이다. 천천히 읽다가 자주 눈 감고 책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활자에서 들려오는 맑은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톨레는 『고요함의 지혜』에서는 고요가 곧 ‘나’라고 말한다. 이와 반대는 찰거머리 ‘에고’이다. 에고는 자웅동체인 마냥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곁을 맴돈다. 평생토록 에고의 생떼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다행히도 깡패인 에고를 쩔쩔매게 하는 것이 있으니 ‘알아차림’과 ‘침묵’이다. 이 둘은 영혼의 백신이며, 고요함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다.
오늘날 예수와 닮은 이를 꼽으라면 ‘달라이라마’ 일 것이다. 달라이라마의 영적인 힘은 알아차림이다. 그는 마주하는 모든 것을 향하여 오롯하게 집중한다. 언제나 상대의 눈을 마주 보면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주변에 인파가 많아도, 한 사람을 향한 집중을 잃지 않는다. 찰나의 만남일지라도 정성을 다한다. 달라이라마를 친견할 때 대중들이 흘리는 눈물은 알아차림의 감화 때문이다.
침묵은 고요함에 이르게 하는 영혼의 가이드이다. 말이 많으면 마치 피를 토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운명에게도 해로운 일이다.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침묵이 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맑은 영혼들은 침묵으로 기도한다. 예수도 골방에서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했다.
이제 나의 고요함을 살펴본다. 닿고 싶은 고요의 경지는 까마득하다. 마음에 중심을 잃고 한바탕 신나게 떠들고 나면, 밀려오는 허망함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일종의 고질병이자, 정신 질환이다. 내 입에 소란함이 가득한 날이면, 타고난 내 그릇의 작음을 한탄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헛된 말로써 에고에 아첨하는 아바타가 된다면 재난일 것이다.
세상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뜨겁고 요란스럽다. 그 불길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톨레를 따라서 그 고요의 틈으로 찾아가야 한다.『고요함의 지혜』라면 능히 영혼의 안내자가 될 것이다. 책은 살아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당신 삶에는 중요한 것이 많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다음 생에도 그 하나를 알지 못하면 환생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