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신호 Sep 17. 2021

추석 저녁은 트로트와 함께

#1

크리스마스가 되면 케빈이 온다. 세월이 흘러 늙어가는 것은 세상의 이치(理致)건만, 케빈은 언제나 천진난만한 귀요미이다. 우리에게도 추석 명절이면 케빈처럼 떠오르는 이가 있다. 진한 눈썹과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인 가수 나훈아. 그가 작년 추석 명절에 씩~웃으며 우리 곁으로 왔다.      


 코로나로 뒤숭숭했던 작년 추석. 한가위 보름달보다 더 환한 얼굴로 나훈아가 왔다. ‘2020 대한민국 어게인이란 제목과 함께, 그는 백발의 꽁지머리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등장했다. 추석 명절,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는 나훈아의 공연이 우리 집이라고 그냥 지나쳤을 리는 없다.     


 #2

명절 연휴 첫날 아침이다. 아내는 벌써 뾰로통한 얼굴이다. 성격 다른 시어머니와 함께 알콩달콩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물론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럴 때 남편들은 극히 절제된 언행이 필요하다. 이해해라너는 왜 그러냐’ 따위 말을 뱉는 순간, 한가위 보름달은 요단강 저편으로 꼴까딱 넘어가고 만다.     


 음식을 준비하는 한나절, 어머니, 아내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연출하는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다. 서로 행복한 듯 웃고 있지만, 고부(姑婦)간 긴장감은 은영 중의 말꼬투리에서도 묻어난다. 이 여인들 중심에 있는 나는 점점 피곤해진다. 전(煎)을 부치고, 여러 종류의 나물과 고기 등, 요리 삼매에 빠진 여인들의 노고(勞苦)는 한낮의 절정을 지난 다음, 해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마무리된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덕담이 풍요로운 음식만큼이나 난만하다. 명절 분위가 가득한 식사가 끝나자, 다들 거실에 모여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어디 계실까? 보이지 않는다. 안방에서 벌써 주무시나?’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어머니는 안방에 있는 작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계신다. 곧 나훈아 공연할껀데니들은 안보니안 볼 거면 문 닫아라” 하신다.      


#3  

 나는 트로트를 싫어한다. 대학생 때는 ‘물새 우는 강언덕’, ‘울고 넘은 박달재’, ‘꿈꾸는 백마강’ 등 애창 레퍼토리가 제법 있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로 시작되는 ‘꿈꾸는 백마강’을 부를 때면 본당 신부님께서 좋아하셨다. 사실 국문과 학생에게 트로트는 일종의 교양 과목이었다.  

   

 첫 직장, 첫 회식 시간. 차장님의 명으로 신입사원 대표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회사 선배들은 신입사원답게 최신곡 불러보라고 했지만, 싹~무시하고 나훈아의 ‘무시로’를 불렀다. 그날따라 별스럽게 노래가 잘 되었는데, 차장님은 쓸만한 신입사원을 발견했다는 듯 흐믓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트로트와의 인연은 딱 여기까지였다. 지겹도록 단순한 리듬 반복, 어설픈 눈물샘 자극, 상투적인 노랫말. 트로트가 방송에서 나오면 채널을 돌리곤 했다. 애창곡이었던 ‘꿈꾸는 백마강’, ‘무시로’의 가사도 희미해졌다. 벗들과 노래방을 갈 때도 트로트는 거리두기 대상이었는데, 특히 나훈아의 ‘영영’과 ‘사랑’은 질색이었다.     

 ‘2020 대한민국 어게인’이란 대형 화면 자막과 함께 나훈아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백발의 꽁지머리와 주름 없는 팽팽한 얼굴의 그가 화면에 나타났다. 어머니의 얼굴은 보름달보다 더 환해진다. 아내는 잠깐 보더니 보톡스 많이 맞았구먼라는 말과 함께 슬며시 나간다. 명절날 저녁에 어머니 혼자 텔레비전을 보게 하는 것이 불효 같았다. 별수 없이 나훈아 한가위 공연을 보게 되었다.     


 “코로나로 고생하는 국민을 위하여 공연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나훈아가 말한다.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그는 히트곡을 열창하기 시작했다. 요 몇 년간 과도한 트로트 열기가 못마땅했던 나는 시큰둥하니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훈아의 첫 노래를 듣고 나서 어머니를 바라보니 표정이 한가위 보름달처럼 밝아져 있었다. 

   

 나훈아의 목소리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미성(美聲)이었다. 어느새 듣는 이의 마음 한 칸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츰 어머니는 젊은 시절로, 나는 어렸던 시절로 소환되어 갔다. ‘고향 역’, ‘물레방아 도는데’, ‘녹슨 기찻길’ 등 그의 노래에 푹 빠진 어머니와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훈아를 좋아했다는 점과 라이벌이었던 남진과 비교하면서 분주하게 추억을 복기(復棋)하고 있었다.


#4 

무려 세 시간 넘은 나훈아 공연이 끝났다. 경로당에서 공연 정보를 들었던 어머니는 그때부터 즐길 준비를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졸린 얼굴로 거실에 있는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 당신의 보금자리로 들어가셨다. 나 또한 피곤이 엄습했다.      


 나훈아 공연 좋던가?, 그 사람 느끼하잖아.” 내가 예상을 깨고, 나훈아 공연을 다 보자 아내는 시비조로 말한다. 그녀는 텔레비전 화면에 꽉 찬 트로트 가수 임영웅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아내는 임영웅과 다른 일곱 명 모두가 노래를 잘한다면서 들어보란다. 아~ 지긋지긋한 트로트. 하지만 어쩌랴. 이 밤은 덜도 말고더도 말라는 한가위 저녁인데. 이번에는 임영웅과 젊은 일곱 명 트로트 가수들이다. 창밖 추석 보름달이 내게 노래 잘 들어라라는 듯 밝은 빛을 보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개미의 동학참전기 (東學參戰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