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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Aug 10. 2021

수많은 처음들 속에서 우린

남편은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게 내가 처음이었다. 대부분 길어야 100일을 못 넘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와 처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넌 전 여자 친구들이랑 이런 것도 안 하고 뭐 했냐고 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도 다 내가 처음인 사람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연애가 그래서 더 순수했을지 모른다. 


남편은 난생처음 나와 해외여행을 떠났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종종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남자 친구와 둘이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첫 해외여행지로 태국을 가기로 했다. 왜 태국을 선택했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나도 남편도 처음인 나라를 가자고 했던 것 같다. 12월, 우리가 만난 기념일을 안고 떠난 여행이었다. 힐튼 호텔의 50% 할인 프로모션 덕에 호텔도 싸게 예약했고, 여기저기 꼼꼼히 여행 계획을 짰다. 내가 여기 여기가 가고 싶다고 주면 남편은 그에 맞춰 동선을 계획했다. 엑셀에 빼곡히 정리한 여행 계획은 그의 성격을 돋보이게 했다. 


여행은 꽤나 순조로웠고 너무 덥고 뜨거웠던 태국이었지만 하루에 2만보씩 걸어 다녔다. 3일째 되던 날엔 내가 꼭 가고 싶었던 루프탑이 있었다. 카오산로드 근처에 있었던 팟타이 맛집을 갔다 호텔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루프탑으로 갈 작정이었다. 카오산로드에서도 꽤 걸어서 나가야 했던 곳이었기에 차가 많이 다니던 집은 아니었다. 밥을 만족스럽게 먹고 나와서 호텔로 가는 택시를 잡으려는데 택시가 절대 안 잡혔다. 지금이야 어플로 부를 수 있지만 그땐 그런 어플도 생기기 전이었다. 일단 지도를 따라서 호텔로 걸어가다 택시를 잡아보기로 했다. 중간에 툭툭을 한대 만났지만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러서 타지 않고 돌아섰다. 결국 택시를 못 잡은 우린 2시간을 넘게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사실 누구 하나 힘들다고 짜증 낼 수도 있었지만 우린 그마저도 즐거웠다. 특히 걸어오다 중간에 길에서 우연히 사 먹은 땡모반은 두고두고 기억될 맛이었다. 몇 년 동안 그때 먹었던 땡모반이 최고였다고 회자했다. 2시간을 넘게 걸어온 탓에 너무 힘들어 루프탑은 포기하고 그냥 호텔에 있던 라운지 바를 갔다. 둘 다 술은 마시지 않아서 논알코올로 시켜놓고 오래도록 야경을 바라보았다. 루프탑을 가고 못 가고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그곳이 어디든 함께 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 뒤로 우리는 종종 국내고 해외고 함께 많은 여행을 다녔다. 처음 가보는 도시들이 많았다. 심지어 서울 안에서도 처음 가보는 동네들이 수두룩했다. 사실 당연했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왔고, 남편은 서울 토박이었지만 동네밖에 몰랐던 사람이었으니까.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처음 본 풍경들, 처음 해본 말들과 행동들.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처음을 나누었지만 그래도 못해본 게 많았는데.. 남편은 베트남을 가보고 싶어 했고, 일본의 삿포로도 가보고 싶어 했다. 신혼여행 때 남편이 여기만은 가고 싶다고 우겨서 갔던 그랜드캐년은 경비행기까지 탔지만 날씨 때문에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었다. 수많은 처음 앞에서 우린 많은 추억을 남겼지만 이제 다신 없을 우리의 처음에 나는 이내 좌절하고 만다. 이젠 나 혼자 겪을 경험들에 그가 없다는 게 죽을 만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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