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은 가성비 최고의 피서다.신비한 도사나 초능력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선 여동빈이나 인도의 사티야 사이바바 그리고 마법사 다스칼로스와 같은 초인들의 무용담은 베트맨이나 스파이더 맨에 못지않다. 게다가 이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며, 최근에도 이들에 대한 목격담이 회자될 정도의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초능력자 유리겔라를 기억하는 라떼 세대가 제법 있을 것이다. 5공 시절, kbs 생중계를 통하여 보여준 그의 초능력으로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시청자들이 유리겔라의 지시를 따라 하자 집에 있던 멀쩡한 수저가 휘고, 고장 난 시계가 작동하는 등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유리겔라의 생방송이 있었던 다음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여동생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교실에서 일어난 초능력 사건에 대해서 말했다. 여동생이 교실에서 유리겔라 흉내를 내던 중, 친구 한 명을 한 손만으로 쑥~ 들어 올렸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들어 올려진 동생 친구와 들어 올려버린 여동생, 보고 있던 학생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여동생 말에 따르면)여고 시절, 얼떨결에 초능력을 발휘했다던 여동생은 지금은 갱년기와 대결 중이다.
도사와 초능력자에 대한 책들은 많지만, 지금 소개할 책은 이 분야의 전설이다. 정신세계사가 1984년에 출판한 『민족소설. 단(丹)』이다.그 해에만 무려 40만 부를 판매한 베스트셀러다. 이 책의 인기에 힘입어 절집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명상과 수행이 사바세계로 퍼져나갔다. 호흡 수련, 마음공부, 기, 단전호흡, 명상과 같은 용어가 우리 입에 오르내린 것도 그때부터였다.
『민족소설. 단(丹)』이 출판되기 몇 해 전, 국선도와 청산거사에 대한 풍문이 유언비어처럼 떠돌았다. 청산거사의 예언(12.12반란, 5.18 광주 등)에 놀란 보안사가 정권 보호 차원에서 그에게 살인적인 고문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풀려난 청산거사는 연기처럼 세상에 모습을 감췄다는 이야기다. 훗날 나도 국선도에 잠깐 다녔는데, 그때 청산거사에게 직접 수행을 배웠다는 분도 만났었다.
“오늘 전두환 각하께서는~”이란 앵커의 목소리로 9시 뉴스가 시작되던 80년대. 대학생의 시위와 분신자살, 5.18의 진상, 황당한 간첩단 체포 소식은 반복되는 기사거리였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일상이던 살벌한 사회 분위기에 등장한 『민족소설. 단(丹)』은 요즘 말하는 일종의‘갑. 분. 싸’였다. 투쟁이 격렬한 시대였던 탓에정신적 청량제였다.
『민족소설. 단(丹)』은 우리 백두산족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일종의 국뽕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서재에는 『환단고기』,『천부경』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이 소설은 우리를 고조선과 단군으로 소환시켰는데, 중화문명보다 앞선 위대한 백두산족이며, 치우천황도, 복희 씨도 공자도 우리 민족이라고 말한다. 중국인들이 알게 된다면 경악할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들도 동북공정이라는 억지를 쓰지 않던가? 괜찮은 복수이다.
작품 속 주인공 우학도인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여러 국가로 쪼개지고, 우리 남과 북은 15년 내로 통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민족소설. 단(丹)』의 예언대로 소련의 붕괴가 실제로 몇 년 뒤에 일어났다. 우학도인의 예언대로 소련이 붕괴되자,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통일도 가능?이라는 기대를 했었지만, 40년이 다 되어가도 통일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민족소설. 단(丹)』의 실제 주인공은 봉우 권태훈이란 분이다. 작품 속에서는 우학도인으로 나온다. 사진 속 우학도인의 외모는 비범하다. 기품 있는 한복과 은빛의 긴 머리와 수염, 그리고 형형한 눈빛을 보게 되면 “아~ 도사가 있긴 있네”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작가 김정빈은 봉우 권태훈 옹과 70시간에 걸친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지금도 봉우 선생의 사진을 보면 여전히 범상한 분위기가 풍겨난다.
구한말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도사들의 영웅담은 그 흡입력이 엄청나다. 한 번 책에 손을 대면 마지막 장까지 쉼 없이 읽게 된다. 게다가 거짓과 실제가 서로 넘나드는 내용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이런 소설을 일컬어 ‘팩션’(팩트와 픽션의 조합어)이라 부르던가?
『민족소설. 단(丹)』의 영향으로 한때 개량 한복과 수염을 기른 남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책의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 좌절해 버린 86세대 운동권 중에서는 속세를 등지고 도를 찾아서 길을 떠나기도 했다. 하긴 나도 한동안은 개량 한복 차림으로 출근을 했었다.
며칠 전, 추억 속의 유리겔라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우크라니아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핵도발 의욕을 초능력으로 무산시키겠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옆에 실려있던 유리겔라의 얼굴은 무척 늙어 보였다. 세상은 그를 두고 위대한 초인? 교묘한 사기꾼?이라는 엇갈린 평을 내리지만, 일단은 전쟁을 막겠다는 그의 엄포는 반가웠다. 푸틴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떡하지? 유리겔라가 걱정된다.
생각해 보면, 도사란 별스러운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장삼이사인 우리도 세파 속에 견디다 보면(일종의 수련) 초급 도사 자격은 되지 않을까? 오늘 저녁, 도사의 경지에 도전해봐야겠다. 홀로 촛불을 켜고, 방석에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하는 것이다. 혹시 알겠는가? 유체이탈이 되어 푸른 동해로 피서를 떠날 지...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