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 해마다 봄, 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 어느 해의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 가엾은 우리 백구는 그만 쓰러져 / 나하고 아빠 둘이서 백구를 품에 안고 / 학교 앞의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갔었지
무서운 가죽끈에 입을 꽁꽁 묵인 채 / 슬픈 듯이 나만 빤히 쳐다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 / 하얀 옷의 의사 선생님 아픈 주사 놓으시는데 /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너무 아팠었나 봐 / 주사를 채 다 맞기 전 문밖으로 달아나 /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 /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
학교 문을 지켜주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 우리 백구 못 봤느냐고 다급하게 여쭤봤더니 / "왠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기에 머리털을 쓸어 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 /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것도 뵈지 않았고 / 운동장의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 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 있는지 알면 가르쳐 주렴아"
학교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하는 말씀이 / "왠 하얀 개 한 마리 길을 건너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여서 그만......" /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
백구를 안고 돌아와 뒷동산을 헤매다가 / 빨갛게 핀 맨드라미꽃 그 곁에 묻어주었지 / 그날 밤에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 철 잃은 흰 눈이 빈소에 소복소복 쌓이는 꿈을.. /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 내가 아주 어릴 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 나만 보면 괜히 "으르렁"하고 심술을 부렸지...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음음음음
동화와 같은 노래다. 실제로 이 곡에 담긴 이야기는 동화책으로 출판되었다. <백구>에는 가수 양희은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막내 동생이 초등학교 때 지은 글이 노랫말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 글을 김민기가 좀 더 손을 본 후, 곡을 붙였다고 한다. 훗날 양희은이 인터뷰에서 말하길 <백구>는 자신이 가장애착이 가는 노래라고 했다. 자신의 어린 날의 초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면서.
<백구>는 양희은의 1987년 앨범 ‘처음 부르는 노래’ 에 수록되어 있다. 이 곡의 산파였던 김민기는 1993년 <김민기 4>에서 <백구>를 노래했다. 김민기 버전에는 이지윤 어린이의 목소리로 불러져 애절함과 순수함을 더하고 있다.
‘백구’는 하얀 개를 말한다. 누런 개라면 ‘황구’라 부를 것이다. 요즘 동네 산책길에 공원을 찾으면 백구와 황구들을 많이 보곤 한다. 말 그대로 개판이다. 비아냥거림이 아니다. 정말이지 주인반 반려견 반이다. 옷을 입고 있는 개, 방울을 달고 있거나, 머리에 띠를 두른 강아지 등 각양각색이다. 간혹 골드 리트리버나 닥스 훈트처럼 소문난 종도 보인다. 하지만입막개 없는 맹견과 마주칠때면 그 주인을 째려보게 된다. 물론 옆에 있는 무서운 개가 두렵긴 하지만.
나는 ‘개는 개일뿐.’ 이라 생각한다. 그냥 키우는 개일뿐이다. 제아무리 영리한 견공일지라도 인간과 동급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개 혐오주의자는 아니다. 복날이 되더라도 입맛을 다시지 않는다. 지금 시대가 언제라고 그딴 무모한 식성을 도전하겠는가? 다만 개를 인간처럼 대하는 과한 모습에 이마가 찌푸려질뿐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견공이라도 결국 개과의 포유류가아니던가.
진정 개를 사랑한다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뛰놀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개를 향한 애정을 주위 어려운 이웃들과도 나눈다면 좋겠다. 비록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은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보다 신세 좋은 견공이 많은 세상이 따스해보이지 않다.
반려견를 키우는 인간에게 또하나 부탁하고 싶다. 간혹 방송에서 보도되는 유기견을 볼 때면 측은한 마음이 일어난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견공 가운데 일부는 산속에서 야생의 본능을 회복한다고 한다. 자신의 버린 주인에 대한 원망이 인간에 대한 복수심으로도 변한다는 말도 들었다. 좋을 때만 예뻐하지 말고 녀석의 마무리까지 책임을 지면 좋겠다.
내 어린 시절 기쁨이자 친구였던 검은 흑구 ‘케리’가 생각나다. 셰퍼드 종이었다. 어느 여름날 케리는 동네 아저씨들이 끌고 가버렸다. 학교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케리를 생각하면서 종일 힘없이 빌빌거렸다. 기가 막혔다.
언젠가 치와와도 잠시 키웠는데 하는 짓이 여우 같아서 식육점 주인 아들에게 주어 버렸다. 좋아하는 고기라도 실컷 먹으라고. 몇 개월 뒤 녀석을 보았는데 예상대로 비만한 몸을 끌고 다녔다.
만약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된다면 개를 키우고 싶다. 그것도 눈망울 고운 토종 백구로 말이다. 미래의 백구에게는 마트의 사료보다는 살점 달린 뼈다귀를 자주주고 싶다. 또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녀석을 데리고 산책도 갈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실내 취침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예쁜 개집을 한 채 지어주겠다. 이름은 무엇이라 할까? 그래, 케리가 좋겠다. 그 옛날 케리를 추억하면서 잘 키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