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신호 Oct 03. 2021

우리 동네 바리스타 기씨

화개의 인생 순례기5

#1

이게 탄자니아 커피예요영국 황실에서 마신답니다.” 커피를 권하는 기씨의 미소는 영국 귀족만큼이나 우아하다. 우윳빛 잔에서는 커피 고소한 향이 몽롱하게 피어오른다. 실내 공기도 서서히 향에 젖어간다. 커피 향기는 몽상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몽상은 편안하고 일상에 찌든 세포를 나른하게 만든다.      


 요즘, 옆집 기씨는 열렬한 커피 전도사가 되었다. 얼마 전, 나주에 있는 어느 절집에서 커피 관련 강의를 들은 후부터이다. 고풍스런 사찰에서 차(茶)가 아닌 커피 강좌를 했다는 것이 살짝 우습기도 하다. 그 강좌 수강한 기씨는 몇 가지 커피 관련 용품들을 구입했고, 관련 책도 읽기 시작했다. 기씨는 바리스타 양성이라는 전문 기관을 다니지 않고 홀로 커피 삼매에 빠져든 것이었다. 비록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는 기씨였지만, 그가 내리는 커피 솜씨는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탄자니아 커피는 머그컵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씨는 말한다. 커피는 유선형 가슴처럼 생긴 전통 잔으로만 마셔야 한단다. A컵, B컵, C컵이란 말의 유래도 커피 잔에서 비롯됐단다. 기씨는 전통 본차이나 잔에 내린 커피를 따른다. 나는 탄자니아 커피를 마시면서 마치 영국 황실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 맛은 이름만큼이나 원초적이다. ‘아 쓰다 무심결에 내뱉는 말과 함께 내 표정은 찡그려졌다.    

  

  기씨는 내 표정을 보고도 짐짓 모른 체 시선을 돌린다. 나도 재빠르게 표정을 정돈한다. 커피 맛이 깊네요이걸 영국 황실에서 마신다구요?”라고 묻는다. 기씨 는 커피가 너무 진했나요라며 무안해한다. 어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함께했던 k 교수는 커피 맛이 처음엔 쌉싸름하지만, 뒷맛은 부드러운 여운으로 혀끝을 감싼다고 후한 평을 내린다. 지랄 같은 계층의 양극화가 맛을 보는 혀의 감각에도 존재함을 커피를 마시면서 배운다.     


#2   

한 달 후, 나도 커피메이커를 인터넷을 통하여 구입했다. 커피메이커는 도착했는데 어디에도 사용 방법에 대한 설명서를 찾을 수 없었다. 상식적인 것을 물어볼 때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주저 끝에 기씨에게 전화를 했다.커피메이커 하나를 구했는데 어떻게 내려 먹는지 잘 모르겠어요?”,“그래요 축하합니다한번 가 봐야겠네요백 만 원짜리 메이커 정도만 되어도 맛이 잘 빠진데요.”라고 말한다. 아뿔싸, 내 귓불은 붉어졌다.

갑자기 오만 오천 원짜리 커피메이커가 자판기 커피처럼 초라해졌다. ..제 것은 좀 싼 것이에요그럼 다음에 집에 가서 내리는 방법을 여쭤보죠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낭패스러웠다. 어디 가서 커피메이커 샀다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날 저녁에 집사람이 커피메이커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용케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맑은 유리잔에 커피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못생긴 내 자식을 만나는 기쁨이랄까. 처음으로 내 커피메이커로 내린 나의 첫 커피였다. 가격이 문제랴. 탄자니아, 케냐, 르왁 보다도 더 귀한 내 커피의 맛과 향이여!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것이 커피 전문점이다. ‘스타**, 이*야~, 엔젤**’ 등 감각적인 외국어 브랜드도 있지만, 가끔은 ‘커,볶’과 같은 정겨운 우리말 상호도 있다. 나도 기씨를 통해서 커피의 이모저모를 귀동냥으로 들은 후부터는 다양한 커피 전문점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가 보다. 투명한 유리창과 노란빛의 은은한 조명, 세련된 브랜드 아이콘 그리고 싱그런 화초들. 커피 전문점의 공통분모들이다.      


