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이 없으시다던 어머니는 정말 뒤끝이 없으실까?
괜찮다는 말은 반만 믿으세요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종종 하셨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앞에서 말하지 뒤에서 꽁하고 그러질 않아요."
꽁한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속에만 품고 내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시면서 내게 "서운한 거 있으면 오래 맘에 품고 있지 말고 바로바로 말해 며늘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앞에서 말씀하신 '우리 같은 사람'은 아마도 어머니와 같은 지역에 계신 분들을 말씀하신 것이고, 뒤에 나오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아버님을 비롯한 나이가 있는 분들을 말씀하신 것일 거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다 말하고 털지, 뒤끝은 없으시다던 어머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 뒤끝이 없으실까? 내 경험상 꼭 그렇지는 않다.
얼결에 연년생 두 아이를 낳고, 누구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내가 남편 없이 혼자 시댁에 내려가 있는 일도 생겼다. 남편이 중요한 프로젝트 작업을 하는 시기라도 되면 몇 시간마다 깨는 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애만 본 나 역시 밤까지 혼자 다 감당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결국 체력의 한계가 감정의 한계로 치달아 우리 둘은 투닥거리게 됐다.
결국 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손이라도 덜기 위해 어머님이 계신 곳으로 향한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턱 하니 답답하다.
"그람 그람, 와도 되고 말고"
손자 손녀 다 데리고 바리바리 싸들고 내려온 며느리를 어머님은 호탕하게 반겨하셨다. 일찍이 당신 아들이 너무 고생스럽게 보였는지 내가 봐줄 테니 애들 데리고 내려오는 건 어떠냐고 내게 많이 말씀하신지라 어머님은 속으로 '일이 이렇게 되는 게 맞지'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시댁에서 시어머니와 육아하기'는 2주를 끝으로 다신 없다.
시댁에 내려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버님과 어머님의 지인분께서 상을 당하셨다. 그런데 어머님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돌아가신 분이 국가유공자셨다. 그러면서 그분의 자제분이 어머님과 통화를 하시며 어머니께
'전에 누가 국가유공자인데 장례식 때 나라에서 뭘 해줬다고 하지 않았느냐'
고 물어보셨다. 어머니는 맞다 하시며 내가 그 말했던 사람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겠다. 아니면 내가 그 사람한테 이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으니 좀 알려달라 언지를 해놓을 테니 네가 이 사람과 한번 통화를 해보면 어떠냐 하시며 분주하셨다.
어머님의 호탕하신 성격답게 전화소리가 방을 건너 건너 들렸고, 나는 마침 둘째를 재운 후 함께 놀던 첫째가 졸려하던 지라 거실에서 아이를 어르며 통화내용을 다 듣게 되었다.
'국가유공자시면...'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기 전 라디오 다큐 제작을 위해 지방으로 출장을 갔던 일이 생각이 났다.
3.1절 100주년 기념 다큐였는데 독립유공자분을 만나 독립유공자의 처우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일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독립유공자에도 급에 따라 장례 지원 내용이 달랐다. 국가유공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어머님의 아는 분이 일찍이 받은 혜택을 지금 통화한 분의 가족께서 똑같이 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일단 혜택을 받으려면 부고부터 담당부서에 알려야 한다.
어머님은 통화를 마친 후, 거실에서 나를 보자 통화내용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방금 이런 전화가 왔는데 나도 지난 일인데 다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럽다. 내가 이렇게 해주기로 했다. 그 사람이 어디 사람인데 나랑은...
어머님은 쉴 새 없이 전화 후기를 말씀하셨다.
내가 시댁생활이 어려웠던 첫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한번 시작되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어머님의 토크를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죄송하지만 어머님의 대화방식은 주고받는 게 아니었다. 주로 어머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아버님이 '그렇지', '음'정도의 추임새를 하시는 정도였고, 한 문장으로 끝날 이야기가 5분을 넘기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충청도인 우리 집은 커피를 앞에 놓고 마주 앉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대화는 짧고 간결하게 마치곤 했다.
처음엔 어머님께서 아들만 둘 키우시느라 딸처럼 며느리랑 수다를 떨고 싶으셨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도 지쳐있을 때는 참 고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어머님 근데요. 제가 전에 취재해보니까 그건 직접 보훈처에 연락을 하셔야 정확히 아실 수 있어요"
라며 어머님의 말씀중에 치고 들어갔다. 어머님은 말씀을 멈추셨다.
"제가 독립유공자분들을 취재해본 적이 있거든요. 국자유공자나 독립유공자분들도 다 같질 않더라고요. 급에 따라 혜택 내용도 다르고. 그리고 부고 소식을 보훈처에 알리셔야 돼요. 건너 듣는 것보다 보훈처 직원이랑 직접 통화를 해보시는 게 나아요"
이 말을 마치고, 나는 '내 할 일을 마쳤으니 난 좀 쉬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퇴근하신 아버님이 등장하셨다. 어머님은 다시 부고 소식부터 통화내용을 아버님께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시며 며느리가 방금 이런 말을 했다는 말까지. 아버님이 오시자마자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보훈처 전화번호를 찾아드리고 그 번호가 끝내 처음 물어보셨던 분에게 잘 전달되는 과정을 다 지켜봤다.
임무를 완수하자 어머님은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하시며 나에게 이래저래 여쭤보셨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님,
"나 때는 뭘 알아도 어른한테 버릇없다 소릴 들을까 봐 너처럼 따박따박 말을 못 했다"
순간 어머님의 얼굴을 보니 뭔가 불편해 보이셨다. 나는 그때 한창 대화의 주도권을 처음 잡고 어머님께 뭔가를 설명해드리는 중이었다. 막상 어머님이 듣기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며느리만 아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불편해하는 어머님의 기색이 느껴졌다.
'알려줘서 고마운데 너도 이런 건 좀 알아라' 이런 느낌?으로 굳이 따박따박이란 단어를 쓰시며 내게 한마디 하신듯했다.
아니, 그러면 알아도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신가. 내가 당황해 말문이 막힌 틈에 어머님 이야기는 막내며느리 생활과 시댁 이야기로 전환되고 있었다.
내 딴에는 힘들지만 알려드린 건데 따박따박이라니. 솔직히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다.
'이러실 거면 나한테 왜 계속 여쭤보신 거지?'
그 뒤로 어머님은 다시 유쾌한 모드로 지난 며느리 생활과 시댁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영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매사 편안하게 대하라 하셨던 어머님은 며느리가 막상 말을 끊거나 당신이 모르시는 걸 가르치면 기분이 썩 좋진 않으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예비 며느리가 되실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시어머니께서 편하게 대해라. 솔직해도 된다고 하시면 반반 믿으시라. 당신의 어머님도 결국 어른 대접받고 싶으신 평범한 어른이다. 그렇다고 너무 힘들게 수용하지 마라. 나 같은 경우에 이제 대화에 참여하기 힘들면
'어머니 근데요 제가 몸이 너무 피곤해서요. 잠깐 들어가서 쉴게요.
어머니, 제가 지금은 일을 처리를 해야 해서요'
라는 식으로 우회로를 택한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도 두 아이들를 데려가 뵐 때 예전처럼 많은 이야기를 못하신다.
아이들이 낮잠이라도 들면 이제 어머님,
"우리도 쉬자"
이 말씀 하나뿐이시다. 육아란 참 대단한 것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