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다. 김민기의 <가을편지>를 들어보라. 이브몽땅의 <고엽> 못지않게, 남성의 묵직한 저음이 가을의 분위기와 앙상블 이루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고,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이 공포되던 1968년 겨울. 서울 동숭동 막걸릿집에서 음악평론가 최경식과 서울대 성악과 재학생인 그의 동생 최양숙, 시인 고은이 잔을 주고받으며 거하게 취해있었다. 그 자리에서 최경식의 부탁을 받은 고은 시인은 즉석에서 <세노야>를 읆었다. 이날의 인연은 몇 해 뒤 <가을편지>로 이어진다.
<가을편지>는 최양숙이 1971년 발표한 앨범에 들어있다. 동생을 위하여 오빠 최광식이 고은에게 노랫말을 받았고, 거기에다 서울대 1학년 김민기가 곡을 달았다. 이 앨범 안에는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도 들어있는데, 기타 연주는 김민기의 몫이었다. 최양숙가 부른 <가을편지>는 성악풍이 묻어있다. 훗날, 그녀는 국내 샹송의 1세대 가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김민기가 직접 노래한 <가을편지>는 1993년에 발표한 <김민기 1> A면 첫 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곡은 최백호나 이동원 등도 불렀지만, 가을날의 우수와 그리움은 김민기의 굵은 저음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김민기의 손에서 탄생한 많은 곡 가운데서 <가을편지>는 가장 대중적인 노래일 것이다. 1971년의 최양숙이던, 1993년의 김민기이든 간에 <가을편지>는 음률이 고급지고 듣는 이의 마음을 그리움에 푹 담가버린다.
계절을 상징하는 노래는 많다. 벚꽃 피는 봄날의 <벚꽃엔딩>, 여름의 <해변의 여인>처럼 말이다. 김민기의 <가을편지>는 만추 때보다 여름이 마무리되고 조석으로 찬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가을의 길목에 어울리는 곡이다. 단지 벚나무 잎사귀의 가장자리에 살짝 붉은빛이 맴돌면서 뚝뚝 떨어진다. 이때는 단풍잎과 은행잎이 아직 그 붉은빛과 노오란 색조를 영접하진 않을 때이다. 단지 벚나무 잎사귀의 가장자리에 살짝 붉은빛이 맴돌면서 뚝뚝 떨어진다. 그럴 때면 ‘아! 가을~’이라며 겨우 한마디만 나올 뿐이다.
여기서 <가을편지>의 노랫말을 만든 고은 시인에 대해서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몇 해 전 시인은 성추문 관련된 괴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단에서 사라졌다. 당시 시인의 성추문은 화제였다. 최영미 시인은 그를 두고 <괴물>, 이문열 작가는 <사로잡힌 악령>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팔순이 넘은 그를 생각하면서 꽤나 착잡했었다. 지금도 서재에 시인의 소설과 시집이 열 권가량 있지만 그날 이후 손이 가질 않는다.
조계종 승려 일초. 법명이 일초였던 고은은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자유 무애한 승려 생활과 환속, 여러 차례 걸친 자살 시도, 미제 타도의 급진적인 선봉장. 5.18 관련 투옥.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했던 국보급 시인. 뿐인가. 자유문인 실천협의회를 결성하여 군부독재 투쟁의 선두에 자리하던 실천하는 작가였다. 그의 실천과 문학적 성취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빛이 밝은 만큼 어둠도 진한 법이다. 그렇게 시인은 몰락은 이카로스 추락만큼이나 급했고 강했다.
나는‘~이즘’이 싫다. 이념을 내세우는 이들의 일방적 눈빛과 거친 행동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좌'와 '우'라는 이념에 경도된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예의 없는 실천가들의 거친 폭언과 비겁한 술수에 대해서 학생 시절부터 느낀 바가 있다. ‘~이즘’를 내세우면 선두에서 투쟁하는 이들의 변절도 숱하게 보았다.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었다. 그들은 이념을 내세우고, 약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욕망을 채울 뿐이었다.
요사이 우리 사회의 갈등의 축인 젠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젠더 이슈가 불거지면서 사라진 것이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었다. 국내 굴지의 언론 사주와 관련된 장자연 사건에는 애써 침묵하는 페미니스트. 지난 대선 당시, 마초맨 분위기를 뿜고 있던 기호 2번 후보의 참모가 된 그들을 보았다. 기호 2번이 새겨진 빨간 점퍼를 입고 있던 페미니스트 대표 여교수와 운동가의 얼굴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공과 허물로 뒤덮여 있기 마련이다. 물론 후세는 그 비중을 가려서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할 것이다. 고은 시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한때 문인들은 낭만이란 미명하에 저지른 추행을 예술적 기행이라 했고, 대중 또한 그들을 별종으로 인정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논리와 형편을 오늘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시인이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자신이 뿌린 업보를 잘 거두길 바랄 뿐이다.
가을로 시작했던 글이 다소 장황해졌다. 아무튼 가을이다. 옛사랑이 그립고 벗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은 편지와도 어울린다. 그것도 카톡이나 E-mail이 아닌 손 편지 말이다. 그래서 김광석도 ‘흐린 가을엔 편지를 써보자’고 했고, 윤도현은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노래했나 보다.
올가을, 나도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써 보고 싶다. 제주도에서 갈치 낚시하며 지내는 어린 시절 벗에게 말이다. 손글씨로 벗의 주소와 받는 이를 적은 다음,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인 다음, 빨간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어 보련다. 다른 그리운 벗에게는 가을의 설레임으로 마음의 편지를 띄우고 싶다.... 가을이니까, 찬바람이 지나가니까, 마음이 가려우니까,편지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