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을 거듭한 여성에게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해보라.
전부는 아니더라도 열에 일곱은 눈물을 글썽일 것이다.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는 여자로서의 아름다움, 예쁨을 잠시 내려놓게 되는 시기 같다. 물론 출산 후 몇 개월 만에 짜잔 하고 나타나는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들 스스로 알 것이다. 전과 다르다는 것을.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은 후에 불규칙한 수면 시간, 여유롭지 못한 식사, 한쪽으로 아이를 안으면서 휜 골반, 피로로 인해 뻐근한 몸. 예전과 같지 않다.
잠시 꾸미는 기분이라도 내고 싶지만 네일아트, 피부 관리는 포기한 지 오래다. 심지어 집에서조차 발톱에 매니큐어 바를 새가 없어서 한여름에도 아직 발톱 색이 없다. 직장 생활도 하는데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출근길, 아이들의 어린이집 가방에 아이들 약과, 옷, 간식은 잘 챙겼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정작 내 얼굴에 로션 하나 바르지 못해 당기는 얼굴로 운전대에 오를 때, 뭐랄까. 내팽개치는 느낌? 나를 계속해서 후 순위를 밀치는 느낌이 들어 씁쓸할 때도 있다.
우울감은 내가 나를 싫어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한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우울감은 내가 나를 싫어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여성들이 산후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도 그럴 것 같다. 변한 나의 몸, 나의 얼굴, 피부가 적응이 안 되고, 받아들이기 싫고, 그렇다고 외모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상황을 바꾸기도 어렵고 말이다.
그런데 한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나의 씁쓸한 감정을 뒤바꿔준 한 상황이 떠올랐다.
일단 책의 제목은 ‘슬픈 세상의 기쁜 말(정혜윤 작가)’다. 어느 날 그녀는 ‘정말 내가 잘못 살았구나’라는 깨달음이 와 추락하던 시기, 필리핀 보홀이라는 곳에 도망치듯 여행을 갔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서 그녀는 현지 가이드로부터 '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리고 궁금해하는 그녀를 현지 가이드는 친절하게도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의 이름은 ‘아바탄강’. 그녀가 모기에 뜯기며 한 시간을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그녀의 눈앞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났다고 한다. 하나도 아니고 세 그루나. 사실 그건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 반딧불이들이 꼬마전구처럼 빛을 내면서 낸 광경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책에 사진도 그림도 없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는 더 멋진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어쨌든 황홀함에 말을 잃었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뱃사공에게 물었다. 어떻게 뱃사공이 되었냐고. 뱃사공은 반딧불이를 처음 본 순간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일했다고. 그리고 5년이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5년간 매일매일?’
그녀가 뱃사공에게 5년간 매일매일 보면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뱃사공은 이렇게 했다.
“그는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작고 완벽한 빛 하나가 그이 손을 그 누구의 손과도 같지 않은 특별한 손으로 만들어줬다....
그는 나지막하게, 느리게, 또박또박, 마치 나에게가 아니라 반딧불이에게 대답하듯, 가난과 어둠과 별과 빛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의 우아함을 담아 이렇게 대답했다.
”스틸 뷰티풀“
책을 읽으며 그 장면을 따라가던 나는 울컥했다.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이 가라앉은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그녀도 그랬나 보다. 그녀는 ‘슬픔에 짓눌려 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그의 말에 반응했다’ 고 적었다.
아름답구나. 여전히 아름답구나.
아름답다니, 여전히 아름답다니....
그러면서 한 장면이 겹쳤다. 그날도 나는 정신없이 아이 둘을 등원시키고, 정신없이 원고를 쓰고, 스튜디오 밖에서 큐사인을 주며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잠깐 음악이 나가는 사이, 대기 중이던 기자분이 내 목에 사원증 사진을 보며 놀랐다.
"어머, 정말 앳되다. 언제예요? 뽀송하네요. 어머, 어머"
아마도 3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 고생(워킹맘)을 하기 전이라 상태가 괜찮게 보였나 보다. 나는 그저 웃었다. 그러자 그 소란을 듣고 있던 엔지니어 후배가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선배. 선배는 지금이 아름다워요"
나 조차도 대충 내팽개친 나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도 놀랍고, 그런 단어가 남자 후배 입에서 나온 것도 놀랍고.
나는 멋쩍기도 하여 웃기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감동과 동시에 미안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미안함의 대상은 바로 나였다.
비록 예전보다 외모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옷에 변화를 줄 새도 없이 지내지만 너는 여전히 그 자체로 아름답다. 너는 대단하다. 그 말 하나 나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5년간 매일 본 반딧불이가 여전히 아름다운 뱃사공, 선배는 지금이 아름답다 말한 제삼자. (엔지니어 후배)
그들처럼 나도 나를 여전히 아름다운 존재로 더 아름답게 여겨봐야지. 나를 토닥여야지.
스틸 뷰티풀.
지금도 조용히 나에게 이 말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