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밥숟가락 하나 더 얹는 건데 뭐

by 꼬르륵

서울살이를 하는 지방출신들은 알 것이다.

자취생의 삶을.

서울살이는 숨만 쉬어도 헉소리가 났다.


혼자 밥 해 먹고, 빨래하고, 사람 모양 갖추는 게 녹녹지 않다. 월세에 핸드폰비용에 식비까지 합하면 서울에 살며 숨 쉬는 것만으로 나가는 돈에 헉소리가 난다.


그래서 나도 언론 고시 할 때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편의점을 애용했다. 그러다 모 방송사에 라디오 AD로 지원해 일하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차장님을 만났다.


한 차장님은 언뜻 봬도 사람이 좋아 보이셨다. 언뜻언뜻 안경 너머 눈빛에 똑똑함이 묻어 나는 분이기도 하셨다. 그리고 한 차장님 밑에서 AD로 지내는 1년 동안 나는 정말 많은 밥을 얻어먹었다.


심지어 방송 시간이 점심 이후일 때도 한 차장님은 점심을 함께 먹자며 스태프를 미리 불렀다.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 내가 AD로 일하며 받은 돈은 두 자릿수. 한 끼 식비가 아쉬웠다.


한 차장님이 사주시는 음식은 식단도 고급졌다. 갈비탕, 고기, 스파게티, 파스타 등에 빵도 그냥 빵이 아니었다. 함께 고급 빵집을 들렀을 때 한 두 개 더 사서 스태프들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그러면서 커피를 마실 때는 주로 최근 개봉한 영화나 시작한 드라마 이야기를 하셨다. 그럴 때는 마치 소녀같이 섬세한 후기를 들려주셨는데 내게는 너무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떻게 부장님 나이에 저런 감수성을 갖고 계실까?'


내가 자란 지방에서는 그런 어른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자라면서 만난 어른은 무뚝뚝하거나 먹고 사느라 바빴다.


그런데 한 차장님은 뭐랄까 섬세하시고, 아기자기하셨다.

하지만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이야기할 때는 냉철했다. 차장님께서 앞으로 이렇게 될 거다라고 이야기하시는 건 꼭 그렇게 됐다.


무엇보다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주셨다. 눈치가 많이 없던 내가 여느 때처럼 바닐라라떼를 주문하자


"그런데 다른 데 가서는 커피 먹자고 하면 아메리카노 먹겠다고 해. 상사보다 덜 비싼 걸로"


라는 말도 하시긴 했지만. 그 말씀도 어찌나 조심스럽게 하시든지 오히려 난 웃었다.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렇게 1년 정도 차장님 밑에서 방송을 배우고, 지금 회사에 공고가 떠서 지원했다. 마침내 방송국에 정규직 PD로 합격한 다음날, 한 차장님은 전 스태프들을 데리고 고깃집에서 자랑스럽게


"여기 꼬르륵이 000에 PD로 합격했어"


하며 말씀하셨다. 뿌듯해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참 감사하다.


그리고 차장님과 마지막 점심을 먹던 날, 나는 차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차장님, 정말 감사해요. 저희 엄마가 뭐 먹고 사냐고 늘 걱정했는데 오히려 차장님 덕분에 배부르게 언론고시 했어요"


그러자 차장님,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자기도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친구 집을 전전한 적이 있다고. 처제도 제주도 사람이라 차장님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시집보냈다고.


뭐, 상에 밥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건데


그러고 쑥스러움이신지 뭔지 헛기침을 '킁'하셨다.


넉넉한 한 차장님 밑에서 배우다 언론계 입성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 여럿이다. 한 차장님을 보며 나도 나중에 내 상에 누군가의 밥 숟가락 하나는 얹어줘야지 했었는데...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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