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서정곡 - 35년을 버틴 소신에 대하여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28 - 블랙홀, 깊은 밤의 서정곡

by 꼬르륵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

살다 보면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굳이 왜 저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뭐 그리 대단한 걸 한다고. 내게는 록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로 보였다. 특히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헤비메탈을 하며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음악을 이어가는 아티스트들을 볼 때면,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휴’ 하며 그들의 생계와 가족을 걱정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고, 그렇기에 그들이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 것에 대해 내가 이러쿵저러쿵할 필요가 없다는 걸. 어쩌면 그들의 삶을 내 기준으로 재단해왔던 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법을 어기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걱정과 판단을 했다는 사실이 민망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춰 서는가. 그런 벽을 무릅쓰고도,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록을 하는 분들의 꾸준함과 소신이 유독 더 크게 다가온다.


헤비메탈,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는가 싶었지만

그중에서도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는 유독 험한 길이다. 빠른 템포, 공격적인 기타 리프, 강렬한 보컬이 특징인 이 장르는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좁은 팬층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그만큼 더 깊이 있고 열정적인 팬과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만의 소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정신이 이 장르의 본질이다. 그래서일까, 헤비메탈을 꾸준히 해온 뮤지션들을 보면 존경심부터 든다.


블랙홀, 35년을 버틴 팀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스물여덟 번째 곡은 그래서 더 박수 쳐 주고 싶은 그룹의 음악이다. 바로 블랙홀의 ‘깊은 밤의 서정곡’.


[블랙홀 - 깊은 밤의 서정곡]

https://www.youtube.com/watch?v=946hIajM-Hc

블랙홀(Black Hole)은 1990년대 한국 록 음악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하드 록과 헤비메탈 장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왔다. ‘깊은 밤의 서정곡’은 1989년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블랙홀 특유의 강렬한 기타 사운드 위에 감성적인 멜로디와 분위기를 얹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곡 제목처럼 이 노래는 한밤의 정적과 내면의 감정을 담아낸다. 고요한 밤에 쌓여가는 생각들, 쉽게 드러내지 못한 감정들이 록 사운드 안에서 터져 나온다. 단지 센 음악이 아니라, 섬세함과 시적인 정서를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특히 연주력도 탁월해서, 라이브로 보면 더 빠져들게 되는 곡이다.


밤에만 틀 수 있는 노래

놀라운 건 이들이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블랙홀은 1989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매년 공연과 음반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곡을 직접 쓴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주상균 씨는 무대 위에서는 고음을 내지르다 무대만 내려오면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 뚜렷한 온도차가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곡의 길이는 5분 36초. 분위기상 아침 방송에 틀기도, 낮 시간에 흘리기도 애매하다. 밤 시간에나 틀 수 있을 법한 무게감 있는 곡이다. 라디오에서 선곡하기 쉽지 않은 곡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토록 묵직하게 음악을 만든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결국 박수를 치게 되는 이유

그리고 결국엔, 나도 이렇게 몇십 년이 지난 노래를 다시 듣고, 글로 남기고 있다. 35년을 버틴 한 곡, 한 팀의 소신 앞에서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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