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20초의 기다림-산울림,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25 전주가 너무 길어서 당황한 이야기

by 꼬르륵

처음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들었을 때 당황했다. 노래가 시작되지 않는 거다. 계속 기다려도 김창완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혹시 잘못 받은 파일인가 싶어서 다시 재생해봤는데, 여전히 악기 소리만 들렸다.


[산울림-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https://www.youtube.com/watch?v=aseVa1H8eUY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곡의 전주가 무려 3분 20초였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긴 전주 중 하나라고 한다. 1977년 당시 기준으로 보면 정말 파격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틀어주기도 애매하고, LP 한 면을 거의 다 차지하는 길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만들어내는 사운드가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마치 어떤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의식 같은 느낌이랄까. 긴 전주가 끝나고 김창완의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이 오히려 설렘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의 실험 정신

1977년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기존의 트로트나 팝송 번안곡 위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울림도 그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그룹이었다.

김창완과 그의 동생들이 만든 산울림은 데뷔작 "아니 벌써"부터 남달랐다. 록 음악이라고 하기엔 서정적이고, 발라드라고 하기엔 실험적이었다. 기존 가요계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음악들이었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도 마찬가지였다. 3분 20초 전주라는 파격적인 구성도 그렇고, 좌우 채널을 나누어 녹음한 사운드 기법도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이었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소리가 좌우로 분리되어 들리는 게 신기했다.


음악으로 그린 감정의 풍경

긴 전주를 견디고 나서야 들을 수 있는 가사는 의외로 단순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에 고운 주단을 깔아놓겠다는 내용. 그런데 이 단순한 메시지가 3분 20초의 전주와 만나니까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었다.

마치 정말로 주단을 깔아놓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구석구석 펼쳐놓는 그 시간. 그래서 노래가 시작될 때쯤이면 이미 그 마음의 공간이 준비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 음악들과 비교하면 정말 대조적이다. 지금은 인트로 10초만 길어도 스킵당하는 시대니까. 하지만 때로는 이런 여유가 그리워진다. 기다림 자체가 음악의 일부가 되는 경험.


가족 밴드의 특별함

산울림이 특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가족 밴드였다는 점이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가 만든 음악에는 남다른 호흡이 있었다. 피 끓는 형제들이 만드는 음악이라 그런지, 어떤 곡들은 정말 치열하게 들렸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도 그런 곡 중 하나였다. 긴 전주 동안 세 형제가 주고받는 연주는 마치 대화 같았다. 누가 먼저 나서지도, 누가 뒤로 물러서지도 않으면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2008년 막내 김창익이 세상을 떠나면서 산울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창완은 "산울림은 가족 밴드"라며 더 이상 산울림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이 와닿았다. 어떤 음악은 특정한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니까.


시대를 앞서간 사운드

지금 들어도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사운드는 독특하다. 1977년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세련되어 있다. 특히 좌우 채널을 활용한 스테레오 기법은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이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음악 팬들이 이 곡을 발견하고 놀라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40년도 넘은 곡인데 전혀 낡지 않은 느낌이니까. 오히려 지금의 일렉트로닉 음악들과도 어딘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3분 20초 전주를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다. 처음 들을 때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기다림을 견딘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곡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기다림이 주는 보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주단을 깔아놓는 시간

결국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기다림에 대한 노래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시간.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요즘 같은 빠른 시대에는 더욱 그리워지는 여유다. 무언가를 위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다는 걸 아는 신뢰. 산울림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

2024년 현재에도 이 곡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최근 한 19살 청소년이 남긴 댓글이 이를 증명한다.

“오늘 이 노래를 처음 접한 19살입니다. 그 당시 발매되었을 때 이 곡을 처음 접하신 분들의 그 감격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네요. 상당히 실험적이고 그냥 '음악'이라 칭하기 아까울 정도로 너무 세련된 예술이네요.” 당시 발매 시점의 충격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오히려 이 곡의 예술적 가치를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것이야말로 명작이 가진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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