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13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1997년 8월. IMF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PC통신이 인터넷으로 바뀌어가던 시절.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담백함으로 등장했다. 요즘 말로 하면 완전히 '반트렌드'였던 셈이다.
[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https://www.youtube.com/watch?v=HCjr0F_tzqQ
지금의 세대가 1.5배속으로 음악을 듣고, 15초 하이라이트로 곡을 판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97년은 곡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가사 한 줄 한 줄을 곱씹던 시대였다. 장필순의 이 곡은 그런 시대의 마지막 선물 같았다.
요즘 힙스터들이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장필순은 이미 80년대부터 음악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화려한 비주얼도, 자극적인 퍼포먼스도 없이 오직 목소리와 감정만으로 승부하는 스타일.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힙한 컨셉이었던 거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처럼 찰나의 감정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블로그에 긴 글을 쓰듯 차근차근 마음을 풀어내는 방식. 그의 음악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어느새", "내일이 찾아오면" 같은 곡들도 마찬가지로 급하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감정을 전달했다.
이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식어가고 있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연애에서 '썸'이라는 애매한 관계를 만들어낸 것처럼, 장필순은 사랑의 끝에서도 '완전한 끝'이 아닌 '그라데이션'을 그려냈다. 이별을 다룬 곡들이 대부분 '다 끝났다' 또는 '돌아와 달라'는 극단적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이 곡은 그 중간 어딘가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포착했다. 마치 관계의 상태를 '읽씹'과 '안읽씹' 사이 어딘가로 설정해놓은 것 같은 절묘함이다.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모든 걸 말해준다. 요즘 유튜브 썸네일처럼 제목만 봐도 내용이 다 보이는 직관적인 네이밍. 하지만 뻔하다고 해서 힘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솔직함이 더 와닿는다. '외로움이 사람을 부른다'는 표현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자동으로 특정한 사람을 호출하는 거다. 마치 알고리즘이 과거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추천 영상을 띄우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외로움이라는 트리거가 발동되면 자동으로 그 사람을 불러오는 거다.
곡 속에서 묘사되는 '겨울'과 '손'의 이미지는 완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이다. 요즘이라면 '너의 카톡 알림음'이나 '너의 인스타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그때는 '따뜻한 손'이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추억의 매개체였다. 서늘한 바람이 불 때 떠오르는 기억. 이것도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감각일 수 있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추억을 떠올리는 경험 자체가 희귀해졌으니까.
장필순의 가장 큰 매력은 '절제'다.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능력. 요즘 음악들이 대부분 임팩트를 위해 감정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놓는 것과는 정반대의 접근이다.
마치 ASMR처럼 속삭이듯 부르는 보컬,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지 않은 편곡. 이 모든 게 지금의 '차분한 감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취향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로파이 힙합을 들으며 공부하는 세대에게 장필순의 음악은 의외로 친숙할 수 있다.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이 노래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뭘까? 연락 수단이 삐삐에서 카톡으로, 편지에서 인스타 DM으로 바뀌었지만, 사랑이 식어가는 마음과 그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복잡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연락이 끊어지면 정말 끊어졌지만, 지금은 SNS를 통해 상대의 일상을 엿볼 수 있으니까. 완전히 잊기도, 완전히 기억하기도 애매한 그 상태. 장필순이 97년에 노래한 그 감정이 2025년 지금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결국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는 복잡한 감정을 아름답게 아카이빙한 작품이다. 거창한 철학이나 메시지 없이도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힘.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외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끝난 관계의 잔여물들 때문에, 읽씹 당한 메시지 때문에, 혼자 보내는 금요일 밤 때문에. 장필순은 그런 평범한 외로움을 그냥 음악으로 만들었다. 별다른 포장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