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준 위대한 선물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스베덴보리

by 박신호

새해 첫 독서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 해를 여는 책이니 만큼 신중하게 고르게 된다. 올해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를 다시 읽어볼까 하다가, 책장 한구석에 숨어있던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 눈에 들어왔다. 뭔가,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대체 이런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실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은 몇 해 전 읽었던 책이다. 그때는 영계와 유체이탈과 같은 오컬트 분위기와 천국에 도로(道路)가 있다는 등 내용은 황당스러웠다. 게다가 임사체험에 관한 책은 이미 여러 권 보았던 터라 신선하지도 않았다. 단지 천재 과학자의 감동적인 천국 체험기라는 부제만 유혹적이었다. 아무튼 그때는 종이만 술술 넘기며 건성으로 읽었다.


한때 임사체험기나 채널링 관련 도서들이 속속 출간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 신비롭게 등장했던 ‘뉴 에이지’의 영향이 한 몫했던 것 같다. 외계의 존재들이 현대판 영매들을 통하여 전하는 메시지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고 난 뒤 끝은 상큼하지 않았다. 마치 패스트푸드 음식을 잔뜩 먹은 후 느껴지는 불쾌한 포만감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은 『위대한 선물』은 전과는 완연히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치 책의 구절과 묘사하는 내용들에서 저자 스베덴보리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을 읽은 뒤 밀려오던 감동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어쩌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건과도 인연이 있을 것이다. 계묘년 첫 독서로 『위대한 선물』를 읽은 것은 우연이었을까?


물질계 너머 있는 영적 세계를 흘끗 보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위대한 선물』은 영적 세계에 대한 보고서이다. 서양과 기독교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선물인 것이다.


『위대한 선물』에서는 영계 체험자 스베덴보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출생, 자연과학자로서 아이작 뉴턴과 같은 최고의 과학자 반열에 올랐음. 57세에 심령적 체험을 겪은 후 신비적 신학자로 전향. 이후 그는 27년간 영계를 수시로 다니면서 천국과 지옥을 체험했고 그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하였다.’라고.

동시대 철학자 에마누엘 칸트도 스베덴보리의 영적 능력을 인정했다고 전한다. 헬렌켈러 또한 스베덴보리의 영적 체험기를 통해서 사후 세계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현재 그가 남긴 방대한 영계탐방기는 〈스베덴보리연구회〉에서 정리하여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체험기를 읽기 전에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영계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창조주께서 창조했다는 사실. 둘째는 인간은 육신과 영체로 구성된 존재라는 사실. 마지막으로는 사람이 죽으면 육신과 영혼은 분리되며 영계로 이동한다는 사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가지를 천리법도(天理法道) 즉, 우주의 법칙이라고 했다.


『위대한 선물』에 따르면 영계에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상태 변화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가령, 아침을 느끼는 상태, 점심을 느끼는 상태, 저녁을 느끼는 저녁 상태가 있을 뿐이라 했다. 황혼과 새벽은 있지만 어두운 밤은 없다고 한다. 또한 영계에 사는 영혼들은 상념으로 대화를 한다고 한다. 생각을 동력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빛보다 빠른 것이 마음이라던 대행 큰스님의 법문이 떠올랐다.

스베덴보리가 말하기를 천국에는 단계가 있고 사랑과 진리가 빛나는 곳이라고 했다. 반면에 지옥은 욕망이 지배하는 곳이며 자기 사랑과 이기주의, 정욕의 만족만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는 인간들이 산전수전을 겪는 과정에서 악한 지혜가 발달하고 이기적인 향락에 빠지면, 악의 그릇이 커진 채 가게 되는 영계가 바로 지옥이라고 했다.

가톨릭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말한다. 나는 연옥의 실재를 의심했는데, 이번에 『위대한 선물』 읽으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서는 연옥을 중간영계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은 사후 인간의 영체가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장소라고 한다. 일종의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대기 장소로서 영계 생활을 준비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인간은 이곳에 머물면서 생전의 사랑 실천을 기준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스베덴보리는 인간계란 회개와 사랑 실천이 가능한 곳이라 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지구별 학교라고 비유하는 모양이다. ‘천국은 하늘에 있어만, 천국으로 가는 길은 땅에 있다’ 구절에도 무릎을 쳤다. 또한 ‘용서’란 타인의 잘못과 실수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며, ‘양심’은 하느님이 마음에 파견한 ‘하느님의 사자’라는 문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위대한 선물』에서 묘사되고 있는 영적 세계는 스베덴보리의 시각일 뿐이다. 가령 윤회에 대한 설명 없다든지 천국을 두고 황홀, 찬란, 궁전, 보석 등으로 묘사하는 것은 체험자 개인의 인식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소소한 표현에 시비를 따지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한다면 뛰어난 영적 도서임이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로부터 할당받은 내 삶의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아래로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죽음 이후의 삶을 안다는 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스베덴보리도 사후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방법이라고 단언했다.


계묘년 첫 독서로 『위대한 선물』이 끌렸던 까닭을 헤아려본다. 머잖아 애벌레에서 탈피하여 나비처럼 비상하라는 신의 윙크일까? 왠지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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