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그렇게 일 처리 하면 안 돼. 꼬르륵 피디
인생을 살 때 ‘고춧대’ 역할을 하는 것이 ‘쓴소리’가 아닐까 싶다.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안다.
고추를 키울 때 일단 고추 모종을 심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종이라는 것은 옮겨 심으려고 키운 작은 식물을 말한다. 골고루 간 땅에 고랑을 만들고, 검은 비닐로 각각 고랑을 덮은 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비닐 위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 이 구멍 안에 모종을 하나씩 넣고 흙을 두툼히 넉넉하게 덮어주는 게 고추 심기의 첫 번째 단계다.
그러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지대를 세우고, 고추 줄기가 위로 향하도록 세워주는 것이다. 아직 힘이 약한 고추 모종이 옆으로 힘없이 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워 얇은 끈으로 연결한다. 그리고 그 끈 안에서 모종은 열매를 맺더라도 기울어지지 않게 자라난다. 시골에서 어른들은 이 지지대를 ‘고춧대’라고 한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 갈 때 이 고춧대 역할을 하는 것이 누군가의 ‘쓴소리’가 아닐까 싶다.
내게는 처음 회사에 입사해 쉽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내 탓이 크다.
즐겁게 조직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구설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지내던 어느 날, 당시 담당하던 주말 8시 프로를 펑크내는 대형사고를 쳤다.
처음으로 알람이 전혀- 들리지 않는 신기한 일을 겪었다.
내가 PD로서 처음 단독으로 맡은 주말 8시~10시 프로였다. 새벽이나 아침 프로를 맡은 라디오 PD들은 절대 공감하겠지만 방송장이들은 이른 아침 프로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혹시나 일어나지 못해 늦을까 봐 알람을 몇십 개 설정하고, 전날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냥 회사에서 잔다. 아침에 내가 펑크내면 대타를 해 줄 동료도 아무도 없다. 그런 면에서는 오후나 저녁 프로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긴 하다.
어쨌든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알람이 전혀- 들리지 않는 신기한 일을 겪었다. 감기몸살로 힘든 금요일을 보내고, 처방받은 감기약을 단단히 먹고, 잠든 이후였다. 잠귀가 밝은 나는 보통 새벽에도 작은 소리에 깨기도 하는데 그 날은 새벽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했다. 약이 정말 센 약이었던 것 같다.
전날 감기몸살 증세는 온데간데없이 상쾌한 기분까지 만끽하며 ‘아직 알람 울리기 전인가 보다’ 그러며 눈을 떴는데, 순간 나는 내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내 핸드폰에는 8통의 부재중 전화와 열 번이 넘게 알람이 울린 기록, 그리고 내가 신입일 때 사수셨던 부장님의 카톡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확인하면 연락해”
생방송이 8시부터 시작인데 내가 눈 뜬 시간은 8시 20분이었다. 모자 하나를 급히 눌러 쓰고, 그래도 튀어나가며 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일단 내가 노래 골라서 틀고, 진행 중이니까 와서 이야기하자고”
생방송 스튜디오 도착 시각은 8시 40분. 나의 등장에 작가님이 돌고래 소리를 연발했다.
“피디님~~~!!!”
등 짝이라도 때릴 기세였다.
내가 도착하자 일단 부장님은 부장님의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사무실로 내려갔다. 이후 무슨 정신으로 큐를 외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스튜디오 밖 난리와는 달리 그 날 방송 내용은 천만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날 술을 마신 부장님이 사무실 의자에서 쪼그리고 잠을 청했고, 8시 생방송이 시간이 다 됐는데 PD가 안 왔다는 다급한 작가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님이 다음 프로의 PD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PD의 전화번호가 무엇인지, 혹시 회사에 있을 수도 있으니 전화라도 해보자는 베팅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뻔했다. 부장님이라고 무슨 갑자기 동원돼 어떤 노래를 틀어야 하는지, 다음 코너 코드에 큐점이 어디인지 알 리가 없지만, 경력이 괜히 경력인가.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안 돼
정신이 돌아오니 막내 PD가 8시 생방송에 늦어서 난리가 났다더라. 말이 나가는 순간 또 얼마나 수군거릴까. 아찔했다. 그때 회사 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독재 정권 하 군대 같았다. 부장님의 생방송 시간까지 모두 마친 후, 나는 다시 찾아가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인자한 부장님의 성품을 기대하고, 말해봤다.
“저, 그런데 부장님. 그런데 혹시 이 일을 여기서 덮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부끄러웠다.
그러자 부장님, 전에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안 돼. 제작팀장에게 보고하고, 작가, 엔지니어한테도 사과해. 일은 그렇게 처리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 '정신 차렷'이 확실히 됐다. 그리고 부장님의 말씀대로 제작팀장께 보고하니
“그래, 알았다. 사고는 없었다고 하니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
더 이상의 보고는 없을 것을 암시했다. 그 후 작가와 엔지니어에게도 인사하니, 되려 몸은 괜찮냐며 걱정해줬다.
보고 후, 다시 이렇게 처리했다고 부장님께 전화 드렸다. 그러자 부장님.
“이미 엔지니어가 상황 다 봤는데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어. 다른 부서는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르면 말 나오지.
그러며
“꼬르륵 피디가 크게 되려나 봐.
원래 사고 치는 대로 크게 되거든. 하하하”
인자하게 웃으셨다.
이제 부장님은 정년퇴직하셨다. 얼마 전, 제작비가 없지만 어떻게든 방송은 지키고 싶어 점심시간에도 원고를 쓰는 내게 조용히 밥을 먹자 하시며
“너무 힘들 때는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야.”
라는 심오한 말을 남기시고.
알고도 모르는 척, 하지만 알려줘야 할 때는 명확하게.
생각해보면 그런 선배들의 말이 고추밭의 고춧대처럼 내 삶을 지탱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