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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Dec 09. 2021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1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야 한다. 몇 해 전, 권정생 선생님과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의 부고를 접했을 때 얼마나 속상했던가. 안동은 멀고, 기회란 다시 올 것이라던 내 안일함을 얼마나 자책했던가. 그때 권 선생님을 만났던 벗들은 지금껏 추억의 서랍 속에 그날을 곱게 보관하고 있는데 말이다. 귀한 인연을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게으름이란 핑계에 속기 전에 말이다.     

#2

 그의 목소리는 낮고 쓸쓸하다. 영혼을 위무하는 그의 읊조림은 나지막하다. 때로는 슬프게 들린다. 그의 저음에 잠겨서 눈을 감으면 산만했던 영혼이 정화된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닮았다. 웃음이라곤 전혀 없다. 깊게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본질을 바라보고 있다. 꽉 다문 입술에는 순결한 의지가 배어 있다. 세상은 그를 ‘가객’ 또는 ‘음유시인’이라 부른다. 그 사람은 “김민기”이다     


예전에 그를 만나러 동숭동 대학로에 갔었다. 그가 나를 알고 있다거나, 서로 만남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나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존경하고 있다. 운명 같은 만남을 소망하면서 그가 머물고 있다는 극단 <학전>를 무작정 찾아가기로 했다. 그를 만난다면 무조건 인사부터 해야 한다. 그리곤 미리 써 둔 마음의 글과 양말 세트를 선물하고, 친필 사인과 기념사진을 찍을 터였다. 물론 <학전> 로비에 판매한다는 그의 음반도 구입할 예정이었다. 



#3

 그가 나를 반길지 황당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내 일방적인 만남의 계획이니 그의 반응은 상관없기도 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출발 장소는 광화문이었다. 하필 그날은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가 도심에 있었다. 곳곳에 노조원들이 이합집산하고 있었다. 경찰버스는 긴 담벼락으로 변하여 길을 막고 있었다. 걷는 중에, 노조원들과 함께 갇히기도 했고, 경찰을 만나면 통과를 요구하면서 동숭동을 향해 더디게 걸어야 했다.      

 결국 나는 김민기보다 물대포를 먼저 만났다. 강한 물줄기를 피해 노조원과 함께 세종로 피밋길로 달아났다. 순간 내자신이 노조원으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이리저리 샛길을 찾아서 겨우 성균관 앞까지 도착했다. 다시금 젊고 긴장한 얼굴의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잠바 차림의 형사가 미안합니다아래 길로 돌아가 주십시오미안합니다.”라고 점잖게 말한다. 한참을 돌고 돌아서 ‘학림다방’에 도착했다. 돌 것만 같았다.    


 거리는 시위대와 경찰 충돌로 야단이지만, 다방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뉴스에서는 시위대 가운데 보성 출신의 농부 한 분이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고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와의 만남을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방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 만남을 후일에 도모하기로 했다.      


#4

 김민기 씨되게 부끄러움이 많데.. 눈을 마주보지 못하더라고깜짝 놀랐네요말도 없으셔그냥 빙그레 웃기만 하던데가을에 우리 학교에 한 번 오기로 했어화개님도 그날 뵈면 되겠네라며 순천 사랑어린학교 두더지 목사님이 그와 만났던 이야기를 한다. 아 ~ 그가 순천에 온다니 내 간절함이 하늘을 움직였구나 싶었다. 순천에서 광주로 올라오는 길 위에서 그의 노래를 줄곧 들었다.     


 ‘작은 연못, 아름다운 사람, 친구, 가을 편지, 서울 가는 길, 백구, 천리길, 두리번거린다. 아침이슬, 상록수, 봉우리...’ 그 낮은 목소리를 들을 때면 순수하고 싶어진다. 그냥 길을 걷고 싶고, 바람처럼 삶을 노래한 수피시인 루미의 작품을 읽고 싶어진다. 그의 노래는 내게 번민과 들뜸 그리고 타락의 불순물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을 끼얹곤 했다. 김민기는 내 마음의 어르신이요, 위로자였다.     


 원주의 무위당 선생님도 김지하와 그를 아꼈다고 한다. 시대와 불화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그는 ‘밥 딜런’이다. 어떤 이는 겨레가 통일되면 새로운 애국가로 그의 대표곡‘아침이슬’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의 노래 속에는 맑은 동심과 잔잔한 강물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강물 소리를 찬찬히 듣다 보면 정결함으로 충만해진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전설이 있었다. 70년 초에 발매된 그의 첫 앨범은 정권 차원에서 판매가 금지당했다. ‘김민기’란 이름은 유신과 5공 시대에 안개였다. 끈적끈적한 신비였다.      


 나는 명상 시작 전에 마음을 모으기 위하여 음악을 듣곤 한다. 그레고리오 찬트와 티벳 싱잉볼 음향과 함께 그의 음악을 즐긴다. 언젠가 벗들에게 그의 음악이 명상에 도움 된다고 했더니 가능하냐?며 신기해했다. 전주 윤 선생님 왈 맞아명상이 될 것 같아그분 목소리가 고요하잖아나도 집에서 들어 해봐야지라며 수긍하신다.     


 그가 순천에 오기로 한 날에는 하루쯤 연가를 신청하고 종일토록 함께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지하철 1호선과 김광석 다시 부르기, 어린이 노래극, 자본과 무위당 선생님 등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간절함과 달리, 그는 무슨 이유인지 오지 않았다. 작년부터 코로나19가 전국을 휩쓴 탓에 자유로운 이동이 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5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 겨울에 그가 머문다는 극단 <학전>를 다시 찾아가기로 말이다. 비록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지만, 그를 만나서 선생님 노래를 들으면서 늘 위로를 받았습니다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이번에는 하늘이 그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하길 소망한다.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믿어본다.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그의 노래를 조용히 불러 본다.  “헐벗은 내 몸이 뒤 안에 떠는 것은 사랑과 미움과 배움의 참을 너로부터 가르쳐 받지 못한 탓이나 // 하여 나는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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