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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Feb 21. 2024

선배님이 해고를 당했다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2023년 9월 27일 추석 연휴 전날, 오후 4시 51분. 조용한 사무실 적막을 깨고, 내 휴대전화에 진동음이 울렸다.      


“건강 잘 챙기고 끝까지 버티길. 그래야 좋은 날 만난다.”     


발신자는 전 본부장님이었다.     


‘이분이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본부장님의 메시지가 휴대전화 화면에 뜨자 나는 과연 본부장님이 내게 보내신 메시지가 맞나 싶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궁금증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전체 메시지를 보기 위해 카카오톡 대화창을 눌렀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너를 보고 힘을 많이 얻었네. 고마웠으나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네. 건강 잘 챙기고, 그래야 좋은 날 만난다.”     


‘.......본부장님이 휴직하시나?’      


나는 섣불리 답을 드리기보다 일단 사실 확인을 해야겠다 싶었다. 수소문할 사람이 없나 사무실을 돌아보니 저만치 자리에 앉아있는 동료의 검은 머리가 보였다. 마침 회사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아는 동료였다.     


”저기. PD님. 지금 O 본부장님이 톡을 보내셨는데 좀 이상해서요. 혹시 O 본부장님 어디 가신대요? 무슨 이야기 들으셨어요?“     


그러자 동료가 말했다.      


”........저도 오늘 알았는데 해고. 당하셨대요. “     


”...........?“      


”제작 PD들 반발 있을까 봐 추석 연휴 전날 통보한 것 같더라고요. 지금 모르는 사람도 많을걸요.“     


그랬다. 사무실에는 나와 그 PD 둘 뿐이었다. 연휴를 앞두고 하루 전 휴가를 내거나 반차를 낸 사람이 많았다. 앞으로 이어질 명절 특집방송을 대비한 휴식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콧등은 시큰하고, 눈도 뜨거운데 특집방송 때 틀 노래는 선곡을 해놔야 했다. 잠시 후면 또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했다.      

‘톡보다는 전화가 좋겠다.’     

나는 일단 내일 방송 때 틀 선곡을 해두고, 퇴근하며 전 본부장님께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는 아니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마침 헤드폰으로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서로 모른 척하며 서로 잊은 척하며 워어

가지 말라고 소리쳐. 가지 말라고 말했어.’

-이승철, 소리쳐-     


모른 척하여, 잊은 척하며. 그럴 수 있을까? 다시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올랐다. 

"킁" 

눈물과 뒤섞인 콧물을 삼키며 큐시트(방송진행계획표)에 음악을 채워넣었다. 잠시 후, O 전 본부장님과 통화를 할 때 나는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마음 속 문장을 계속 수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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