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희망이가 오늘도 빙그레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

by 꼬르륵

태도가 전부라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동의하게 되는 말이다.

어린이집을 보면서도 공감가는 말이다.


'키즈노트'라는 게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은 알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하루하루 이야기를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공유해 주는 어플이다.


그날 아이의 활동사진과 놀이 내용, 몸 상태, 밥양, 대소변 횟수 등을 선생님께서 기록해 주시면 엄마가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선생님들께서 적으셔서 3시~4시경 키즈노트에 공유하신다.


그런데 오후 3~4시 아니라 다른 시간에 알람이 울리면 좋지 않은 소식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아이가 놀다가 다쳐서 멍이 들거나 긁힌 사진이 올라와 있다. 아니면 ‘37.5’ 도가 넘는 숫자가 찍힌 온도계 사진과 함께 아이가 열이 난다는 소식이다. 아무리 바빠도 ‘키즈노트’ 알람에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이유다.


그리고 이제는 키즈노트 내용만 봐도 '오늘 키즈노트는 어느 선생님이 쓰셨구나' 짐작이 된다. 짧은 메모 글이지만 거기엔 선생님의 보육 철학과 말투가 녹아있다. 우리 둘째 아이 반의 경우 담임 선생님이 두 분이신데 종종 상황에 따라 보조 교사께서도 키즈노트를 작성하시는 것 같다.


어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원아가...”


일단 아이 이름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원아에게 오늘 어떤 놀이를 제공했고, 어떤 음식을 제공했고, 밥양과 대소변의 횟수는 어떠하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어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희망이가 달콤한 수박을 한 그릇 먹고 기분이 좋은 지 씩 빙그레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순간에 아이가 웃었고, 아이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가 골자다. 물론 밑에 이런 내용도 있다.


“오전에 쉬아 두 번, 낮잠 전 응아 한번 했습니다”


단어도 아이 중심이다. 전자의 경우엔 어린이집이 제공한 놀이에 참여한 아이 사진이 있고, 후자의 경우엔 밝게 웃는 아이 얼굴만 크게 확대된 사진만 여럿 있다. 그렇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웃는 아이 얼굴만 봐도 안심이 된다.


물론, 키즈노트에 있는 적힌 내용이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공유되지 않는 어린이집 안에서의 아이의 진짜 하루다.


그런데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빙그레 웃는 순간을 기억하고 적으신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감동을 남긴다.


아이들의 키즈노트를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도형초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아담한 체구의 도형초 선생님은 다정한 분이셨다. 그 다정함은 내 일기장 곳곳에 묻어났다.


지금도 내가 보관하고 있는 초등학교 일기장에는 매일매일 선생님께서 다르게 써주신 답글과 ‘참 잘했어요’ 도장이 있다. 예를 들면


‘그네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다음에는 그네를 탈 때 조심해야겠다’


라고 쓴 내 일기장 밑에 도형초 선생님은 ‘예쁜 꼬르륵 엉덩이가 다쳐서 선생님도 속상하구나. 많이 아팠겠다. 그래, 다음에는 그네를 탈 때 조심하렴....^^’이라는 다정한 선생님의 손글씨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 일기장을 보면 마음이 따뜻하다.


한 번은 방학 중에 선생님께 손글씨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내성적이었던 나로서는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안 돼 선생님께 답장이 왔다.


오로지 나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운 편지지 두 장은 나의 학교생활을 바꿨다.

편지지에 선생님은 내 글이 좋고, 내 생각이 좋다고 적어주셨다. 그 후로 나는 글쓰기를 더 좋아하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단순히 가르치는 '일'을 하는 분이 아니셨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는 분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한결같이 긍정의 언어를 아이들에게 쓰신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사명감을 갖고 일하신 분들은 결국 드러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또는 인생 속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가.

아이들의 키즈노트를 보며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