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햇볕이 드는 날

< paperback writer >, beatles

by 박신호

내 차는 달리는 음악감상실이다. 클래식 FM 방송을 주로 듣지만, 팝송과 가요 심지어 불경이나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을 때도 있다.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가급적 교향곡 CD를 챙겨간다. 운전하면서 듣는 음악은 공연장 못지않은 감흥을 선사한다.

전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이 비틀스 음악을 파일로 전송해 주었다. 아빠가 요즘 비틀스에 꽂힌 것 같다면서. 딸이 보내 준 음악 파일을 USB에 옮겼다. 출, 퇴근길에 듣기 위해서다. 시동을 켜고서 재생 버튼을 누르자 노래가 나온다. 비틀스의 <paperback writer>이다. 박자에 맞춰 손으로 운전대를 두드려본다. 귀에 익숙한 부분은 따라 부르고, 모르는 부분은 적당히 중얼거린다. 출근 시간의 노래 감상은 흥겨운 해방감을 준다.


“페이퍼백♬ 라이~터♪~”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이어서 밴드의 코러스가 뒤를 따른다. 폴의 베이스 기타가 멜로디 라인을 반복하는 가운데, 리드 기타에서 신나는 리듬이 튕겨 나온다. 이 곡은 1966년 빌보드에서 2주에 걸쳐 1위를 했다. 당시 1위 경쟁 곡은 프랭크 쉬나트라의 <Strangers in the night>이었다. 가히 명곡들의 향연이다.

<paperback writer>는 무명작가의 희망 사항을 흥겹게 노래한 곡이다. 노래 제목은 통속소설을 쓰는 삼류 작가를 뜻한다. 접착제로 제본한 값싼 대중 서적의 표지를 ‘paperback’라고 한다. 이 곡은 ‘사랑 노래 말고 다른 것도 좀 만들어 보라’는 이모(또는 팬이라 설도 있다)의 말에 폴 메카트니가 자극받아 만들었다고 전한다. 또 하루는 폴이 링고 스타의 책 읽는 모습을 본 순간 악상이 떠올랐다는 말도 전한다.


비틀스의 <paperback writer>를 듣고 있는데, 엊그제 글쓰기 수업이 떠올랐다. 쓰기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학우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적어보라 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글을 쓰는 이유 세 가지’‘하루 중 글을 쓰는 시간’ 마지막으로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 답을 적어보련다.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세계는 복잡한 직장 일과 혐오스러운 정치, 걱정스러운 경제와 코로나19 등이 없는 낙토이다. 세계 2차 대전 때, 어느 과학자가 연구에 몰입하느라 전쟁 발발도 몰랐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글쓰기는 마음속 먹장구름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비바람이 심한 날,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 홀로 있는 기분이랄까? 세상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보인다.

글쓰기는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다. 요 몇 해, 후두염과 두통이 내게 찾아왔다. 손상된 성대는 신통치 않았고, 지끈대는 뒷머리의 압력은 아침맞이를 힘겹게 했다. 하지만 글을 구상하고, 자료 검색하고, 개요를 생각하다 보면 이런 증상들이 차츰 둔감해진다. 더불어 부정적인 사념까지도 흐릿해진다. 몰입은 효과적인 치료제다.

또한 글쓰기는 맴돌던 의식의 사유를 홀로그램처럼 드러나게 한다. 생각이 활자로 형상화되면 머리가 말끔해지고, 시끌시끌 떠들던 사념들도 입을 다문다. 일단 초고가 마무리 되면 청량한 탄산음료 한 병을 쭉~ 들이킨 기분이다.

두 번째 질문은 글을 쓰는 시간에 대한 것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 홀로 깨어있는 적적함을 즐긴다. 잠시 후 빵과 요플레로 식사를 한다. 이어서 양치를 하고 의복을 갖춘 다음 노트북을 챙긴다. 가는 곳은 인근 대학 캠퍼스다. 그곳 커피숍이나 도서실에서 앉아서 유리창 너머 청춘들을 바라본다. 그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내게 들어오는 것 같다. A4 두 장 분량이 채워질 때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이때쯤이면 ‘들어와서 점심 먹으라’라는 아내의 문자가 들어온다.

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은 독자에 대한 것이다. 작년 등단을 권유하는 어느 문예지의 제안을 마다하고, 브런치 플랫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올리면서, 조회와 라이킷 횟수로 독자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의 내용과 조회 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눈치챘다. 나는 심드렁해졌고 편해졌다. 아직 내 글은 독자에게 공감을 얻기에는 어설프다. '쓰는 힘이 곧 재능'이란 말을 들었다. 그저 고단한 인생길을 걷는 이들이 내 글을 읽고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오늘 하루, 비틀스의 <paperback writer>를 숱하게 들었다. “친애하는 선생님 아니면 여사님, 제 책을 읽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몇 년이나 걸려 쓴 겁니다, 한 번 훑어봐 주십시오.… 저는 일자리가 필요해서, 페이퍼백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노래 가사 속 무명작가의 정직한 하소연에 공감이 간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작가를 꿈꾼다. 훗날 나 또한 <paperback writer>의 무명작가처럼 글을 광고하고 다닐지 모를 일이다. 뭐 어떠랴. 뻔뻔함도 용기요, 작가의 몫이 아니던가? 글쓰기를 즐기다 보면, 어느 날 몸에서 쨍한 반응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paperback writer>를 들어보련다.



< PAPERBACK WRITER> 비틀스


Paperback writer

Dear Sir or Madam, will you read my book?

It took me years to write, will you take a look?

Based on a novel by a man named Lear

and I need a job, so I want to be a paperback writer,


친애하는 선생님 아니면 여사님, 제 책을 읽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몇 년이나 걸려 쓴 겁니다, 한 번 훑어봐 주십시오.

리어라는 사람이 쓴 소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일자리가 필요해서, 페이퍼백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paperback writer.

It's a dirty story of a dirty man

and his clinging wife doesn't understand.

His son is working for the Daily Mail,

it's a steady job but he wants to be a paperback writer,


더러운 인간에 대한 지저분한 이야기입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마누라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들은 데일리 메일 지에서 일합니다.

안정된 직장이지만 그는 페이퍼백 작가가 되고 싶어합니다.


---- 이 하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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