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설레는 까닭은 혈육들 때문이다. 멀리 헤어져 있는 피붙이들이 상봉하는 날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형제, 자매, 자녀들을 아침부터 기다리며 전화하기 바쁘다. ‘출발했냐?’ ‘도로 사정은 어떠냐?’ ‘고생하것다.’ ‘운전 조심하고 피곤하면 휴게소 들러라’ 등등.
거의 실시간으로 내려오는 길을 중계한다. 상차림도 그들의 도착에 맞춰 있다. 혹여 형제나 자식들이 형편상 고향에 오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고향 집은 바람 빠진 공처럼 명절 분위기가 날아가 버린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 서울은 엘도라도이자 소돔과 고모라이다. 갖은 권력과 돈이 모여있는 곳, 지방을 끝없이 빨아들이는 무서운 흡입력. 부산도, 인천도. 광주도, 대구도 서울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니 시골에 사는 우리 같은 지역민들은 왠지 ‘서울’이라면 주눅이 들게 된다. 가히 서울공화국, 수도권 공화국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은 출세를 위한 공간이다. 대학 진학도 직장도 결혼도 심지어 쇼핑과 병 치료도 서울 입성을 선호한다. 아마 오늘도 지방 청춘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긴장된 눈으로 용산역이나 강남버스터미널에서 내릴 것이다. 그렇게 서울의 달빛 아래 반지하 또는 옥탑방에서 서울 살이를 시작하겠지.
하긴 나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가 혹독한 세파만 잔뜩 받고는 결국 남해 바다가 있는 완도로 회군했던 추억이 있다. 그때 부모님은 평생 하실 고생을 서울 생활 5년 동안 다하셨다.
김민기의 <서울로 가는 길> 우리 식구처럼 너도나도 이촌향도를 했었던 그 시대를 노래하고 있다. 토속적인 분위기의 멜로디에 서구적인 포크가 가미된 <서울로 가는 길>은 양희은 2집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김지하 시인의 <서울길>과 분위기가 묘하게 겹친다.
가난, 서러움, 슬픔, 꿈 등 두 작품에는 민중에 삶이 들어있다. 이 둘을 잘 연결하면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가 나올 것 같다. 서울은 민초들의 화수분이자 판도자 상자다. 이 두 작품에는 산업개발 시대 우울한 한국인들을 자화상을 잘 그리고 있다.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길 / 몸 팔러 간다. /
언제야 돌아오리란 /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
사뭇 사뭇 못 잊을 것을 /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갈 것을 /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 길 / 몸 팔러 간다.
- 김지하 <서울길>
김지하와 김민기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보금자리 원주 캠프의 일원이다. 박정희 유신시대, 원주는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선생 중심으로 반독재 투쟁의 본부였다. 이부영, 리영희, 손학규, 김종철, 이철수, 김지하, 김민기, 유홍준, 이현주 등 많은 민주화 인사들과 영성가들이 무위당 선생이 계시는 원주로 달려왔다.
언제 간 무위당 선생과 김지하 시인 그리고 김민기가 허름한 동네 슈퍼마켓 편의 의자에서 유쾌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 사진을 본 적 있다. 특히 숱한 사상적 전이를 했던 젊은 날의 김지하 시인에 눈이 갔다. 김민기보다 형뻘이었던 김지하는 김민기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수난, 농촌과 바다, 그리고 광산에서 고된 노동도 그의 음악에 거친 어둠보다는 오히려 씩씩한 쾌활함을 더해 준 것 같다. 잘난 체하지 않고 섣불리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잘 새겨 아름다운 화해의 세계로 이끄는 그의 미덕을 만든 것 같다”라고
몇 해 전 김지하 시인은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쳤다. 그리고 김민기는 지금도 힘든 극단 학전과 푸르렀던 청년의 마음을 지켜내고 있다. 김지하 시인과 김민기를 떠올릴 때면 인생은 선택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쩌면 선택의 힘도 하늘이 내려주는 것 같다. 그 뜻을 잘 받아 모실 그릇이 되는 삶, 그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번 겨울에도 서울에 올라가 보련다. 오래된 나의 겨울맞이 행사다. 그곳에서 팍팍한 삶을 견디고 있는 누이와 공직의 험로를 마감한 벗, 그간 소원했던 고향 친구도 만나련다. 그리고 하루쯤은 나의 그릇을 생각하면서 광화문과 학림다방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