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그 오묘함에 대하여
< Something >, Beatles
토요일 이른 아침, 고요하다. 나 홀로 이 적막한 공간에서 머물고 있다. 차츰 맑은 햇살이 거실로 들어온다. 차를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창 너머 들려오는 새소리에 기분이 상큼해진다. 평온함이 내 곁에 앉아 있다.
여느 주말 아침처럼 책을 보고 있었다. 햇살이 점점 강해질 무렵 뒤늦은 졸음이 나른하게 밀려왔다. 완독을 앞둔 책을 읽기 위해서 졸음을 쫓아야 했다. 전원을 콘센트에 꼽고선 텔레비전을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다가 연기자 김상중 씨가 진행하는 예능 교양 프로에 손이 멈췄다. 그날의 주제가 <비틀스>였기 때문이다.
진행자가 비틀스와 관련된 분이 영국에서 오셨다고 했다. 객석에서는 “누굴까?”라는 호기심으로 웅성거렸다. 진행자는 웃으면서 ‘조지 해리슨’과 연관된 분이라 했다. 이 말에 나는 혹시 ‘패티 보이스?’인가 짐작을 했지만 설마 했다. 잠시 후 울려 퍼지는 음악 가운데 예상대로 '패티 보이스'가 등장했다.
패티 보이스는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크립튼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불세출의 팝아티스트인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크립턴은 절친한 벗이었다. 친구 사이인 두 남자를 남편으로 둔다는 것은 우리 정서로는 이해 불가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지금도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에피소드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런 패티 보이스가 노구를 이끌고 한국 팬들 앞에서 서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유명 모델이자, ‘뮤즈’의 대명사였던 그녀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듯 완연한 노파가 되어 있었다. 패티보이스 등장하자 밀려오던 잠이 달아났다. 전설처럼 들었던 뮤즈가 현실에 존재한다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패티보이스를 보았다면 마땅히 비틀스의 <something>을 감상해야 한다. <something>은 조지 해리슨의 역량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곡이다. 비틀스의 모든 음악을 독점했던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도 이 곡을 듣고서는 조지 해리슨에게 음반의 첫 트랙을 양보했다고 한다. 프랭크 쉬나트라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라 극찬했으며, 현재까지 엘비스 프리슬리를 비롯한 150명이 넘은 가수들이 이 곡을 노래했다고 한다.
<something>은 비틀스 제국의 종말이 다가오던 1969년 <Abbey road>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그것도 A면 첫 곡으로 말이다. 비틀스의 거의 모든 곡은 존 레넌-폴 메카트니 공동 작업으로 발표되었다. 기가 센 두 형들 밑에서 조용하게 곡을 만들었던 조지 해리슨의 음악적 능력이 <something>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Abbey road> 앨범에는 조지 해리슨의 또 다른 명곡 <Here come to sun> 도 담겨있다. 마침내 조지 해리슨의 음악적 능력이 개화된 것이다.
<something>은 고요하고, 신비로우며, 사랑의 기운으로 가득한 음악이다. <Yesterday>에 버금가는 감미로운 곡이다. 하지만 곡의 사랑스러운 선율과 달리 노래가 발표될 당시,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스는 파경 직전이었다고 한다. 이 둘의 사이를 어긋난 사내는 조지 해리슨의 절친 에릭 크립턴이었다. 그는 친구 부인과 사랑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그 무렵, 조지 해리슨은 음악 작업에 분주했고, 그나마 여유가 생기면 크리슈나 신을 만나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인도에서 조지는 스승의 아쉬람에서 하레~ 크리슈나를 노래했다. 이러니 젊은 아내 패티 보이스의 마음이 헛할 수밖에. 이때 그녀의 허전함을 채워준 사람이 에릭 크립턴이었다. 큐피드의 화살이 하필이면 남편 친구를 맞춰버린 셈이랄까.
크리슈나를 찬양하고 돌아온 조지 해리슨에게 에릭 크립턴은 진실을 고백했다. 조지 해리슨은 어이없는 이 상황을 순하게 받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뮤즈 패티보이스는 남편의 친구와 새로운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쿨한 방식이다. 어찌 보면 서로가 살벌하게 갈라서기보다는 세련된 이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에릭 크립턴과 패티 보이스도 훗날 결별하고 만다. 현재 그녀는 세 번째 남편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꼬인 인연에도 불구하고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크립턴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고 한다. 조지 해리슨 사후 그를 기리는 추모 공연에서 에릭 크립턴은 조지 해리슨에게 멋진 기타 연주를 받쳤다. 사실이냐고? 전설 같지만 사실이다.
남녀의 인연은 참 오묘하다. 끌리는 시점이 달라서 속을 태우기도 하고, 반대 성격임에도 사랑의 블랙홀에 끌려간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게 되면 핑크빛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이를 어쩌랴 머잖아 한계 상황에 도달할 것을. 어느 날 핑크빛 눈에서 콩깍지 뚝하니 떨어지면, 애증의 메트릭스에서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불쌍한 네오! 한 발 늦었다네. 이번엔 ‘의리’라는 인연법을 배울 차례니 말일세.
어떤 눈 맑은 분께서 부부의 인연을 이렇게 풀이했다.
“원래 반대끼리 끌리는 법이죠. 하늘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서로 품앗이하면서 영혼이 진화하는 것이지요.”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격렬한 감정이다. 운명은 이 애증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친다. 그래서 부부야 말로 최고의 도반이요, 가정은 최고의 수행처라 하겠다. '백년해로'든, '이별'이든 인생 수업의 한 과정일 뿐이다. 조지 해리슨도, 패티 보이스도, 에릭 크립튼도 결국 인생 학교의 학생일 따름이다.
<something>을 들으면서 남녀의 오묘한 인연을 생각해 보았다. 부디 주말 늦잠을 즐기는 아내도 인생 하교에서 공부를 잘하기 바라본다.
< Something >, The Beatles
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
attracts me like no other lover
Something in the way she woos me
I don't want to leave her now,
you know I believe and how
그녀의 몸짓엔 뭔가가 있어요
다른 어떤 사랑과도 다르게 날 끌어당기는 뭔가가
그녀가 날 끌어당기는 방식에도 뭔가가 있어요
그녀가 날 끌어당기는 방식에도 뭔가가 있어요
난 지금 그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그렇게 믿고 있으며 왜
그렇게 된 지도 알잖아요
(중략)
Something in the way she knows
and all I have to do is think of her
Something in the things she shows me
I don't want to leave her now
you know I believe and how
그녀가 아는 방식에는 뭔가가 있어요
그리고 내가 그녀만 생각나게 하죠
그녀가 내게 보여주는 건 뭔가 있어요
난 지금 그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그렇게 믿고 있으며
왜 그렇게 된 지도 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