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너에게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
나는 라디오 피디다. 요즘 우리 회사가 어렵다. 작가도 없고, 외부 MC도 없다.
그러니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 모든 방송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덕분에 나는 방송 원고를 아주 원 없이 쓰고 있다. 고갈이 될 때까지. 내가 쓰지 못하면 내 옆에 동료가 자기 일에 내 일까지 더해서 그날 하루 눈이 빨개질 정도로 써야 한다. 그렇게는 못하겠다. 또 그렇게 되면 어느 능력자가 와도 방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 쉬고 싶으면 방송이 STOP 되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
내가 코너 원고를 쓰지 못하면 그날 그 코너는 못한다. PD로서 차마 그 꼴은 볼 수가 없어서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면서 꾸역꾸역 일을 해나가고 있다.
정신을 다잡고 어떻게든 버티는데 몸이 정신을 따라오질 못하나 보다. 살이 빠지고 얼굴이 야위어갔다. 주변에서 한 두 명씩 내게 살이 너무 빠진다며 걱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없이 원고 쓰고 방송 마치면 아이들 데리고 집에 가서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러느라 내 밥을 진득하니 챙겨 먹질 못했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정말 육아휴직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편집으로 퇴근이 늦은 나를 기다리며 남편이 회사 근처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다 마치고 회사를 나서며 전화하니 마침 저만치 노느라 땀이 범벅이 된 아이들이 "엄마!" 하며 뛰어왔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금요일은 치킨 먹는 날, 내일 뭐 하면서 놀 지 이야기하는 너무 행복한 날. 룰루랄라. 우리는 집에 들어가며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샀다.
그렇게 집에서 한바탕 아이들과 샤워놀이를 한 후,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데 남편이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첫째가 놀이터에서 만난 언니들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 저러면 안 되는데" 잔소리를 했다는 이야기, 둘째가 정말 말을 안 들어 감당이 안 됐다는 이야기.
그러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날따라 일찍 퇴근해 놀이터에 가니 엄마들이 아이들을 놀게 하고, 벤치에서 수다을 떨고 있었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일을 하는 엄마들은 아니었다며. 깔깔깔깔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남편은 내가 떠올랐다고 한다.
"우리 꼬르륵한테도 저런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
대출 이자가 지금보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또 내가 휴직하고 혼자 벌어도 좋으니 지금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해서 널찍한 거실에서 우리 효진이가 책도 쓰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그러면서 옆집 엄마들하고 수다도 떨고, 모임도 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돈은 솔직히 아깝지 않겠더라면서.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민망스럽기도 하고, 괜히 멋쩍어서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고맙다!"
하니, 남편
"아니, 진짜로"
그랬다. 결국 눈이 벌게져서 눈물을 닦았다.
나도 남편 말처럼 그러고 싶다. 그런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남편의 말을 글로 옮기고 있자니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고맙다. 남편아. 이러쿵저러쿵해도 남편 너만 한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