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같은 둥근달이다. 밤하늘 달빛이 깊다. 아들과 공원의 밤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아름다운 우주. 달과 별에서 하강하는 빛이 곱다. 이런 날이라면 외계인을 조우하더라도 어깨동무 하리라.
밤하늘을 볼 때면 우주 너머를 상상하게 된다. 전파 망원경이 찍은 태양계와 은하계, 은하단 사진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어두운 공간에 활짝 핀 꽃들의 향연이었다. 언제가 아이들에게 외계인을 만나면 그들을 따라갈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럴 때면 “아빠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출했다”며 웃었다.
별과 달은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테드 창의 SF 소설과 인터스텔라와 같은 우주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도 끝없는 상상 때문이다. 우주와 별과 달, 이 아름다운 천체가 내게 들어온 것은 어린 시절의 새벽빛 때문이었다. 그날 새벽하늘은 유난히 빛났다.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올려다본 가을의 밤하늘.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어둠이 쌓여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전세 단칸방에는 부모님과 두 여동생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밤하늘에 보다가 최면에 걸린 듯 옥상으로 올라갔다. 허공은 빈 공간이 아닌 진주 가루가 뿌려진 은하철도 999가 달리던 우주였다. 반원형 천장에 반짝이는 숱한 작은 구슬들이 매달려 있었다. 별빛이 밀러 볼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별똥별은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고 우주는 빛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빛의 향연에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집 건너편 가로등에선 희미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주위는 조용했고 간혹 개 짖는 소리만이 어둔 공간을 가르고 있었다. 가을은 깊어서 손과 두 볼이 차가웠다. 나는 얼굴을 손으로 비비면서 암흑에 갇혀있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문득 어린 날 보았던 아폴로 달 착륙선이 떠올랐다. 아빠 어깨 위에 걸터앉아 보았던 생중계 장면. 흑백 화면에 비치는 달에는 토끼도 계수나무도 없는 황량함 자체였다. 흐린 화면에는 헬멧을 쓴 우주인이 튕기듯 달 표면을 걷고 있었다. 훗날 그가 닐 암스트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USA가 새겨진 우주선이 달까지 도착했으니 달님도 놀랐을 것이다.
별을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별이 하얗게 모여있는 우주의 바다 은하수 때문이다. 그곳엔 견우도 직녀도 오작교도 없었다. 대신 암흑의 공간에는 비행접시가 다닐 것만 같았다. 하늘에선 빛 하나가 점멸하듯 움직이더니 멀어져 갔다. 인공위성이었다.
스산한 새벽, 별에 취한 나는 일어설 줄 몰랐다. 잠시 후 단칸방에 불이 켜지더니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불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나를 찾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아버지는 옥상 계단에 웅크려 있던 나를 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우주의 향연에 잠겼던 내 어린 날. 반세기 전의 일임에도 그때의 달빛과 별빛이 지금껏 선명한다. 더불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그날의 신비로운 경험은 탁한 바람을 만날 때마다 내 영혼을 맑게 지켜주고 있다.
어느 물리학자의 과학 에세이에는 인간은 별에서 온 존재라고 적혀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입자는 별의 폭발과 관련 있다는 그는 말했다. 또한 인간은 죽음 후에도 원자가 되어 우주 안에 영생한다고 했고 별에서 온 우리는 몸을 벗고나면 입자가 되어 우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른바 환지본처(還至本處), 아름다운 귀가이다.
낭만도 동심도 사라진 세상. 자본과 시퍼런 욕망으로 야단법석인 지구별이다. 그 안에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고 다시 출근하고. 이렇듯 반복하다 보면 차츰 생의 감각에서 멀어져 간다. 꽃과 별을 보면서 감탄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그냥 그런 날의 연속일 뿐. 어쩌면 지금껏 무거운 삶을 버텨낸 힘은 어린 날의 별빛 덕분이리라.
“오늘 밤에도 별이 스친다”라고 했던 윤동주 시인이 생각난다. 시인도 우주의 초대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토록 맑은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한 것을 보니 말이다. 하여 천년도 하루 같다는 우주의 신비가 조금은 이해된다. 별의 입자가 생명체의 근원이란 사실도. 오늘 밤에는 꿈 속에서 은하철도를 타보련다. 별빛만큼 빛났던 어린 날의 정거장을 향하여. 메텔의 손을 집고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