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난 엄마 이해할 수 이 떠! (feat. 네 살 아이)

by 꼬르륵

딸이 있는 엄마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정말 공감한다.


우리 딸은 지금 네 살이다. 미운 네 살이라고 누가 그랬나. 나는 우리 딸이 하는 말을 들으면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내게서 저렇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태어난 걸까?' 면서 말이다.

어제도 퇴근 후 연년생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집에 들어서면 대장정을 마친 듯 힘이 빠진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다시 나가고 싶다며 현관문 앞에 드러누웠다. 현관 신발 흙먼지에 뒷머리를 비비고, 몸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사이 나는 아이가 다칠까, 또 시끄럽다고 이웃집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하고 싶은 건 있는데, 말로 표현은 안 되고, 너도 답답하겠지’

그러려니 하지만 그 떼를 실시간으로 계속 듣고 있자면 참 쉽지 않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니 아이는 지쳤고, 나는 목마른 아이에게 물을 주고 다독이며 상황은 종료됐다. 몇 분 뒤, 드디어 남편이 퇴근했다.

“애들아, 놀이터 가자!”

남편은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던 첫째에게 ‘끝나면 아빠랑 놀이터 가자’라고 약속을 했노라며 남편은 서둘렀다.

“당신도 가자!”

남편은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피곤했다.

“아니야, 나는 집에 있을게. 조금 전까지 너무 힘들었어.”

그러자 남편은 곤란하다는 듯이

“나 혼자 애 둘 데리고 가면 통제가 잘 안 될 텐데”

걱정했다. 그러자 첫째가

“아빠, 그럼 우리끼리 가자~. 엄마는 혼자 이 떠. 우린 갔다 오께”

세상 쿨-하게 또 해맑게 말했다. 순간 놀란 우리는 그저 허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남편,

“그래, 우리끼리 가보자. 우리 딸이 그러자는데”

그러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섰다.

“엄마 안녕. 엄마는 혼자 이 떠.”

첫째가 내게 손을 흔들며 심지어 현관문을 자기 손으로 꽝! 닫으며 퇴장했다.

그쯤 되니 딸의 인사가 마치 안 나가겠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그럼 너 혼자 있어 봐’라는 호기로운 인사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딸 덕분에 자유시간을 갖게 됐다.

‘어쩜 그 상황에서 네 살 애가 단박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
기특할 뿐이었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둘째가 카시트에 앉지 않겠다며 울고불고 떼를 썼다. 운전석에 앉은 나는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화가 난 둘째를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조금 뒤, 내가 둘째에게

“00아,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다칠 수가 있어서 엄마가 그러는 거야. 안전띠는 매야 해. 이건 네가 엄마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분명 내가 옳은 말을 하는데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상대방에게 져주길 사정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둘째는 세상 서러웠다.

그러자 상황을 조용히 보고 있던 첫째가 조용히 말했다.

“난 엄마 이해할 수 이써”

내게 놀라 첫째에게 되물었다.

“잉-(기특) 정말? 엄마 이해할 수 있어?”

그러자 아이는 자랑스럽게 씩 웃으며

“응! 난 엄마 이해할 수 이 떠!”

외쳤다.

무슨 말을 더하랴. 순식간에 피로감이 싹 가셨다. 네 살 딸아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 살맛 나게 하는 힘이다.

딸아이가 시장에서 직접 동전주고 산 수박 샌들. 뿌듯해하며 내 핸드폰을 가져 가 딸이 사진으로 남겼다. 세상에. 내 딸은 엄마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훨씬 뛰어난 것 같다.

이전 05화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