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내 겨레

김민기 다시 듣기 18

by 박신호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피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보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앞길에서 훤히 비치나 찬란한 선조의 문화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 앞에.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내레이션) 나의 조국은 허공에 맴도는 아우성만 가득한 이 척박한 땅. 내 아버지가 태어난 이곳만은 아니다. 북녘땅 시린 바람에 장승으로 굳어버린, 거대한 바위 덩어리. 내 어머니가 태어난 땅. 나의 조국은 그곳만도 아니다. 나의 조국은 찢긴 철조망 사이로 스스럼없이 흘러내리는 저 물결. 바로 저기 눈부신 아침햇살 받아 김으로 서려 피어오른 꿈속 그곳, 바로 그곳..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한때 싫어했던 가수들이 있었다, 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잊혀진 계절>의 이용과 <아 대한민국>을 노래했던 정수라. 내 미움의 대상들이었다. 물론 이들과는 일면식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들을 못마땅했던 불의한 시대와 관련된 까닭이었다.

1981년 봄이 만개한 5월. 전두환 군사정권은 국민의 정치 관심을 돌려보고자 느닷없이 국풍 81이라는 거대한 놀이판을 여의도에다 펼쳤다. 영문 모를 이 행사는 정권 차원에서 계획된 일종의 우민화 프로젝트였다. 국풍 81은 일 년 전 광주에서 벌어졌던 5.18, 일 주년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다.


불순한 국풍 81은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관중 천만 명을 기록하면서 성공했다. 이때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던 이용은 <바람이려오>를 불러서 대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가을의 명곡 <잊혀진 계절>로 정상급 가수로 떠올랐지만 독재정권의 놀음 속에 태어난 스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수 정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수의 인기 CM 송을 노래했던 실력파 여자 가수였다. 하지만 어쩌라 그녀의 히트곡인 <아, 대한민국>이 안기부의 도움을 받았다는 풍문이 퍼지면서 정권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가 씌워지고 말았다.

당시 “산 자여 따르라”라고 외치는 청년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라고 노래하는 그녀는 반동이었다. 훗날 이용은 부적절한 사생활로 인하여 미국으로 도피했고, 정수라는 한 방송에서 몸무게를 공개당한 후 울면서 사라졌다.


어용(御用)이란 단어가 있다. 이는 임금님이 사용하는 물건을 뜻한다. 당시 가수 이용과 정수라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정권의 어용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이들 또한 시대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했던 승객에 불과한 딴따라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흔히 국가주의에 편향되는 경우를 가리켜 국뽕이라고 한다. 이러한 감성적인 애국주의 노래는 듣는 이의 처지에 따라서 불편한 곡이 될 수 있다. 대중가요도 아닌, 건전가요도 아닌 애매성 때문이다.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얼핏 제목만 봐서는 국뽕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노랫말에는 불의한 독재정권이 싫어할 내용이 듬뿍 담겨 있다. 가령 내레이션에서 나오는 철조망, 북녘땅, 척박한 땅과 같은 단어는 극우 집단이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것들이다.

<내 나라 내 겨레>는 세칭 세시봉 포크 부대의 합작품이다. 이 곡은 1970년대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조영남, 윤형주의 합동 공연 엔딩곡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이유로 이 노래는 조영남의 <동해의 태양>. 송창식의 <내 조국 내 겨레>,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라는 서로 다른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물론 이 곡의 실질적인 산파는 김민기다.


가사와 곡조가 수려한 <내 나라 내 겨레>를 애국가로 삼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꽤 있었다고 한다. 하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현행 애국가에는 찜찜한 점이 있다.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행각에 대한 시비가 그것이다. 한 인물을 평가하는 잣대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지금당시의 시선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중요한 기준점은 의도성이다. 알고 짓는 잘못과 모르고 짓는 잘못을 동일한 저울로 재단할 수 없다. 이념에 매몰되어 자신만의 도그마를 정의로 규정하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된다. 캄보디아의 폴포트, 게르만 우월주의 히틀러, 소비에트의 스탈린. 하나같이 이념에 빠졌던 광인들이다. 자신의 이념을 맹신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을 때면 어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헌법 제1조 1항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나라는 특정인의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화국이란 뜻이다. 수 천년 간 선조들이 뼈를 묻었고 앞으로 후손들이 살아내야 할 터전이다. 광장의 갈등이 깊어 가는 오늘날, 모두의 가슴을 덥혀 줄 노래를 생각한다. <내 나라 내 겨레>라면 새로운 찬가로 손색이 없겠다. 대한민국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민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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