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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Sep 28. 2022

어머니는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한 입도 드시지 않았다

그때 그냥 맛있다고 좀 해주시지

첫아이를 낳고 100일 되었다. 아기가 2시간마다 깨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 4시간 정도는 통잠을 자는 100일이 드디어 왔다. 첫아이의 첫 100일이라 초보 엄마, 초보 아빠였던 남편과 나는 인터넷을 뒤져 다른 엄마 아빠는 어떻게 백일을 축하하는지 검색해보고, 양가 어른을 집으로 초대해 백일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켜먹기로 했다.

맘 카페 엄마들이나 이미 백일 상을 세 차례를 차린 친언니의 후기에 따르면 애 챙기느라 직접 상을 차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밥은 그냥 시켜라'는 말을 성실히 따르려고 하였으나, 어쩐지 모든 음식을 '보쌈'류의 배달음식으로만 채우는 건 정성이 부족한 것 같은 쓸데없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가지라도 요리를 해서 양가 어른들께 대접해드리자 마음을 바꿨고, 그래서 정한 것이 '꽃게 된장찌개'였다. 메인 요리가 배달된 보쌈이 될 터이니, 국물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냥 된장찌개보다는 꽃게가 들어간 게 있어 보일 것 같아서  한 선택이었다.

나는 요리를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엄마는 늘 내게 '외골수'라 하였는데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주변머리가 없어서 누가 불러도 모르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집중하는 것은 책이나 낙서하는 것 따위였는데 책상이나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나는 부엌에서 엄마가 뭘 만드는지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엄마가 불러도 숟가락을 상위에 올려놓거나 물을 컵에 따라 두는 것 정도였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요리를 시작한 후로 내가 한 요리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된다는 것만으로 뿌듯해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니 꽃게 된장찌개를 어른들도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요리로 만드는 것은 내게 부담스러운 목표였다.

솔직히 그날 끓여서 망치면 나도 나지만 시어머니 앞에서 우리 엄마 면이 안 설까 봐 연습도 했다. 전날 끓여 본 소량의 꽃게 된장찌개는 내 입맛으로는 합격이었다!

백일 잔치 당일,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남편과 백일상 소품을 미리 거실에 조립하느라 피곤했지만, 나는 꽃게 된장찌개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올라오고 계신 양가 부모님들이 지금 어디쯤이다, 몇 시쯤 도착할 것 같다는 톡과 전화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요리를 마쳤다. 거실에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오전 11시가 좀 넘고 양가 부모님이 떠들썩하게 연달아 현관문을 거쳐 거실로 들어서시고 자랑하듯이 어머님은 백일떡과 과일을, 엄마는 돌반지를 꺼내 보이시며 손녀의 백일을 축하하셨다. 상 위에 떡과 과일들을 올리고, 어른들은 예쁜 원피스를 입은 손녀딸 뒤에 서서 거의 육십여 장에 이르는 인증샷을 찍으셨다. 원피스만 입으면 서운하니 이 머리띠도 해보고 찍자, 한복도 입혀보자 하시며 아들만 둘인 어머니는 손녀딸의 변신에 연신 박수를 치셨다.

다행히 아기는 협조적이었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젖병을 물려주자 아기는 곧 잠들었다.

어른들은 애 잘 때 얼른 밥 먹자며 밥상을 차리시기 시작했다. 미리 주문한 보쌈이 도착하고, 나는 정성껏 끓인 '꽃게 된장찌개'를 덥혀서 그릇에 덜기 시작했다.

"네가 끓였다고?"

좀처럼 내가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엄마가 못 미더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응, 내가 끓였어 엄마"

눈빛으론 '엄마, 그만해' 했다. 엄마는 염려스러운지 찌개를 닮은 그릇을 옮기시며 '흠'하셨다. ㅎㅎ

어쨌든 다 같이 모여 앉아 간단한 식기도를 마치자마자 친정 엄마는 내 찌개부터 한술 떴다.

"음~, 찌개 맛있네~"

엄마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꽃게를 넣어서 그런지 국물 맛이 더 좋다며 점잖은 거 되게 좋아하는 엄마가 순식간에 팔불출이 됐다. 진짜 놀라셔서였을 것이다.
주변머리 없는 외골수 내 딸이 내 입에 맞는 꽃게 된장찌개를 끓이다니... 엄마는 진심으로 기특해하셨다. 그때 내가 어머니께 한번 드셔보시라고 권했던 것 같다.
그러자 어머니,

"아아, 나는 국을 원래 안 먹어"

그러시며 찌개가 담긴 그릇을 다른 쪽으로 미시는 게 아닌가.

'....'

순간 2초 정도 정적이 흐른 뒤 아버님의 헛기침을 시작으로 다른 이야기가 오갔고, 분위기는 다시 뭔가를 이야기하며 활기를 띠었다. 그런데 며느리의 친정엄마가 계신 자리에서 굳이 며느리가 끓인 찌개를 원래 국을 안 드신다고 거절하실 건 또 뭐람. 나는 내 기분보다도 엄마 눈치가 보였다. 엄마까지 기분이 머쓱했을까봐.

사실 나였다면, 내가 시어머니 었다면, 평소에 국을 안 드시더라도 며느리를 위해서, 또 며느리 옆에 사돈을 위해서라도 한 입 정도는 먹고, 극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맞장구 정도는 쳐줬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소란스러운 행사를 마치고 양가 부모님들께서 다 돌아가신 후, 남편과 우연히 그날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솔직하게 그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은 당신 입장에서는 그랬겠다며
공감을 했다.

친정엄마는 괜히 지난 일 꺼내봐야 부스럼만 낸다 여겼는지 아니면 내가 신경 쓸까 봐 그랬는지 별다른 이야기는 안 하셨다. 하지만 그 민망한 느낌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아니러니 하게도 이제는 어머님이 애들 때문에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음식을 해주시고, 맛이 어떤가 항상 내게 여쭤보신다. 시험성적 받는 느낌은 아니더라도 음식 해주신 입장에서 '맛은 있어야 될 텐데...'하시며 살짝 긴장도 하시는 것 같다.


내가 장담하는데 나는 항상 맛있다고 했다. 옆에서 남편이 쫑알쫑알, 철없이 좀 짜다 좀 싱겁다 해도 나는 무조건 맛있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새로운 시도를 해서 이렇게 해봤다 하시면 일부러 젓가락질을 더 해서라도 먹어본다. 맛있다고, 어떻게 만드신 거냐고 여쭤보기도 한다.

어머님이 요리를 정말 잘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엔 내 노력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고부간이라면 서로가 만든 음식은 자기 입맛이 아니더라도 먹어주자. 그리고 맛있다고 해주자. 그게 좋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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