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26 -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86년생이 1985년 노래에 빠지는 이유가 있다.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노래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이야기다. 남편이 종종 묻는다. "당신 86년생 맞아?" 플레이리스트를 보고 하는 소리다. 아이유, 방탄소년단보다 이문세, 들국화가 더 많으니 그럴 만도 하다. MZ세대 라디오 PD 치고는 확실히 감성이 올드하다. 하지만 좋은 음악에 세대가 어디 있나. 특히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곡을 들으면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다.
[둘국화 - 그것만이 내 세상]
https://www.youtube.com/watch?v=Kg3N7EnVRd0
첫 소절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1985년에 만들어진 노래인데 2024년 현재의 내 마음을 이렇게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니. 86년생인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나온 곡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대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묘했다.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불안과 1985년 들국화가 노래한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외로움. 이런 감정들이 세대를 초월해서 공통분모가 되는 것 같다.
진정성이 만든 목소리
전인권의 목소리가 이 곡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세상에 대한 불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를 동시에 담아낸다. 거칠면서도 섬세하고, 강하면서도 여린 그의 보컬은 이 곡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한다.
들국화만의 독특한 사운드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한국 록의 개척자였던 그들은 서구 록을 단순히 모방하지 않았다. 한국적인 정서와 록의 에너지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도 그런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업성보다 개성을 택한 시대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독특한 시기였다. 기성세대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들국화도 그런 흐름 속에서 탄생한 밴드였다. 당시 주류 음악계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음악을 했다.
지금처럼 차트나 스트리밍 수치에 연연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뮤지션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음악들에는 뚜렷한 개성과 진정성이 묻어난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곡이다.
세대를 초월하는 공감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건, 좋은 음악은 정말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벽 시간대에 이 곡을 틀어주면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반응이 온다. 모두 다른 이유로, 하지만 비슷한 감정으로 이 노래에 공감한다. 2024년을 살아가는 20대들도 1985년의 전인권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기성세대는 우리가 세상을 모른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SNS 시대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불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 들국화가 1985년에 노래한 이 감정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나만의 색깔을 찾는 일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제목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결국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세상이라는 것. 86년생인 내가 85년 노래에 이렇게 빠져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다. 1980년대 뮤지션들이 보여준 그 진정성과 개성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모두가 비슷한 음악을 하는 시대에, 들국화처럼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본다.
여전히 필요한 나다운 소리
들국화 같은 밴드가 지금 나타난다면 어떨까? 아마도 "상업성이 없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뭐라고 하든, 이것만이 내 세상이다. 들국화가 1985년에 던진 이 메시지는 2024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나다운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이자,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