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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Jun 05. 2024

고마워요 DJ

『김대중 옥중서신』, 김대중


   박물관 전면을 꽉 채운 현수막이다. “김대중, 다시 광야에서라는 글씨가 바람에 너울댄다. 지난 4월부터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대학 1학년 겨울이었다. 하루는 학과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는 총선에 출마한 야당 후보의 선거 운동원이 돼 달라고 했다. 친형이 참모라며 일당은 만오천 원이라고 했다. 당시 극장 관람비가 삼천 원이었으니 나름 큰돈이다. 다음 날 나는 돈의 유혹에 빠진 학우 몇몇과 함께 선거사무실을 찾았다. 

    

  임무는 간단했다. 유세 현장에서 환호와 야유 보내기, 우리 후보가 입장과 퇴장할 때면 힘차게 연호하며 따라가기였다. , 몸으로 때우면 되는 것이니 괜찮은 아르바이트라 하겠다. 그렇게 돈을 받는 재미로 열심히 소리를 외치면서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받은 일당으로 친구들과 생맥주와 통닭구이를 먹었으니, 즐거운 나날이었다.


  투표가 일주일 남았을 무렵이었다. 유세 현장이 이상한 열기와 함께 긴장감이 높아졌다. 김대중이 귀국했다는데, 김포공항이 난리가 났다는 거여, 김대중이가 가택 연금을 당했다네 등 풍문이 선거를 뜨겁게 만들었다. 사방에서 김대중, DJ, 감대중, DJ이란 말이 들려왔다.

  

  투표권도 없었던 나는 그 열기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를 향한 환호와 갈채. 그리고 김대중, 김대중...  대체 누구인가. 얼핏 그의 이름을 1980년 중학생 시절 들었던 기억이 났다. TV에선 그를 가리켜 친북 단체의 수괴라고 떠들어댔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채널을 돌리셨다.      


  선거 결과는 선명 야당 신민당의 돌풍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끈 민주화 세력의 승리였다. 민주화 열기에 전염된 새 학기 캠퍼스와 강의실은 들썩였다.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되었다. 서점에는 김대중이 쓴 옥중서신이 나와 있었다. 신비로우면서도 불온한 그를 알아야 했다. 나는 서점에서 조심스레 김대중 옥중서신을 구입했다.      



  김대중 옥중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속지에는 턱을 손에 바치고 있는 사진 있었는데 양복이 잘 어울리는 신사의 풍모였다. 여자친구도 그의 사진을 보더니 미남이구먼이라고 했다. 제한된 엽서 분량에 맞춰 썼다는 깨알 같은 글씨에는  입을 다물 수 없었. 그의 옥중서신은 신앙과 역사 등에 걸쳐 다양한 사유를 가족에게 전하고 있었다.      


  결단과 신앙, 죽음 임박.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 19801121.’ 김대중 옥중서신제1 신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그의 고뇌가 엿보였다. 김대중은 남편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며 부인 이희호 여사께 관용을 구하고 있었다.


  나는 강의실 뒤편에서 앉아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다. 책을 넘길수록 그의 박식함과 신앙심, 가족애가 절절하게 와닿았다. 매번 보내는 서신마다 적혀 있는 이런 책들을 보내주시오에 적혀 있는 목록의 책들 읽어보고 싶어졌.

    

  며칠 만에 김대중 옥중서신을 다 읽었다. 내 눈을 가렸던 비늘이 뚝 하니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놀라웠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 감탄했다. 그의 행동하는 양심대중경제론도 탐독했으며, 절대 사양했던 시위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집회가 끝나면 담배 연기 가득한 다방에서 말이 통하는 벗들과 한탄을 토하곤 했다. 그만큼 강의실은 멀어져 갔다.  

  


  유권자가 된 이래 선거 때마다 김대중을 찍었고. 그가 패배하면 힘이 빠졌고, 그가 승리할 때면 나의 기세 또한 등등해졌다. 마침내 1997. 1218일 새벽. 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기적이 현실로 벌어졌다.  “김대중 당선!”이라는 그날의 TV 화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와 그와의 인연은 그의 사후에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듬해 2010년 그의 자서전 1, 2권이 출판되었다. 그해 여름, 나는 2박 3일 피서를 자서전에 흠뻑 빠져 보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여기까지 와서 책만 보냐며 타박했다. 그래도 어쩌라. 계곡 물놀이보다 더 재밌는 것을... 그해 가을. 신문마다 김대중 자서전독후감 공모전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공모전 광고를 유심히 보았고, 생애 처음 투고를 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박신호 씨? 김대중 자서전』공모전에 일등 하셨습니다.”라며 축하한다고 했다. 출판사 직원은 상금이 무려 이백만 원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내가 일등?.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등이었다.      

  시상식 장소는 김대중 도서관이었다. 공모전 주최 측은 이희호 여사님과 식사가 있다며 가족의 참석을 당부했다. 느닷없는 서울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면 체험학습을 신청했고, 아내는 동네 아줌마들로부터 ‘땡잡았네’라는 부러움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아내와 아이들은 데리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계시는 김대중 대통령께 인사를 드렸다.         


  지금도 내게는 198485일이 찍혀있는 김대중 옥중서신초판본이 있다. 이제는 누렇게 바랜 책이지만 스무 살 나의 붉은 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올해가 김대중 탄생 100주년이라고 하니, 낡은 김대중 옥중서신을 다시 꺼내본다,      


  관람을 마치고 밖에 나왔다, 현수막에는 김대중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문득 쉰 듯한 그의 음성이 그리워진다.


 ~ 그때 받은 상금은 어떻게 했냐고요? 말도 마세요. 아내가 가져갔답니다. 젠장... 재주는 곰이 부렸는데, 아무튼 고마웠어요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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