  그 공간에는 우리 이웃들의 정겨운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다. 간혹 지친 얼굴이 보이긴 해도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들이 많다. 커피 전문점의 유리창은 어찌나 투명한지. 나도 저 안에 있다면 몽상적인 세계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다. 순간 기씨의 커피 원가가 얼마 줄 아세요엄청난 폭리예요알고 나면 화가 난다니까요.” 라는 말이 생각난다. 커피의 몽상에서 화들짝 깨어난다.    

 

#3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다방은 청춘이라기엔 어설픈 우리를 어른의 세계로 초대했다. 그 시절, 우리는 친구들과 오백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탁자에 있던 성냥들을 왜 그리도 쪼갰을까. 얼굴 창백한 레지가 빨리 가라는 뜻으로 놓고 가는 엽차를 마시면서 버텼던 시간들. 그리고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 어설펐던 벗들과 마셨던 노른자가 떠 있던 모닝커피. 또 그녀들과 함께 볼펜을 꺼내놓고 눈빛을 주고받았던 설래던 미팅과 수줍은 표정을 짓던 여학생들. 쓰디쓴 청자 담배를 탁자에 내놓고 담배를 피워댔던 우리 청춘의 해방구. 그곳은 담배 냄새와 커피 향이 가득했던 아름다운 카오스였다.   

  

 그 무렵 내가 살던 동네 한 모퉁이 지하에는 음악다방이 있었다. 이름도 촌스러운 ‘오거리 다방’. 나는 심심할 때면 그곳에 갔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 오디오가 귀한 시절에 ‘레드제플린’과 ‘엘튼 존’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그곳은 나의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다방 유리 박스에 폼 잡고 앉아있던 DJ. 그들은 우리를 몽상의 세계로 안내하던 오르페우스요, 카론이었다. 물론 가끔 튀는 LP판 잡음에 우리의 몽상도 함께 튕겨 나오긴 했지만, 커피가 있기에 모든 것이 너그러웠다.  

   

 커피는 우리의 의식을 각성시킨다. 흐릿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으로는 커피만한 것이 있으랴. 물론 커피의 미덕으로 각성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소하고 몽상적인 커피 향기도 빼놓을 수는 없다. 각성과 몽상과의 만남, 이것이 바로 커피의 요염한 본질이다. 이제 커피를 두고 ‘외래문화’라고, ‘제국주의 문화의 첨병’이라고, ‘노동 착취 대표 상품’이라고 시비하기에는 우리의 미각은 그 요염함에 무장해제를 당하고 말았다.     

 

 에디오피아의 ‘칼디’라는 꼬마가 염소의 식성을 살피다가 염소의 이상 행동을 보고 발견했다는 커피. 전 세계 최고의 기호품인 커피. 천 년 전 에디오피아 꼬마 ‘칼디’는 자신이 발견한 그 식물이 그 무엇보다 위대한 기호품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4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문을 살짝 비틀어 본다. 커피님(주님). 우리의 미각(가슴)는 당신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당신 안에 머물기까지 쉴 수가 없나이다.”,“각성과 중독의 위대한 검은 신이시여저희에게 휴식과 여유를 주소서카페인으로 고단한 우리의 노동을 구원하소서.”     


   우리 동네 기씨는 어떤 모임에 가든지 홀로 터득한 바리스타의 품새와 커피만큼이나 각성된 마음으로 ‘로스팅’과 ‘드립’을 한다. 마셔보세요이 커피에는 쓴맛과 신맛이 조화롭게 들어 있습니다미묘하지요하 하 하.” 커피를 남들과 나누며 마시는 것이 마냥 즐겁다는 기씨는 커피를 마시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인생의 중반이 지나는 길목에서 그는 커피를 통하여 이웃들과 소통하는 재미를 톡톡히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친절한 기씨가 손수 내려 주는 커피 맛과 향기처럼 우리의 삶도 향긋함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커피가 주는 카페인의 명료함보다는 삶 속에서 만나는 그 모든 것을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참된 의식을 맛보고 싶다. 내 삶이 그저 그런 타성과 몽롱함에 빠지지 않고 맑은 에너지로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커피를 통하여 자신과 주위를 밝게 만들 줄 아는 기씨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렌지 군단 찬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