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일본 임제종의 중흥 조사(祖師)로 추앙받고 있는 백은 선사(白隱禪師)에 관한 내용이다. 그가 머물던 절 아랫마을에서 어느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 화가 난 부모는 ‘아기의 아빠가 누구냐’며 추궁했다. 처녀는 얼떨결에 선사를 아빠로 지목하고 말았다. 처녀의 부모는 선사에게 달려가 “당신의 자식이니 책임을 지라”며 아기를 선사에게 넘겼다. 백은 선사는 “아. 그렇습니까?”라며 아기를 받았다.
일 년쯤 지난 후, 처녀는 거짓말에 괴로워했고, 결국 부모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놀란 처녀의 부모는 황급히 절에 가서 백은선사에게 자초지종과 함께 용서를 빌었다. 그 말을 묵묵히 듣던 선사는 그 부모에게 아기를 넘기면서 “아. 그렇습니까?”라고 무심히 대답하였다. 백은 선사는 그동안 젖동냥으로 아기를 키웠다.
살다 보면 백은 선사처럼 억울한 경우를 만나게 된다. 거짓과 모함의 경계에서 선사는 그저 “아. 그렇습니까?”를 말할 뿐. 현상과 충돌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도 마음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아. 그렇습니까?”라는 말은 선사 자신과 처녀와 그 부모를 지키는 평화의 만트라인 셈이다.
#2
거짓은 교만하고 당당하다. 위선의 가면을 쓰고는 바른 양심으로 행세한다. 거짓이 사실이 되고, 진실은 곡해된다. 어두운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탁한 강물도 고요한 시간이 되면 맑아지듯, 거짓과 진실은 시간이란 필터를 통과하면서 정체를 드러낸다. 한낮의 거짓이 물러가면진실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 순간을 헤겔은 <법철학>에서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라고
‘미네르바’는 아테네 여신의 로마식 이름이다. 아테네 여신은 전쟁과 지혜를 상징한다. 미네르바 여신의 어깨에는 항상 부엉이가 앉아있다. 부엉이는 지혜의 여신과 가까운 인연으로 지혜를 상징한다. 사실 부엉이는 야행성의 올빼밋과다.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 사전에서는 부엉이를 이렇게 적고 있다. “올빼밋과이며 회색 바탕으로 눈이 크고 다리는 짧다. 깃털이 부드러워서 날개짓 소리가 나지 않는다. 행운과 행복을 의미한다”.
#3
지혜의 미네르바 부엉이는 거짓된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다. MB대통령 시절, ‘미네르바’라 불리던 어느 인터넷 논객이 있었다. 그가 미국 증시 폭락과 MB정권의 경제 난맥을 정확히 예측하자 정권과 언론은 그를 찾겠다며 난리를 쳤다.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연기처럼 여기저기에서 퍼져갔다. 퇴임한 증권분석가라는 소문과 하버드 대학 졸업생이라는 풍문이 언론을 도배했다. 정권은 수사당국까지 동원되어 그를 혹세무민으로 다스리려 했다.
천재 경제분석가하고 불리던 미네르바가 체포되었다. 죄명은 허위사실 유포였다. 의기양양한 정부와 언론은 요란을 떨면서 그의 정체를 밝혔다. 30세의 ‘미네르바’의 최종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라고. 미네르바는 법정 공방을 거쳐 무혐의로 나왔지만, 세상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지혜의 부엉이는 딱 그 지점에서 우리의 위선을 보여주었다. 학벌 앞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말하지 못하는 거짓된 민낯을 말이다.
#4
문화대혁명이란 광기가 대륙을 점령했다. 마오쩌둥의 수첩을 든 십대 홍위병들이 중국을 혼란으로 빠트렸다. 젊은 홍위병들이 마오쩌둥의 친위부대였다. 홍위병들은 자신의 학교를 폐쇄했고, 스승을 폭행했으며, 공자 사당을 구시대 유물이라며 파괴했다.
마오의 사냥개가 된 홍위병들은 선동과 폭력으로 천하의 질서를 욕보였다. 마을 어른이 홍위병들의 눈치를 살폈고,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교수와 선생도 지식인이란 이유로 포승줄에 묶여 제자들에게 끌려다녔다. 국가 주석이던 류소기는 그들에게 폭행을 당한 뒤 자택에서 숨졌고, 등소평도 광기에 휩쓸려 시골로 끌려갔다. 등소평의 장남은 홍위병들에 의해 추락하여 척추가 부러졌다.
문화대혁명 당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죽음이었다. 천만이 넘는 젊은 홍위병은 마오쩌둥의 맹견이었다. 이들을 이용하여 정적을 제거한 마오는 홍위병 해산에 들어갔다. 토사구팽이었다. 한바탕 거대한 거짓된 광기가 지나간 대륙은 한 세대가 끊어졌고 문명이 후퇴했다. 영화 <인생>, <5일의 마중>, <패왕별희>를 보라. 광기의 시대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마저 숨을 죽였다.
#5
나는 우리 사회에 싹을 틔운 광기가 불안하고 두렵다. 어느새 우리의 광장은 거짓을 선동하는 광기가 넘쳐난다. 언론과 종교, 정치, 재계는 물론이요, 심지어 노동계,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탁하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며 혐오한다. 마음이 가난한 패거리와 정의는 광장의 재앙이다.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오는 서녘을 자주 바라본다.
야속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저문 황혼 녘에만 날개를 펴고 우리의 광장으로 올 것이다. 그 날개짓 소리가 들려오게 되면 별빛 사이로 진실과 거짓의 실상이 밝게 드러날 것이다. 그 순간까지는 백은선사의 만트라 “아. 그렇습니까”를 정성껏 되뇌이며 평화를 지켜야겠다. 부디, 흑암 속에도 내면의 총명함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황혼을 뚫고 날아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기다려 본다. “아, 그렇습니까”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