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얼마나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by 꼬르륵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삶이 있다.

내 생각에 워킹맘의 삶도 그렇다.


워킹맘이 힘들다 힘들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4살 여자아이와 3살 남자아이는 각자의 성격과 고집을 뽐내고, 그 사이,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이집 하원 길에 양손에 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도 한 아이가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다른 아이는 왼쪽으로 가려고 한다.

마트에 가려고 해도 마트에 들어가려는 아이와 들어가지 않으려는 아이 둘을 놓고 세상 어려운 협상을 해야 한다.


네 살 첫째는 그래도 말이 통해서 설득이라도 된다. 여자아이라 그런지 둘째가 떼를 쓸 때 “그러면 엄마가 힘들어”라고 기특한 공감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막무가내다. 마음에 안 들면 결국 드러눕는다.


“쟤는 왜 저래....”


지나가는 사람 하나, 둘 쳐다보고, 나도 민폐인 줄 알지만 좀처럼 통제가 안 되는 아이를 결국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데 마침 가게를 들어가는 한 아저씨가 닫는 문에 아이가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결국 내가 몸을 던져 막았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렇게 빨랐나?’ 싶게 초인적인 순발력이 발휘된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애를 잘못 키운 건지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도 몸도 고달팠다.


두 아이가 동시에 장염이라도 걸리면 그건 정말 쉽지 않다. 아이들은 물만 먹어도 토를 하고, 쉴 새 없이 바닥을 닦고, 이불과 수건을 돌리면서 소독을 해야 한다. 거기다 새벽에 아이들이 아파서 뒤척이면 나도 밤을 꼭 새우기도 한다.


그럴 때는 회사에 눈치 봐가며 휴가를 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 일을 대신하게 될 동료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러다 다행히 아이들이 나아서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있게 되면 내가 쉬고 싶어도 일을 나가야 한다. 더 이상 휴가를 쓰면 민폐다. 결국 내 몸 아플 때는 쉬지 못한다.


점심시간에 무거운 어깨와 뻐근한 눈, 커피로 버티느라 쓰린 속을 어두운 지하 주차장 차 안에서 달래지만 잠깐의 휴식으로 될 게 아니다.


그렇게 ‘존버’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회사 주차장에 차량 등록을 하는 걸 깜빡했다. 나는 ‘다둥이 카드’ 혜택을 받아 다른 분보다 20% 할인된 월 5만 5천 원 정도에 한 달 회사 주차장 비용을 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코감기에 걸려 밤 새 뒤척이던 이틀 동안 계속 차량 등록하는 것을 깜빡했다.


주차장을 나설 때까지 등록 안 한 것을 모르고 출차 막대기 앞에 섰는데 주차 비용을 지불하라는 안내 메시지는 뜨고, 뒤에는 다른 차량들이 내가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1일 주차비용 1만 오천 원을 카드로 긁고 나갔다. 그러다 다음 날, 또 자주 깨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잠을 설치고 비몽사몽 근무하면서 주차 등록을 하는 것을 또 깜빡했다.


결국 이틀 동안 3만 원 결제 후, 다음날 주차 관리실을 찾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미리 등록을 안 해 이틀간 따로 결제한 기록을 본 관리실 직원분이 안타까워하며 내게 한마디 건넸다.


“그러게요. 애들 키우면서 회사 다니려니까 정신이 없네요”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나이가 50은 돼 보이시는 직원분께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결국 카드를 단말기에 긁었다. 그렇게 결제를 마치고 나와서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조금 전 그분께서 급히 따라 나와 나를 불렀다.


“저 저기요!”


나는 놀라 쳐다봤다. 결제가 잘 안 됐나 싶었다. 그러더니 내게 손짓하며


“그냥 2만 5천 원만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하셨다.


“정말요? 네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고, 5만 5천 원을 결제 취소하고 2만 5천 원을 결제해 지난 이틀의 결제를 정기권 요금 안에 포함했다. 절약한 셈이다. 내가 감사하다고 웃자 직원분께서는


“얼마나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한마디 하셨다. 그런데 그 말에 갑자기 코끝이 찡한 바람에 서둘러 감사 인사를 하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왔다.


아마도 그 직원분께도 자식이 있으시리라.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며 직장생활을 해 보셨으리라. 해봤으니까 나를 도와주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아이들을 키워보니 회사 여자 선배 한 명 한 명이 참 대단해 보인다.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봬도 참 엄마로서 얼마나 많은 고됨을 감내하셨을까 싶다.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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