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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Oct 11. 2022

참견 육아의 결말

내가 시어머니라도 듣기 싫은 며느리의 잔소리

지금까지 소개된 어머님과 관련한 일화만 보면 어머님이 굉장히 생각이 짧으시고, 직설적이고, 보수적인 분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어머님의 부정적인 면만 늘어놓으며 험담만 할 목적이었다면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앞서 여러 일화를 소개한 이유는 ‘나도 여느 고부 관계와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어머니와 나의 그 다름이 어떻게 이해가 되고, 가족이 되어갔는지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예비 시어머니와 예비 며느리, 아니면 지금 현재 고부 관계를 맺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은 관계의 전환점이 될만한 생각 거리를 던져보고 싶다.  

    

내가 황혼 육아를 해주신 어머니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우리 둘째 아이의 두상 때문이었다.       


어머니께 둘째를 맡기고, 내가 첫째를 서울에서 보는 동안 나의 랜선 육아는 시작됐다. 안 좋게 말하면 '참견 육아'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엄마라는 지위를 내세워 어머니께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어제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장군이 분유량과 변 상태는 어땠는지(본론) 확인했다. 그런데 영상통화로 장군이를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머리 방향!     


장군이는 자꾸만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잤다. 그래서 오른쪽 뒤통수가 눌린 사두증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나는 이 부분이 신경 쓰여 짱구 배게, 엉덩이 수건 등을 이용해 늘 왼쪽으로 머리가 기울도록 했다. 그리고 어머님께도 사뭇 진지하게 부탁드렸었다. 장군이 머리를 꼭 왼쪽으로 돌려달라고. 하지만 내가 그런 말씀을 드릴 때마다 어머님은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며 너무 예민하게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은데... 그래도 잡아줄 수 있을 때 잡아 주는 게 좋은데...'     


소심해진 나는 이 정도 말씀드렸으면 그만 하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이 둘째가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용 사진으로 의기양양하게 보내신 동영상에 또! 장군이 머리가 오른쪽으로 눕혀 있었다. 이번엔 아예 모빌도 오른쪽에 있었다. 결국 어머님께 다시 동영상을 공유하며 카톡을 보냈다.     

소심한 '^^'도 함께.     


어머님은 알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리고 전화가 오셨다.     


"너희 시어른이 내가 잠깐 부엌 간 사이에 아를 보면서 모빌을 오른쪽에 두고 놀았던 거라. 에이고"     


아버님을 핀잔하는 듯한 어머님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내 눈치를 보시는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결국 과열된 내 관심을 잠깐 환기하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혼자 보지 못해서 부탁을 드린 상황이잖아.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어. 어머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만하자'     


사실 내 고민을 들은 제삼자가 '이제는 그만 말씀드리는 게 좋겠네요'라며 각성해 준 덕도 있었다. 그 후, 나는 둘째가 왼쪽으로 눕혀도 자꾸만 오른쪽으로 머리를 기울인다는 것을, 현실 육아는 역시 랜선 참견질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을 시댁에 내려가서야 알게 됐다. 결국 부질없는 예민함과 어머님의 아량을 깨달으며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브런치에 공유하자 한 독자가 이런 댓글을 남기셨다.      


“에구구 그 어머니 참 힘드시겠다. 애 키우면서 며느리 눈치도 보고. 에구구”     


처음에 이 댓글을 봤을 때 ‘어머님께도 사랑하는 손자인데 아이들을 위해서 육아방식을 고쳐야 하는 부분은 며느리라도 아이를 위해서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말도 하지 말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육아 경험담을 내게 이야기하실 때 내 느낌을 생각해봤다. 당장 어머님께서 손으로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라면  


‘직접 와서 해보시지...’


라는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어머님이라고 다를까? 며느리가 참견 육아를 하면 어머님도 유쾌 하시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한번도 나의 참견을 거슬려하는 기색이 없으셨다. 그만큼 ‘손자를 위해서라면 내가 다 듣겠다. 참고하겠다’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해주셨다.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그러셨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떻게든 손자 손녀를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하시는 어머님의 그 진심만은 내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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