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미의 동학참전기
(東學參戰記)

화개의 인생 순례기6

by 박신호

#1

낯선 신조어를 만나면 주눅이 든다. 작년에 만난 ‘주린이’라는 단어도 그랬다. 처음엔 ‘주’씨 성을 가진 그 누구의 이름쯤으로 여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주식’과 ‘어린이’의 합성어라고 했다. 그 무렵 ‘동학 개미’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도 만났다. 얼핏 갑오년 동학농민운동을 떠올렸는데, ‘동학’이 ‘개미’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학 개미’란 희한한 신조어는 주식투자에서 외국인 또는 거대 투자기관 세력에 맞서는 ‘장삼이사(張三李四)’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즉 부자를 꿈꾸며 주식에 뛰어든 서민들이 ‘동학 개미’였다. 개벽을 외치며 삼남의 동학군을 봉기했던 녹두 장군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정신을 개벽하자던 동학 정신이 자본으로 개벽하자는 구호로 바뀐 셈이니 말이다. 녹두 장군께서 다시 살아오시면 분기탱천할 일이다.


연일 이어진 부동산 폭등은 서민들에게 좌절과 공포였다. ‘동학 개미’는 불안한 미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선택이었다. ‘동학 개미’들은 소액이라는 죽창으로 투자에 참전했고, 거대한 자본 세력을 상대로 선전했다. 마치 다윗이 돌팔매로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말이다. 작년 한 해, 언론은 ‘동학 개미’들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몇 차례 전투에서 경이로운 승리를 했노라고 소식을 전했다.


#2

자본은 세계를 움직이는 근간이다.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는데, 자본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은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를 선물했지만, 환경파괴와 영혼 타락을 불러온 야누스이기도 하다. 자본은 선망과 질투, 오만과 무기력이 혼재된 카오스이며, 위선과 염치를 동반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딜레마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과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광고는 혐오스럽다. 이런 염치없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어느 정치인이 4대강 개발을 하겠다는 염치없는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나는 이런 세상 흐름에 주변머리가 없다. 다들 한다는 골프에도 무지해서 모처럼 만나는 동창들로부터 무언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럴 때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은 ‘정신승리’라는 망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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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녹색평론’을 손에 들고, 새만금 갯벌을 지키는 모임에도 참가했으며, 환경과 마을을 살리자는 시민단체에도 가입하는 등 ‘녹색 개미’가 되고자 했다. ‘월든’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 ‘무소유’의 법정, ‘아름다운 삶’의 헨렌 니어링 등을 흠모하면서 내 영혼이 이들을 닮기를 바랬다. 마지못해 신포도를 포기하고 겉으로만 의젓했던 여우의 위선일망정 말이다.


‘동학 개미’들은 외국인과 기관들의 폭탄급 매도에도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연한 투지로 매수를 하는 저력을 보였는데, 갑오년 전주성 입성을 앞둔 동학군의 기세라고 할까. 이쯤 되자 나도 ‘도대체 뭐지?’란 호기심은 생겼지만, 주식투자는 여전히 먼 외계행성일 뿐이었다. 기세등등한 승리는 ‘찰라’일 뿐, 결국 거대한 자본 세력들에게 진압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내가 한 마리 개미가 되어 동학에 가담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요, ‘세상은 요지경’임이 분명했다.


#3

집 안의 경제담당은 아내의 몫이었다. 나는 출근과 퇴근을 성실하게 반복하는 ‘직장 개미’였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감사했다. 물론 여행 프로그램이나 아프리카 난민을 돕자는 캠페인을 시청할 때면 ‘돈이 넉넉하면 좋겠다.’ 라고 하는 소망이야 어찌 없었겠는가? 게다가 외벌이 처지인 탓에 어느 정도 물질적 여유에 대한 바램은 은연중에 있었다.


정년을 향한 가속도를 느끼면서 퇴임 후 생활에 관심이 높아졌다. “자네는 연금이 괜찮아서 걱정 없겠네.”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기는 하지만, 퇴직은 불안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해 가을쯤, 전남대 정문 공터와 일곡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버거워하는 노인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이들의 쓸쓸한 얼굴과 무기력한 그림자 속에서 내 모습도 어른거렸다. 나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을 경험한 ‘싯달타’가 받았던 충격을 알 것 같았다.


며칠 후, 아파텔 분양 광고 전단지를 들고 퇴근길에 분양사무실을 찾아갔다. 집사람에게 말도 하지 않고 말이다. 밖에는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분양사무실은 뜨거운 별천지였다.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어정쩡한 내게도 팀장이 다가왔고 상담은 시작되었다. 주위의 다른 상담과 달리 우리의 상담은 낯선 용어들과 함께 난해하게 진행되었다. 상담 중에 애써 초보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노련한 팀장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사모님과 함께 다시 오세요” 그가 내게 남긴 말이었다.


분양사무소에서 선물로 준 화장지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뭔가 착각하고 살았나? 하늘은 이치를 알고 싶었는데, 정작 두 발로 디디는 땅의 이치를 모르고 살았구나’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불균형한 내 삶의 증거이자 모멸이었다. 그날 저녁 뉴스에도 ‘동학 개미’들의 전투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는데, 나는 화면을 뚫을 듯 응시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는 ‘존리’를 알게 되었고, ‘존버’에 깊게 공감했으며, ‘영끌’를 우려하는 한 마리 개미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소롭게 여겼던 ‘동학 개미’들이 진짜 갑오년 동학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유튜브를 선생으로 모시고 참전을 위한 학습에 들어갔다.


드디어 때가 왔다. 아내 모를 눈먼 돈, ‘백만 원’이 들어온 것이다. 주저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개미가 되었고 동학군의 전선에 참전했다. 비록 ‘백만 원’이지만 소박한 죽창으로는 충분했다. 계좌를 만들었고 첫 주식을 매수했다. MTS 화면에 표시된 주문 현황과 잔고를 보면서 경제적 자유를 상상했다.


주식은 뜻밖의 활력소였다. 지구촌의 흐름을 종합, 분석하고 학습하는 것은 재미난 일이었다. 복리와 배당, ETF를 이해했던 날은 ‘배우면 기쁘지 않냐’는 공자님 물음에 “예”라고 크게 대답하고 싶을 정도였다. 노년 치매 예방까지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4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샌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늦은 나이에 알게 된 이 세계에 넋이 나가거나, 부질없는 말로 허세를 떨지도 모를 일이다. 내 깜냥만큼만 주변에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불공정하고 각자의 몫은 다를 수밖에 없다. 새벽에 내린 이슬은 꽃을 피우게 하지만, 뱀의 독이 될 수 있다. 아침에 내린 이슬로 뱀의 독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함을 마음에 새겨본다.


뒤늦게 ‘동학 개미’가 된 남편과 아빠를 가족들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개미가 된 가장(家長)의 선전을 힘껏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백만 원이 준 기쁨으로는 눈물 날 지경이다. 요 며칠 전, 주식 잔고를 확인해보니, 동학 참전 반년 동안 팔만 원의 수익이 있었다. 수익률마저 ‘개미’스럽다. 그래도 좋다. 저녁 귀갓길에 피자 한 판 들고 가야겠다. ‘소확행’이란 이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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