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차라리 기자 말고 라디오 PD를 지원해보세요" 실무자의 오지랖

by 꼬르륵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감정적인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사람만큼 고마운 사람도 없다.


고시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을. 나는 정해진 게 없이 나이 들어가는데 먼저 취직한 친구의 여행 사진, 결혼 소식을 접할 때 몰려오는 불안감, 실패감. 그러면서 더 아등바등 매달릴 때의 초조함. 나도 한창 그런 마음으로 지낼 때가 있었다.


대학 4년을 마친 후, 언론고시를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후, 예상은 했지만 1년은 고전했다. 방송 3사, 기독교 방송 외 신문사 가릴 것 없이 모두 ‘기자’로 지원했다. 6개월을 빡세게 준비해 토익과 한문 점수를 만들었더니 서류는 그런대로 통과를 했다. 시사 상식과 논술이 문제였다. 이 두 번째 관문을 뚫는 기술을 연마하는데 1년이 걸렸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2~3수는 기본으로 여기는데 방송 3사 시험을 한 번에 패스한 전현무 아나운서가 더 대단하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가까스로 2차 관문, 논술과 작문 시험을 통과한 어느 언론사 대면 면접날, 나는 ‘기자’로 계속 지원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고민에 직면했다.


일단, 오전에 진행된 실무진 면접에서 한 면접관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꼬르륵씨는 사실 내가 참 많이 궁금했습니다. 시사상식, 논술 점수와 작문 점수 차가 이렇게 차이가 나나 싶어서”


작문을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 있냐는 말이라기보단 시사상식이 어떻게 이렇게 부족한가를 꼬집는 것 같았다.


‘난 1년간 준비한 건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런 지식은 앞으로 더 노력해서 쌓아가겠습니다”


대체로 이런 취지로 대답했을까. 나 외에 다른 두 명의 후보와도 이런저런 문답이 오간 후에, 아까 그 면접관이 다시 내게 말했다.


꼬르륵씨는 글은 센 대 실제로 보니까 감성적인 것 같기도 하고, 기자 말고 라디오 피디 쪽을 지원해 보면 어때요?”


그 당시에는 면전에서 ‘너는 기자감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그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멘탈이 상당히 흔들렸다는 것은 기억난다.


그리고 이어진 회식 면접. 오거니 가거니 오고 가는 술잔 속에 다른 후보들은 내가 얼마나 술이 센가, 얼마나 깡다구가 있는가를 면접관들에게 뽐냈지만 심지어 술도 못 마시는 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였다.


결과는 ‘탈락’.


이미 예상했다.


그때는 이미 시험의 결과보다 ‘내가 정말 기자감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더 중요했다.


자기 계발과 진로에 대한 책도 꽤 읽은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읽었던 한 책에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결국 행복하다"


이유인즉슨, 잘하는 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만족감을 느끼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덕업일치'란 말대로 좋아하는 것과 일이 일치하면야 정말 좋겠지만 그게 쉬우면 진로 고민이라는 말이 생길 리가 없다.


시간이 없었다. 부모님이 기약 없이 나를 뒷받침해 줄 수 없는 형편이었고,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실무자의 판단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모 방송사 라디오 AD로 지원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 나는 라디오 PD로 일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꽤 한다는 말도 듣고 있다.


청취자와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라디오란 매체를 통해 따뜻한 사람 냄새를 맡는 것이 좋다. 그는 내가 사람 냄새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낀 걸까.


생각해 보면 그 면접관도 굳이 '라디오 PD'라는 직업을 콕 집어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업계에서 몇십 년의 경력이 있던 그가 굳이 그렇게 말한 데는 정말 내가 그 정도로 자질이 보여서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내가 될성부른 떡 잎이었겠거니. 이것도 정신 승리일까. ㅎ

어쨌든 진로가 고민이 될 때는 관심 분야, 실무자의 조언을 듣자.

그게 가장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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