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 /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탄생한 곳이 바로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이다. 그곳에는 12사단 을지부대가 주둔해 있다.
내게 원통은 ‘원통골 가는 길로 사자봉 찾아가니~’ 라는 송강의 관동별곡의 한 구절로 각인되어 있다.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초입, 깊은산골이다. 그렇게 전설의 고향처럼 여겼던 원통골을 한 시절 몇 차례 다녔으니, 아들 녀석이 인제군 원통면 12사단에서 군복무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원통으로 가려면 새벽 세 시에 출발해야 한다. 어둠을 가르고 전북, 충청을 지나서 강원도 경계에 들어설 때면 여명이 밝아온다. 이어진 북상은 계속된다. 5시간 넘게 걸렸던 운전은 원통골에 들어설 때야 끝난다. 그곳원통의 공기는 분명 달랐고 설악산도 지척이었다. 오십천은맑고도맑았다. 그것은 강원도의 힘이었다. 운전으로 쌓인 피로는 그곳의 황태해장국 한 그릇이면 씻겨 나갔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원통골에서군대 생활을 했던 김민기의 창작곡이다. 예당초 김민기는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날 군수사기관으로부터 느닷없는 한 통보를 받게된다. 그날이후 김민기의 군생활은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병으로 바뀐다. 이유인즉슨 <아침이슬>이 문제였다. 서정적인 이 노래가 투쟁가로 불리자, 군수사대는 원곡자인 김민기를 과거 괘심죄까지 합산하여 그를 원통으로 보내버렸다. 향로봉을 비롯해서 해발 천 미터 이상의 봉우리를 다수 보유한 12사단의 군복무는 일종의 유배였다.
외유내강의인물, 김민기가 <늙은 군인의 노래>를 만든 것은 막걸리 두 말의 댓가였다. 하루는 군 생활 30년을 마감하는 12사단 하사관이 자신의 군인으로서의 과거를 술회하면서 전역 기념으로 노래 한 곡을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수고비는 막걸리 두 말이었다. 늙은 하사관의 제안을 수락한 김민기는 일종의 건전한(?) 군가를 만든것이었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78년 양희은이 불렀는데, 국방부는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노랫말 속에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인데”, “푸른 옷에 실려간 내 청춘” 등 내용이 군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하긴 김민기가 발표한 노래치고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가요 순위에서 노닐던 곡이 있겠는가. 때는 혜은이가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유신 말기였다.
국방부 금지 1호 곡 <늙은 군인의 노래>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군인’이 ‘투사’로 바꿔있었다. 최루가스가 퍼지는 캠퍼스와 거리에서 시위 군중의 떼창 곡으로 진화해 있었다. 원래의 느린 타령조와는 달리 투쟁가로써의 <늙은 군인의 노래>는 빠른 박자로 변했고 높은 화력을 자랑했다. 그렇게 <늙은 군인의 노래>는 ‘노동자’. ‘농민’으로 전파되면서 국민 저항곡으로 변해갔다.
아들은 그때의 김민기처럼 12사단 훈련부대에서 박격포를 들고 다니며 씩씩하게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아들의 전역과 함께 강원도와 인제군, 원통을 찾아갈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백담사 계곡과 박인환 문학관. 그리고 맛있던 원통 명품 족발이 그리워진다. 부대 앞에 도착하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들의 미소까지도...
요사이 나라 돌아가는 형편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뉴스를 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얼마 전 해병대 박정훈 대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박 대령은 이번 물난리 때 벌어진 채상병 익사 사고를 조사하는 수사단장였다. 사건은 전반은 다들 알고 있을테니 긴 말은 않겠다.
전후 사정을 보니, 박대령이 항명으로 몰린 것은 그분의 격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분은 군대를 안 갔던 금수저가 아니던가. 아무튼 박 대령의 고초 역시나 어이없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화면 속 박대령은 해병대 군복을 입고 굳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전형적인 무골의 분위기였다. 군수사청 앞에 무겁게 서 있던 박정훈 대령을 보면서 <늙은 군인의 노래>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의 군모 옆으로 보이던 흰머리 때문이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윽박지르는 구호만 들린다. 그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수호하고 시민들의 안위를 지켜내는 군대가 참 군대일 것이다. 문득, 상상해본다. 참모총장 퇴임식장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