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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Sep 08. 2021

오렌지 군단 찬가

화개의 인생 순례기3

 #1

누구나 선호하는 빛깔이 있다. 물론  빛깔은 자신의 변화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 내 경우도 그러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바탕색인 초록을 좋아했고, 투표권이 생긴 후로는 노란색에 환호했다. ~ 노란색. 선거 날, 텔레비전 화면에 지역별 투표 결과가 색깔로 나올 때면 노란색과 함께 나는 초라해지곤 했다. 서른 살을 넘어갈 무쯤에는 석양에 물드는 지리산 반야봉의 짙은 코발트 빛에 매료되었다. 그후로 한동안 바다보다 더 파아란 코발트 빛을 무척 사랑했다. 2002 전까지 말이다.     


  2002. ‘축구공은 둥글다.’라는 명제는 옳았다. 변방의 별 볼 일 없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4강이라는 지금도 설명하기 힘든 결과를 거두었다. 한여름 밤의 꿈이었나? 6월 초여름, 우리는 필승 코리아를 입에 달고 사는 자발적인 애국자가 되었다. 붉은 옷을 입었고 거리에서는 ~~민국을 연호했는데, 세계인들은 한국 축구 4강보다 광장 가득 붉은 물결에 경이로워했다. 물론 나또한 이 열기에 감염되어 붉은 옷을 입고서 30도를 넘나드는 금남로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도 두렵지 않은 붉은 악마들이었다.     


  월드컵은 끝났고 축구 열기도 사라졌다. 일상은 다시 평온해졌다. 축구 대표팀 감독 히딩크는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를 데리고 자신의 나라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이 무렵부터 주말마다 새벽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게 되는 요상한 습관이 생겼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탓에 그곳 프로 축구 중계는 늘 새벽이었다. 그 시간에 히딩크와 박지성. 이영표가 있는 네덜란드 프로팀 축구와 영국 프로 리그를 자주 보게 되었다. 아내는 월요일 아침에 멍~하니 졸린 얼굴로 출근하는 남편을 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했다.     

 축구는 국가별로 고유한 색깔이 있다. 가령 붉은색의 대한민국, 파란색의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 노란색의 브라질, 하늘색의 아르헨티나, 흰색의 축구종가 잉글랜드처럼 말이다. 네덜란드는 독립의 가치가 새겨진 오렌지 빛깔의 유니폼을 입는다. 그래서 네덜란드 축구팀은 오렌지 군단이라 불린다.     


#2

  네덜란드와 오렌지 빛 역사적인 배경으로 연결되어 있다. 임진왜란 무렵, 조선과 반대편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지배국이자 구교의 나라 스페인을 상대로 힘겨운 독립 전쟁을 하고 있었다. 최종 승리는 네덜란드였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다. 이 독립 전쟁의 영웅 오라네공 빌렘 1 상징하는 색이 오렌지 빛깔이. 그 후로 오렌지 색과 빛은 네덜란드의 상징이 되었고,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당시 오렌지 빛깔의 네덜란드는 유럽의 소도(蘇塗)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처지가 궁해지자 이 곳에 몸을 의탁했고, 스피노자도 유대교로부터 파문을 당하자 가족과 친구들의 비난을 피해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스피노자는 렌즈를 만들면서 독신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는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경건한 삶을 이곳에서 보여주었다. 스피노자가 렌즈를 깎고 닦는 마음으로 이루어낸 철학의 고전 에티카에는 자유를 향한 오렌지 빛의 가치가 들어있다.    

  

  이 오렌지 빛깔의 후손들은 자유의 지평을 끝없이 넓혀왔다. 세계 최초의 흑인 노예 해방, 동성 간의 혼인 허용 심지어 마약도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고 판매한다. 그래서 마약의 사회적 부작용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이러한 역발상의 힘은 지면이 해면보다 낮은 불리한 지리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네덜란드는 축구에서도 모험적인 시스템을 창출했다. 현대 축구의 전형인 압박축구를 선보였고, 전원공격과 수비라는 가공할 스피드로 세계 축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월드컵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지, 세 번의 준우승이라는 불운한 승률을 가지고 있다.      


#3  

네덜란드의 월드컵 불운은 1974년 독일과의 결승전 패배로부터 시작한다. 월드컵 결승에 최초로 오른 네덜란드는 상대 독일팀을 꼭 이겨야 했는데,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네덜란드를 점령했던 적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의 승리는 곧 패전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패배했다. ‘베켄바우어라는 독일 축구 영웅의 탄생을 바라보던 네덜란드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와 오렌지 빛깔은 아프고 쓸쓸했다.      


 사 년 뒤. 월드컵은 군부독재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었다.  우승 후보 0순위는 당연히 네덜란드였다. 문제는 네덜란드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였다. 그는 독재국가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었다는 이유로 월드컵 불참을 선언해 버린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기분이 꽤 상했으리라. 네덜란드는 결승에 올랐지만, 결국 아르헨티나에 패하여 우승을 놓치게 된다. 전 세계인들은 요한 크루이프를 향하여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이것이 오렌지 빛깔의 정신이라는데 어쩌랴.     


 베르캄프’, ‘리드 굴리트’, ‘판 바스텐의 전설의 삼총사가 있었던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은 이탈리아 월드컵 대관식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어 있었다. 냉정한 승리의 여신은 이번에도 오렌지 군단을 외면했다. 주최국 이탈리아가 지중해 푸른빛 월계관을 쓰고 대관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심지어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결승에도 못 올라가는 참사를 당해 버렸다. 정말 이상한 오렌지였다. 네덜란드와 감정이 별로인 독일인들도 오렌지 군단의 월드컵 불운을 두고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드디어 네덜란드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된 월드컵 결승에 다시 올랐다. 이번 결승의 상대는 무적함대 스페인.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독립 전쟁의 주역들이었기에 모든 언론마다 세기의 대결이라 불렀다. 무적함대 스페인과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건곤일척의 대결에서 승자는 무적함대였다. 결승에서 패배한 오렌지 빛깔은 초록빛 잔디 이곳저곳에서 서럽게 뒹굴고 있었다. 네덜란드 축구 스타 판 페르시의 화면 가득 서럽게 우는 모습에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4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야구의 도시 광주에서 기아 타이거스에 무심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리라. 내게는 조금 희한한 소망이 있다. 오렌지 빛깔의 네덜란드가 월드컵 우승컵을 들고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그 순간을 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전생에 네덜란드와의 인연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이러한 내 마음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선에 도착해서 고생했던 하멜, 빛의 화가 램브란트 그리고 안네 플랑크. 파트라슈의 이야기가 전하는 나라. 월드컵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오렌지 빛깔의 나라  네덜란드. 나는 아직 그 나라에 가보지는 못했다. 닭 대신 꿩이라고 하던가. 오늘 냉장고에서 오렌지를 먹으면서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을 걷는 상큼한 상상을 즐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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