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에세이 Chapter.10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어릴 적 친정엄마가 늘 하시던 말이었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대단한 명언처럼 하실 때면 나는 '또 그 이야기' 하며 대충 "알았어, 알았어" 그러곤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일을 하며 두 아이를 키워보니 정말 그렇다.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어느 날 두 아이의 소풍 당일, 나는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문어 소시지, 김밥을 한껏 기대했다. 그렇지만 나는 잠이 부족하면 저혈압 증세로 하루 종일 체력의 한계를 느끼곤 했고, 그날은 생방송과 녹음까지 제작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그날 내가 정한 우선순위는 나의 몸 상태였다. 소풍을 마친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와 돌봐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지친 '나'였기 때문이다. 하루 무리한 후유증이 사흘은 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나는 무리하게 달리지 않는 것을 1순위로 정했다.
김밥은 유부초밥으로 대체하고, 문어는 치즈로 눈을 붙이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김밥이 없는 아쉬움은 "고래"를 챙겨 넣어주면서 잘 협상이 됐다. 오전 7시부터 7시 40분까지 도시락을 싸다가 40분이 되자 준비하던 손을 딱 떼고 도시락을 닫았다. 그래도 나름 풍성했다. 전날 미리 사둔 과일 컵과 포크도 있었다. 그 후 평소처럼 아이들을 깨워 씻기고, 나도 씻고 아침을 먹고 나오니 다행히 소풍 버스 출발 전에 아이들을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머리를 감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감지 않았다. 회사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전날 미리 감고, 묶는 것을 택했다. 내 머리보다 지각하지 않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 것이다.
나는 회사에 도착하면 항상 ‘오늘 할 일’을 수첩에 쭉 적는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의 순위를 정해 번호를 매긴다. 하나씩 줄을 그으면서 일을 처리해나간다.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야 하는 5시까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내일의 내가 또다시 무리해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모든 일에 데드라인을 정한다. 그렇게 시간의 배수진을 쳐놓고 하다 보면 어느새 맡겨진 일은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하루를 보내게 된다. 사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 일의 능률이 시간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기한을 정해놓고 그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런 초인적인 능력은 일하는 엄마들에게 늘 나타난다. 일이 늦어지면 늦어지는 만큼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니까.
"지야호진종혀나아~~~~" 어릴 적 친정엄마는 늘 우리 삼남매를 이렇게 부르곤 하셨다. 다급한 엄마의 부름에 나가보면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분주하게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우리 셋 중 누구라도 얼굴을 빼꼼 내밀면 '빨래 걷어라', '상 위에 수저 올려놓아라', '부추 좀 뽑아와라' 심부름이 우수수 던져졌다. 30대 친정엄마의 저녁은 지금 나의 저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오늘도 나는 첫째를 부르려다가 둘째를 부르고, 둘째를 부르려다가 첫째를 부르고, 결국에는 아이들 이름을 다 부른다. 젊은 날의 친정엄마처럼.
어차피 워킹맘은 일이 넘친다. 집안일도 아이들 교육도 신경을 쓰면 쓰는 대로 일이 더 많다. 나는 쏟아지는 학원 평가 속에서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습관은 만들어주자 우선순위를 세웠다.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세우고, 그 기준에 맞게 잘 선택하고 움직일 때,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들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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