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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Dec 27. 2020

크리스마스 악몽을 피하는 법

12월 24일,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은 저녁식사는 아웃백 딜리버리를 이용하자 했다. 나야 편하고 좋지만 5인 가족이 배부르게 먹으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고, 배달 대란이 있을 오늘 같은 날은 좀 불안했다. 난 비싸다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남편의 표정을 보니 더 반대하면 안 될 것 같아 맘을 바꿔 흔쾌히 동의했다. 저녁식사는 6시로 정했다. 두 아들과 막내딸에게 저녁 6시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고 말했다. 여섯 살 막내딸은 환호하며 기뻐했다. 크리스마스 파티 로망이 있는 딸.



양파만 덩그러니 남은 냉장고를 채우러 외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스럽다. 막내딸과 크리스마스 고전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보며 느긋하게 낮 시간을 보냈다. 자막영화임에도 아이는 재밌어했다. 시곗바늘이 오후 4시를 향한다. 슬슬 저녁 식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몇 시에 주문해야 6시에 식사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는 눈치싸움이다. 오늘은 배달의 전쟁일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 대신 오늘은 쿠팡 잇츠 앱을 열었다. 주문하려는 매장의 음식 배달 소요시간을 확인했다.

‘25분~40분. 좋았어. 넉넉히 1시간 전에 주문해야겠다.’



4시 30분, 여유로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인사와 저녁식사로 배달 만찬을 제안해줘서 나의 수고를 덜어준 것에 고맙다고 기분 좋은 칭찬까지 날렸다. 남편은 음식 주문을 했냐고 물었고 난 5시 정도에 주문하려던 계획을 알렸다. 오늘 같은 날은 배달이 몰리니 남편은 일찍 주문하라 했다. 남편의 의견을 약간 반영하여 4시 55분에 음식 주문을 마쳤다. 음식 도착시간은 5시 42분으로 표시되었다.

‘좋았어, 모든 게 완벽해, OO야, 파티할 준비 해라~’

설렘 가득한 막내딸은 드레스를 입고 예쁜 머리띠까지 했다. 캐롤 재즈음악을 틀어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했다. 온 집안에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오래간만에 와인도 준비하고, 테이블 중앙엔 막내딸이 좋아하는 케이크도 두었다. 테이블 매트 위에 앞 접시와 음료 잔까지 세팅을 하고 나니 완벽한 파티 준비였다. 막내딸에게 기념사진을 남겨주고 싶어 크리스마스트리도 아이 자리의 뒷벽으로 옮겼다. 카메라 삼각대까지 세팅하고 나니 음식 도착할 시간이다.



5시 40분이 넘었는데 음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배달 앱을 확인하니 6시 11분으로 변경되어있었다. 그럴 수 있지. 오늘 같은 날. 남편도 저녁 시간 맞춰 도착했다. 6시 10분이 넘어도 음식은 도착하지 않았다. 남편이 한 마디 건넨다.

“오늘 같은 날은 배달이 몰리니 빨리 시켰어야지. 일부러 빨리 시키라고 카톡도 했는데”

“음식이 너무 일찍 도착하면 맛이 없을까 봐. 우리가 조금 기다리는 게 낫지. 곧 오겠지”

그때까지는 캐롤 음악도 흐르고 있었고 괜찮았다. 하지만 곧 6시 11분은 6시 43분으로 변경되었다. 이제 마음이 쫄리기 시작한다. 두 아들에게 저녁 맛있게 먹자며 점심을 대충 채려 줬는데 신경이 쓰인다. 막내딸은 눈치 없이 계속 음식 언제 도착하냐며 묻는다. 가장 눈치 보이는 상대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식사 후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계획이었다. 본인이 일찍 주문하라 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은근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아, 망치고 싶지 않은데.......’



음식점에 전화를 했다. 주문 폭증으로 4시 50분 주문음식도 못 나가고 있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우리 음식이 준비되는지 확인도 어렵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음식을 기다리는 선택밖에 없다. 슬며시 음악을 껐다. 욕실 거울 앞에 서서 상황 파악을 했다. 음식이 늦게 오는 상황에서 더 나쁜 상황으로 몰고 갈 필요 없다. 거실로 나가 남편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남편 말 안 듣고 내 고집대로 주문했다가 이렇게 되었네.” 억지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남편은 별 말 없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안 되겠다. 안방으로 도망갔다. 안방 침대에 누워 애꿎은 배달 앱 새로 고치기만 반복한다. 도착 예정시간이었던 6시 43분이 지나도 음식은 준비 중으로 표시된다. 더 이상 음식 배달에 대한 정보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런 날 누가 배달음식 시켜먹자고 했는데. 남편 원망을 하려다 생각의 흐름을 멈췄다. 아니야. 이건 누구 잘못이 아니고 그냥 상황이 좋지 않은 거야. 음식은 결국 배달될 것이고 단지 음식이 늦게 배달되는 것 이외의 모든 상황은 좋아’ 애써 침착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



6시 57분 문자가 온다. 음식 배달이 시작되었다. 거실에 있는 남편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옆에 있는 딸에게 말했다.

“OO야, 이제 음식 출발했단다.”

남편은 와인 마개를 따고 준비를 한다.

‘그래 이 정도로 끝났으니 잘 참았어. 역시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니야.’



불같은 남편과 불같은 아내는 이제 서로 태우지 않는 법을 안다. 밤늦게 다시 퇴근한 남편에게 한마디 보탰다.

“오늘 배달 주문 폭증으로 배민 라이더 서버에 문제가 생겼나 봐. 배민은 6시 38분 이후로 멈췄다네. 아휴 오늘 여러 집 난리 났겠어.”

오랜만에 과식한 음식으로 속이 더부룩하고 와인 탓인지 속도 쓰렸다. 바짝 쫄리느라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위장약 하나 삼키며 잠들었다. 크리스마스 악몽을 피하는 법을 남편과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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