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rie 자비송
“요셉, 주말 오전에 시간 있어?”라고 묻는 니꼴라오 형님의 전화다. “아~ 예~ 뭐~ 시간..있.지.요” 뜸들이 듯 조심스럽게 답한다. 니꼴라오 형님은 나의 대부이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신앙의 후견인을 대부라고 하는데, 남자는 대부(代父), 여자는 대모(代母)라 부른다. “그래. 내일 아침 9시에 법원 앞에서 만나자.”라며 대부님은 전화를 끊었다.
일요일 산수동 법원 앞에서 만난 니꼴라오 대부님은“요셉.. 같이 갈 곳이 있어”라며 지산유원지 부근으로 가자고 한다. 지산유원지를 향해 경사진 언덕길을 한동안 올라갔다. 잠시 후 자그마한 야산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작고 허름한 집이 있었다. 대부님은 그 집에 장애인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과 함께 10시 미사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Gioria 영광송
정말 작은 집이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 어두운 방 안에 맑은 얼굴이 앉아 있었다. “요셉. 인사해. 히지노 형님이셔”라고 대부님이 말씀하셨다. 세례명이 히지노라는 그분은 병색의 마른 얼굴이었지만, 맑은 눈과 고요한 미소가 존재를 빛내고 있었다.“아이고, 어서 와요. 오늘은 한 분 더 오셨네.” 히지노 씨의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나는 장애자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탓에 히지노 씨와 그 모친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게 악수를 청하는 그의 얼굴은 봄날처럼 맑았는데 다른 한 손에는 묵주를 쥐고 있었다.
히지노 씨를 두 팔로 안았다. 무척 가벼웠다. 산길 언덕을 조심조심 내려와 휠체어에 앉혔다.“요셉. 잘 하는데”라고 대부님이 좋아한다. 우리는 히지노 씨가 탄 휠체어를 앞세우고 성당으로 향했다. 야산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뒷짐을 하고는 우리를 따스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히지노 씨는 서른 초반인데 몇 해 전 일을 하다가 척추를 다쳤단다. 그리고 무등산 낮은 자락인 지산유원지 부근 야산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고 했다.
Credo 신앙고백
히지노 씨의 휠체어는 성당 안 뒤편 넓은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니꼴라오 대부님은 그 옆에 앉았다. 지나가던 율리아나 수녀님께서“오늘은 두 분이 모셔왔네요. 그래요”라며 흐믓한 미소를 짓는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신부님이 입장하셨고 복음 말씀과 강론, 성찬의 전례가 진행되어갔다. 신부님께서“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서로에게 “평화를 빕니다.”라며 인사를 드린다. 히지노 씨의 허리는 약간은 구부정했고, 휠체어 발판 위로 올려져 있는 다리는 살짝 오른쪽으로 쏠려있다, 야윈 얼굴의 그가 맑게 웃더니 불쑥 팔을 내밀며 “요셉도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자주 들었던 평화라는 단어가 정말 평화롭게 들렸다.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성당 마당으로 나왔다. 그 무렵에 세례를 받았던 나는 교우들이 낯설었다. 마당에 잠시 머무는 동안 여러 사람이 히지노 씨에게 인사를 했다. 덩달아 나도 그분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성당을 나온 우리는 다시 지산유원지로 향했다. 그때 히지노 씨가“우리 칼국수 먹고 가자.”라고 제안을 했다.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으면서 앞으로 형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히지노 씨는 형님이 되었다. 형님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서는데, “요셉 형제 고마워. 기도할께. 요셉도 기도 매일 하고”라고 말한다. 야산 중턱에 있는 그 작은 집에서 내려오는데, 그의 어머니가 우리를 향해 또 손을 흔들며 바라보고 계셨다.
Benedictus 거룩하시도다.
레지오 마리애 모임이다. 나는 히지노 형님과 함께 ‘결백하신 모후’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한 주간 묵주기도 횟수를 단장에게 보고하는 순서이다. “저는 5단요”,“저도 5단밖에 못했어요.”,“저는 10단 바쳤습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묵주기도 못했습니다”라고 보고를 했다. 되게 머쓱했다. “저는 200단 바쳤습니다.”라는 히지노 형님 말에 다들 놀란다. 우울한 표정에서 기쁜 얼굴로 표정이 확 바뀐 단장이 박수를 보내잖다. 단원들도 마치 자신이 200단 묵주기도를 바친 것처럼 좋아들 한다.“저는 집에만 있는 몸이 잖아요. 다른 분들과 달리 시간이 많아서 기도를 자주 드릴 수 있어요. 별거 아니예요”라며 히지노 형님은 손사래를 친다.
시간이 여유롭다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임을 마치고 형님 집으로 가는 길에 200단이나 바칠 기도 내용이 있냐고 물었다. “요셉. 매일 기도 드려줘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 명씩 노트에 이름을 적고 5단씩 바치면 일주일에 200단은 그냥 돼”라고 말하는 히지노 형님의 눈빛이 달라진다.
내가 드리는 기도의 중심에는 나와 가족만이 있었다면 형님이 드리는 기도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중심에 있었다. 특히 취업과 결혼을 앞둔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바친다고 했다. 장애의 몸과 늙으신 어머니 그리고 야트막한 동산에 있는 그 작고 초라한 집에서 히지노 형님은 이웃을 위한 기도를 매일마다 지극하게 하느님께 바치고 계셨다.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
그 후 졸지에 성당 청년회장이 된 나를 위해 히지노 형님은 기도를 많이 해주셨다. 장맛 비가 내리던 날, 우산을 쓰고 형님의 집으로 갔다. 형님의 기도 덕분에 어제 취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노라며. 곧 서울 본사로 가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형님은 “요셉, 정말 잘 됐어. 하느님이 기도 들어주셨네. 그리고 나도 염주동으로 이사 갈 것 같아. 국가에서 작은 아파트를 싼 값으로 줬어”라는 형님 말씀이 내 가슴에 뚝뚝 떨어졌다.
니꼴라오 대부님은 전북에 있는 국립대학교 강사로 가셨고, 나는 두세 번 직업을 옮기다가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히지노 형님은 잘 계실까? 병약한 장애의 몸인데 건강하실까?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니 많이 늙으셨겠지. 그동안 형님을 잊고 살았던 내가 부끄럽다. 히지노 형님은 내게 기도란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려준 하느님의 천사였다. 오늘 저녁에는 니꼴라오 대부님과 히지노 형님을 위하여 성모님께 깊은 기도를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